배관겸(프란치스코, ?~1800)는 충청도 당진 진목(현 충남 당진군 석문면 장항리) 출신으로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지 얼마 안 돼 입교했다. 그는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체포됐으나 신앙을 굳게 지키지 못하고 석방됐다. 그러나 즉시 죄를 뉘우치고 다시 열심히 하느님을 섬기기 시작했고, 고향에서 멀지 않은 면천 양제(현 충남 당진군 순성면 양유리)에서 교우들과 신앙 공동체를 이뤘다.
정사박해가 충청 지역을 휩쓸던 1798년 10월 3일 양제 마을에서 배교자의 밀고로 붙잡힌 그는 홍주로 압송됐다가 다시 청주 병영(兵營)으로 이송됐다. 그곳에서 살이 헤지고 팔다리가 부러져 뼈가 드러날 정도로 형벌을 받았으나 영웅적 인내로 참아내다 마침내 순교했다. 1800년 1월 7일(음력 1799년 12월 13일)로, 그의 나이 60살 가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