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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 순교는 하늘의 작업입니다 / 장재봉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2. 9. 3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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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791) 순교는 하늘의 작업입니다 / 장재봉 신부

연중 제25주일 (마르코 9,30~37) ‘날마다’ 이어지는 십자가의 삶
발행일 : 2012-09-23 [제2813호, 18면]

한국의 순교성인들의 ‘고통’을 기억하는 오늘, 주님의 말씀이 차갑습니다. 늘 너그럽고 다정한 주님께서 마치 서로 다투다가 삐친 사이처럼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라는 말씀에 “아니, 어떻게 이렇게 안면을 싹 바꿀 수가 있으신지” 묻고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차가운 말씀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니 이 좋은 날, 이렇게 자랑스러운 날, 주님께서 부끄러워하시며 얼굴을 붉힐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분의 말씀을 믿고 따른다면서 허드레 세상 일에 휩쓸리고,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약간만 힘들면, 약간 수가 틀리면, 전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여 그분 얼굴에 먹칠하고 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오직 세상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쩔쩔매는 비굴하고 초라한 모습, 세상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성호를 긋는 일조차 ‘생략’하는 비겁한 자세도 생각납니다. 마치 괜찮은 신자인 양, 정녕 그분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양 말하면서도 조금 힘들면 대번에 그분을 의심하고 외면하는 우리를 기억합니다. 이야말로 우리를 위해서 온 것을 다 내어주신 분, 끝내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 얼굴을 화끈, 달아오르게 할 것이라 싶습니다.

땅의 삶에는 꼭 마지막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날 평소 생각하고 살아 낸 모습대로 삶을 마무리할 것입니다. 오늘 순교자 선조님들의 삶에 비추어 스스로의 삶을 재조명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어떻게 그들은 자신의 생명보다 주님을 믿는 일이 제일이라고 결단할 수 있었을까요? 과연 무엇이 그들에게 젊음을 꺾고 영화를 버리고 고통과 치욕을 견디는 선택을 하도록 했을까요?

분명 그들도 겟세마니의 주님처럼 고통의 잔이 비켜갈 수 있기를 기도했을 것입니다. ‘살아’, 주님의 영광을 더 오래 전하고 싶다는 마음도 가졌을 것입니다. 그들도 죽음은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꺼이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삶을 마감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곁에 계시며 힘을 주신 주님의 덕분일 것이라 감히 짚어봅니다. 고통을 줄여주지 않으시지만, 아픔을 씻어주지도 않으시지만 곁에서 함께 아파 함께 고통당하시는 그분을 느꼈던 덕이라 감히 짐작합니다.

순교자들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보지 않고, 자기를 괴롭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지 않고, 그들을 사랑하는 하느님께 시선을 고정시켰던 것이라 믿습니다. 고통 중에서도 분명히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던 것이라 믿습니다. 순교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순교는 하늘의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사사건건 분하고 억울한 마음으로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사랑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외면할 때, 결코 예수님의 길을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부활을 자신의 삶 안에서 체험하지 못할 때, 결코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순교가 완벽한 사랑의 징표인 까닭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날마다’라는 말씀이 깊이 다가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십자가의 삶은 가끔, 때에 따라서, 혹은 적당한 시기에 행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날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삶임을 선명히 일깨움 받습니다. ‘날마다’ 늘 한결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이기심과 자기 주장과 자기 자랑을 던져버리는 결단을 요구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다.

믿음은 땅에서 하느님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분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일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곧 사랑과 평화와 기쁨의 시작임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택하는 일입니다. 세상의 무엇도 그분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지 못한다는 걸 확신하는 일입니다. 순교는 이렇듯 평소, 우리가 살아내는 단단한 믿음의 결과이기에 그분께, 감동입니다.

매일, 우리 삶이 단단하고 당당하기를 원하시는 그분의 심정을 느끼기 원합니다. 사랑의 언어와 생각과 행위로 단장시키시는 그분의 뜻에 화답하기 원합니다. 그분께 바짝 다가들어 ‘날마다’ 그분을 모신 십자가의 길에서 ‘날마다’ 부활하는 우리이기를 기도합니다. 제발 그분을 믿는 일에 깍쟁이가 되는 못난 삶에서 어서 벗어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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