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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집에 머물러야겠다”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2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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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집에 머물러야겠다”

발행일 : 2001-11-04 [제2273호]

연중 31주일

루가 19, 1~10

부적응 아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하루 세 번 칭찬하기라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이 방법은 부모들이 부적응 자녀의 행동을 잘 관찰하면서 아이가 듣고 싶어하는 말이나 인정받고 싶어하는 행동들에 대해서 이유를 발견하고 이유있는 칭찬을 하는 간단한 방법인데 그 효과는 매우 크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음에는 아주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왜냐하면 매일 야단에만 익숙하던 아이들이기에 부모의 갑작스런 칭찬은 입에 발린 소리 같기도 하고 위선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고 이유있는 칭찬이 꾸준히 계속되면 자신도 인정받고 칭찬받을 만한 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때부터 긍정적인 행동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유있고 사랑이 넘치는 인정과 배려'는 교육 현장에서 꾸중과 체벌보다 더 효과적으로 한 사람의 긍정적인 변화에 작용을 한다고 한다.

오늘 복음은 예리고의 세관장 자캐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수난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중 예리고라는 도시를 지나가시게 되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보려고 열망하는 세관장이었던 자캐오라는 사람을 보고 그의 집에 머무름으로 그 가정이 구원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간단하고 비신앙인들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이 이야기는 우리 가톨릭(보편적이라는 의미)신앙의 기본 정신인 구원의 보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세리가 당시 유다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일부 주석가들은 이 복음을 지난 주 복음의 속편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도 이야기했지만 세리는 우선 부정 축재의 대명사요, 검은 돈과 관계된 인물이요, 매국노요 세속적 이익에 밝은 사람으로 '죄인'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들의 으뜸인 세관장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죄' 때문에 구원에서 제외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가 상기해야 할 이야기는 오늘 복음에 앞서 나오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이다. 부자 청년이 주님을 따르기보다는 재물을 선택하여 주님을 버리고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자가 하늘 나라에게 들어가기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라는 부자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자캐오. 이 인물은 분명히 부자였다. 때문에 이 이야기는 부자의 구원이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의 재산 상태가 구원을 받고 못 받는데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기에 오늘의 복음은 구원에 있어 문제는 과거의 상태와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자캐오처럼 예수님을 보려는 열성.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는 성사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시되는 예수님의 초대에 우리가 응답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리고 주님을 모시기 위해 자캐오처럼 '자선과 보속의 삶'으로 회개의 표시를 드러내느냐 드러내지 않느냐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의 이 이야기는 신약판 요나의 이야기인 것이다. 회개한다면 악과 이방지역의 대표적인 도시 니느웨도 구원될 수 있듯이 과거의 우리의 죄나 우리의 신분은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지금 현재' 나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초대에 응답하여 회개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구원된다는 구원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리나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죄' 와 '죄인'에 대한 태도인 것이다.

이웃이나 타인의 사소한 잘못에도 눈감지 못하고 꼬집어야만 속이 시원한 우리의 모습! 다른 이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평가하기를 서슴치 않은 모습과 오늘 당시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던 자캐오를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보여지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와 구별되는 예수님의 이러한 태도가 세관장 자캐오를 구원의 자캐오로 변화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으리라 !

우리는 오늘도 또 다른 세리 자캐오를 쉽게 발견하게 된다. 나는 죄가 많기에, 나는 바쁘기에, 시간이 없다는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하느님을 외면하고 회개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 타인의 손가락질과 선입관 때문에 타인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들. 이 모두가 또 다른 세관장 자캐오의 모습이리라!

오늘 복음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당신과 함께 머무르시기를 원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그들이 구원의 자캐오로 변화될 수 있도록 배려와 받아들임의 또 다른 예수의 삶을 살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홍금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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