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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4) 성전으로 가는 길 / 김동일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4. 11. 1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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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4) 성전으로 가는 길 / 김동일 신부

연중 제32주일(요한 2,13-22)


성전 앞에 소, 양, 비둘기들이 소란스럽습니다. 이들의 똥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성전을 향해 가는데 이 냄새와 소란스런 모습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환전꾼들과 장사치들은 소리를 치며 사람들을 모읍니다. 기도하는 곳이어야 할 성전이 이렇게 시끄럽고 더러워서야!

이런 성전 앞을 지나면 조용하고 경건한 성전에서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을 찬미, 찬양하기 위해 성전에 와서 몸과 마음을 다해 기도하려 합니다. 그런데 저만치서 들려오는 소, 양, 비둘기의 울음소리와 날갯짓 소리, 코를 찌르는 오물 냄새. 기도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도대체 누가 성전을 이렇게 장터로 만들어버렸습니까?

당시 원로들과 사제들도 이 문제로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성전 일대 정화 사업을 시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행 후 잠깐만 성전이 좀 조용하고 제대로 성전같이 보일 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시장통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성전 정화를 시도했지만 매번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나는 성전을 이렇듯 엉망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항상 말끔하게 차려입고 일찍 성전을 향해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갔습니다. 우리 성전 앞에는 이렇게 냄새나고 소란스럽지 않습니다. 이건 2000년 전 이스라엘에서나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가 냉담 중이거나, 성당을 가지 않으려고 생각했을 때를 돌아보면, 지금 내가 성당에 갈 수 있는 그런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은 죄도 많고, 기도생활이나 신앙생활도 남 보기 부끄러워 성당에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죄에서 벗어나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봉사활동도 많이 해서 그렇게 착한, 보기 좋은 신자가 된 후에 하느님 앞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전 앞에 있는 장사치들과 그들의 소, 양, 비둘기들을 다 치우고 깨끗하게 되어야 성전에 갈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들을 위해 오늘 성전을 말끔히 정리해 주십니다. 그 동안 우리 인간들이 열심히 애써봤지만 안 됐던 성전 정리를 한순간 끝내십니다. 성전 앞을 깨끗이 치우는 것은 우리 힘으로는 역부족인 모양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나서야 되는 일이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성전에 나가는 것을 미룹니다. 나름 그럴듯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조금 더 괜찮아지면 성당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성전에 오물 냄새 풍기면서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끔히 정리해 주십니다.

우리 삶에도 오물들이 적지 않게 성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치우기 위해 애를 씁니다. 애쓴다고 성당을 못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만의 몫이 아니라, 예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삶에 들어오셔서 성전 앞을 가로막는 장사치들과 그 심각한 냄새의 오물들을 쏟아내는 소, 양, 비둘기들을 흩어주셔야 합니다. 예수님께 청하고 활동하실 자리를 내드려야 합니다.

왜 매일 내 성전 앞에는 이런 것들이 막고 있는 것일까요? 온갖 종류의 더러운 것들이 다 내 앞에 있지는 않습니다. 극히 일부가 내가 성전을 가는 것을 막습니다. 그 일부마저도 예수님께서 정리해 주십니다. 내가 그것들을 없애려고 애써봐야 며칠 후에 다시 똑같아집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힘쓰시면 말끔해집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성전을 향해 가는 길을 정리해 주실 것입니다.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동일 신부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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