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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9) 믿음 / 김동일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4. 10. 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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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9) 믿음 / 김동일 신부

연중 제27주일(마태오 21,33-43)

나는 믿을만한 사람인가? 내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믿고 일을 맡기는가? 믿음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일까?

우리는 믿음은 얼마나 성실하고 책임감 있느냐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그럴까요? 복음에 나오는 소작인들의 품성이 어떤지 우리는 모릅니다. 포도밭 임자가 소작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멀리 떠난 것을 보면 믿을만한 사람들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출을 받기 위해 포도밭 주인이 종을 보냈는데, 이 종들에게 보인 소작인들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소작인으로 주인에게 내어야 할 당연한 몫을 주지 않으려는 이들은 전혀 믿음직스런 인간들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포도밭 주인은 이런 사람들에게 자기 밭을 통째로 맡길 수가 있었을까? 전혀 이런 기미를 알아채지 못했단 말입니까? ‘설마!’라고 생각한 것입니까?

주인은 자기가 완전히 믿고 맡기면 소작인들의 행실이 어떻든 다 잘 할거라 믿었던 것일까요? 순진했던 것인가요? 주인은 철저히 소작인들을 믿고 모든 것을 맡겼는데, 주인에 대한 소작인들의 반응은 상식적이지 않게 느껴집니다. 아니,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저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창조되어 이 세상에서 숨 쉬며 사는 것이 내가 뭔가를 잘해서 일어난 일입니까? 내가 하느님의 숨으로 만들어지고 그 숨결을 느끼며 하루하루 사는 것이 내가 성실히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말씀을 잘 따라 살기 때문입니까? 하느님께서 나를 보시고 믿을만하다고 생각하셔서 내게 이 많은 달란트를 주신 것입니까?

우리의 죄를 돌아보고,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비겁하고 사악한지를 생각한다면, 하느님의 이 전폭적인 믿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정의하는 ‘믿음’의 시선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날마다 우리는 죄에 떨어지고, 나 자신과 이웃들을 해하면서 사는데도 하느님께서는 믿고 기다리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믿고, 따라와 주겠지”라고 말씀하시며 계속해서 기회를 주십니다.

믿음은 내가 잘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전적으로 믿고자 하는 사람의 넓은 마음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믿음이 생길만한 일을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시는 믿음을 생각하면 이것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받을만한 일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믿음을 져버리는 일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믿지 못하고 배반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입니다.

왜 우리는 하느님의 이 큰 사랑을 믿지 못할까요? 복음의 소작인들을 보면, 욕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을 다 맡겼는데도 우리는 뭔가 더 얻고자 합니다. 그렇게 큰 믿음과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다른 무엇을 바랍니다. 포도밭 소작인으로 불린 것에 감사하기를 잊어버립니다. 주인이 믿고 모든 것을 맡기고 떠난 처음에 소작인들은 기뻐했을 것입니다. 주인이 나를 이렇게 아끼고 믿고 사랑하는구나! 고맙다. 열심히 일해서 보답해야지! 그런데 지금은 고마움도 보답하려는 마음도 사라지고 가져야겠다는 욕심이 온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믿음에 대해 감사로 보답했었는데, 지금은 눈 벌겋게 내 욕심을 채울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믿어주셨습니다. 믿고 기다려주시고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는 하느님을 버리지 마세요. 욕심을 하느님 대전에 맡기세요. 하느님께서 우리의 욕심을 다스려주시기를 믿습니다.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동일 신부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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