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여자보다 단명한다고?”…‘그것’ 잘라냈더니 천수를 누렸다 [생색(生色)]

[생색-40] 사회는 여자를 차별하지만, 자연은 여자를 우대합니다. 신이 여성에게 더 오랜 수명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수명만 봐도 그렇습니다. UN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한국 남성의 기대수명은 81.3세였습니다. 여성은 87.2세. 무려 6년이나 차이를 보였던 것입니다.

단순히 한국인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전 세계를 둘러봐도, 여성은 확실히 남성보다 오래 삽니다. 부자나라든, 가난한 나라든 적어도 3년 이상의 수명 차이가 존재합니다.

 

                           “나 죽으면 돌싱글즈 나갈거야?” “비밀이야.” 1480년 그려진 한쌍의 연인.

 

인간 여성만 사랑받은 건 아닙니다. 자연계에서 수많은 종의 암컷 수명이 수컷보다 긴 것으로 확인됩니다. 남성은 도대체 왜 여성만큼 오래 살 수 없는 것일까요. 신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던 것일까요. 자연이 생명 DNA에 숨겨놓은 비밀을 탐구할 시간입니다.

 

암컷이 수컷보다 오래 산다

인간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수명차는 10% 안쪽입니다. 혹여 억울한 남성분이 있다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야생 생태계에서 수컷은 암컷보다 훨씬 더 짧은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20% 가까이 차이가 난다고 학계는 보고 있습니다.

태평양, 대서양에 서식하는 짧은 지느러미 파일럿 고래는 극단적 사례입니다. 암컷이 최장 60년까지 살지만 수컷은 그 절반밖에 못 살기 때문입니다. 인간 여성의 평균 수명이 80세일 때, 남성이 불혹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리는 셈.

 

                             “여자라서 행복해요. ” 짧은지느러미파일럿고래.

 

사자, 사슴, 원숭이 등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동물에서 수컷의 임종을 지키는 건 암컷입니다. 수컷이 암컷과 비슷하게 살거나, 혹은 더 오래 사는 건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신은 왜 이렇게도 수컷들을 싫어한 것인지.

 

도대체 왜 암컷은 오래 사는가

학자들은 여러 해석을 내놓습니다. 우선 환경설입니다. 번식을 우선시하는 수컷은 짝짓기를 위해 분투합니다. 다른 녀석과의 물리적 충돌도 거부하지 않습니다. 수시로 물어뜯고 싸워대니 그만큼 수명이 줄어든다는 해석입니다.

제법 괜찮은 설명으로 보이지만, 이를 반박할 증거도 산더미입니다. 야생이 아닌 동물원에서 살아가는 동물들도 암컷의 수명이 더 길었기 때문입니다.

 

                          “사순이는 내거야.” 삼바사슴이 싸우는 모습. [사진출처=Pradeep717]

 

중재자 인간에 의해 싸움을 안 하는(혹은 못 하는) 경우에도 암컷 수명의 차이는 여전했던 것이지요. 그야말로 인간의 극진한 대접을 받는 반려묘 역시 암컷의 수명이 약 10%에서 15% 길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혹시 호르몬이...?

생물학자들은 ‘호르몬’을 주목합니다. 남성(수컷)에게서 나오는 테스토스테론이 외부 환경에 잘 대응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암컷의 에스트로젠은 더욱 훌륭한 방패막이가 되어준다는 해석입니다. 날 때부터 주어진 생리적 시스템이 암수의 희비를 갈랐다는 것입니다. 실험용 쥐 연구에서도 암컷 미토콘드리아가 수컷 미토콘드리아보다 항산화 효소 수치가 더 높은 것으로 관찰됐습니다.

염색체의 문제도 남성을 고개 숙이게 만드는 요소로 여겨집니다. 아시다시피 여성의 성염색체는 XX, 남성은 XY입니다. 여성에게는 X 하나에서 문제가 생겨도 이를 보완할 대안적 X가 존재합니다.

“누나들은 멀쩡한데 왜 나만..”러시아 마지막 황태자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는 혈우병 환자였다. 그를 고치기 위해 러시아 황실은 요승 라스푸틴을 초청했고, 그로 인해 결국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을 맞았다.

그러나 남자에게는 X에 하자가 일어나면 문제가 커집니다. Y로는 고장 난 X를 고칠 수 없어서입니다. 오직 남성에게만 혈우병이나 적록색맹과 같은 유전병이 발생하는 배경입니다. 수명을 결정하는 단 하나의 결정 인자로 볼 수는 없겠지만, 남성을 취약하게 만드는 데는 분명한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그곳을 잘랐더니 축복이 일어났다

 

‘신의 저주’를 피한 남성들도 존재합니다. 여성보다 평균수명이 10년이나 길었던 남자들. 바로 조선의 환관들이었습니다. 민경진·이철구 교수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조선의 환관들의 평균 수명은 70세였습니다. 양반 평균 수명에 비해 최소 14년이나 길었습니다. 여성들보다도 10년 정도는 더 살았던 셈이지요.

연구팀은 환관들의 ‘거세’가 역설적으로 그들의 수명을 늘린 ‘새옹지마’가 된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남성호르몬이 억제되면서 생명 연장이 가능하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래 살게 해줄게, 잠깐만요. ” 그리스 신화 속 거인족 우라누스의 거세. 1560년 작품.

‘남자의 상징’이 과연 수명을 갉아먹고 있는 것인지. 자연에서도 입증 사례가 존재합니다. 아프리카 연안에 주로 서식하는 킬리피시 수컷의 생식 세포를 제거했더니 수명이 늘어난 것이었습니다. 반면 생식 세포가 제거된 암컷은 명이 외려 짧아집니다.

 

그러나 암수의 수명 차이를 만드는 이유는 각 종마다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게 학계의 공통된 목소리입니다. 허나 분명한 건 있습니다. 수컷이 결코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여성은 고정관념을 넘어서 강하다는 것.

남성성을 과시하는 아둔한 행동은 잠시 접어두셔도 좋습니다. 남자들이 눈을 감을 때 미소 지으며 새 삶을 상상하는 건 여성의 특권일 테니.

 

 

“오래사는 법이요? 그냥 여자로 태어나세요.” 1997년 8월 4일 사망한 프랑스 잔 칼망은 122년 164일의 수명을 기록한 최장수 인간이었다. 약 40세 시절의 사진.

<세줄요약>

ㅇ여성은 남성보다 오래 사는데, 자연계에서도 그렇다.

ㅇ호르몬과 생식 체계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ㅇ사회는 여자를 차별하지만, 자연은 여자를 우대하는 셈이다.

<참고문헌>

ㅇ스티븐 오스타드·케이틀린 피셔, 수명의 성별 차이, 셀메타브, 2017년

ㅇ민경진·이철구·박한남, 한국 환관의 수명, 최신생물학 22권 18호, 2012년

생명(生)의 색(色)을 다루는 콘텐츠 생색(生色)입니다. 동물, 식물을 비롯한 생명의 성을 주제로 외설과 지식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가끔은 ‘낚시성 제목’으로 지식을 전합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격주 주말마다 재미있는 생명과학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5. 1. 1

출처 : 매일경제 &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