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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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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2. 12. 2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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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하여 Ⅰ(On Poverty & the Poor)



하느님께서는 결코 가난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난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가난뱅이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마태 5,3

 

가난은 단순히 빵에 굶주려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커다란 굶주림에 기인합니다.

우리는 사랑할 필요가 있고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실수하거나 간과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 한 조각 주기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가치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방치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인간적인 존엄성을 부인한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꼭 빵에만 굶주린 것이 아니라 사랑에 굶주리고,

자기가 필요한 존재라는 데 굷주리고, 사랑을 받는 데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데 굶주리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은 하느님의 현존과 이해를 제외한 나머지 것은 모두 갖고 있습니다.

나라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있습니다. 어떤 대륙에서는 그 가난이 물질적이기 보다는 정신적이어서, 가난함은 고독하거나 용기가 없거나 삶의 의미가 없는 것을 내포합니다.

 

나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거리에서 신문이나 넝마를 깔고 자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런던에도 마드리드에도 로마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그러나 바로 우리 이웃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주의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마도 훨씬 더 어렵고 더 도전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내가 거리에서 배고픈 사람을 데려왔을 때 쌀과 빵을 주면 쉽게 그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립된 채 아무도 자기를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공포에 싸여 있는 사람의 허기를 채우기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입니까?

 

서구 사회에서 살고 있는 당신네들은 영성적으로 가난한 사람 중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며 그 가난은 육체적인 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영성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저는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그릇을 주거나 잠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쉽지만 영성적인 탈진에서 오는 쓰라린 분노와 외로움을 없애거나 그들을 위로한다는 것은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가난한 삶을 체험하려고 인도로 오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부유한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구가 그 젊은이들을 밀어낸 것입니다. 나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가난함의 살아 있는 본보기가 되고자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의 정신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가난 그 자체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이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심지어는 넉넉한 환경에서 오는 사람들조차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정으로 알고 싶어합니다. 부란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당신을 질식시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조차도 이미 가득차 있는 가슴에는 더이산 어떤 것도 넣어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돈에 대한 욕구나 돈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 즉 사치스런 식사나 옷이나 다른 사소한 것들에 대한 욕망이 싹트게 됩니다. 한 가지 사치는 또 다른 사치를 불러오기에 필요는 점점 더 커집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제할 수 없는 불만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채워주실 수 있도록 가능한 텅 빈 채로 남아 있도록 합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살아 있는 본보기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존재하시는 그 첫 날부터 '부유하신 그분은 스스로 가난하게 되시어' 어떤 사람도 체험할 수 없는 가난 속에서 양육되셨습니다. 부유하신 그리스도께서 그 자신을 비우신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모순이 있습니다.

 

부유하심에도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와 같이 가난하고 싶다면 나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를 위해 그렇게도 가난을 참아내신 예수님보다 우리가 더 부유하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십자가 자체는 빌라도가 드렸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이 못과 가시관을 드렸습니다.

그분은 발가벗겨졌습니다.

 

돌아가실 때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발가벗겨진 채 못과 가시관으로 찢기셨습니다. 그분은 어떤 자비로운 영혼이 제공해 준 아마포에 싸여 남의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온갖 아픔에도 불구하고 사실 예수님께서는 왕처럼 돌아가실 수 있었으며, 죽음까지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가난만이 하느님을 소유할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을 지상에 가져올 수 있는 순수한 방법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이 가난을 택하셨습니다.

 

가난은 자유로움입니다. 가난은 이미 소유하고 있는 그 자체가 나를 붙잡아 매지 않게 해주며, 나의 소유를 주거나 나눔을 방해받지 않도록 하는 자유입니다.

 



혹독한 가난은 우리의 안전장치입니다.
우리 사랑의 선교회는 역사 속의 다른 종교 단체처럼 처음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으로 시작
했으나 차츰차츰 부자들에게로 옮겨가는 그런 봉사를 원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결핍된 사람들을 도와주고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으려면
우리 자신이 그들과 똑같이 살아야만 합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가난해 진 것이지반 우리는 가난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몇 주 전에 거리에서 어린아이를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얼굴에서 몹시 배고프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며칠이나 이 아이가 굶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아이는 빵을 받더니 한 부스러기만 떼어 조금씩 조금씩 먹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얘야, 배고프지? 다 먹어라." 하자 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저는 이 빵을 다 먹고 나면 또 배가 고플까 봐 못 먹겠어요."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에서
마더 데레사 지음 / 지은정 옮김 / 바오로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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