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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버리고 또 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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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1. 11. 1.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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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버리고 또 비우고

낮은 목소리로 / 글 : 오성스님


홀로 걸어가는 가을을 향해 걸어본 지도 오래된 듯싶다.

버리기 쉽지 않은 모든 것을 남기고 홀로 산을 향해 걸어가는 순간,

언제나 깊어가는 가을이 가슴에 길게 드리운다.


내가 아는 이도 그랬다. 버리기 쉽지 않은 것을 버렸다. 다시 그 마음이

깊이 자리하기 전에 버리고 일어섰다. 버리기 쉽지 않은 것을 버리는

그 간절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자타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설산동자가 히말라야에서 수행하고 있을 때

제석천이 그를 시험해 보기 위해 나찰로 변해 나타났다.


그리고 동자 앞에서 시를 외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덧없으니 / 이것이 나고 죽는 법이라네.”

 

설산동자는 이 진리의 게송을 듣고 한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나찰에게 나머지 구절도 들려줄 수 없는지 물었다.


나찰은 설산동자에게 그대의 목숨을 건다면 나머지 게송도 일러주겠다고 했다.

설산동자는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나찰이 나머지 게송을 들려주었다.

“나고 죽는 것이 사라자면 / 이것이 고요한 열반의 기쁨이어라.”


나머지 게송을 들은 설산동자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나뭇잎처럼 가벼운

몸을 절벽 아래로 던졌다. 그러자 나찰이 제석천의 모습으로 돌아와

설산동자의 몸을 공중에서 받아 올렸다.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고 가는 길,

진리를 찾아가는 그 길의 끝에서 외롭고 두렵지 않을 자신이 없다.

용기가 부족한 나에게 언제나 가을 숲은 가르침을 들려준다. 말 이전의 진리.


해인사 일주문 주련에서 본 듯하다. 문자반야를 새겨놓은 그 고운 일주문

주련 앞에서 나는 잠시 백척간두에 선 듯 호흡을 멈춘 적이 있다.


“歷千劫而不古 : 천겁을 지나도 예가 아니오.

恒萬歲而長今 : 만세를 살아도 항상 지금과 다르지 않더라.“

이 게송은 조선 초 함허 득통 스님의<금강경오가해>에 실린 글이다.


세간과 출세간 모두에게 상대적 물음과 절대적 화두를 담아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서 있는지 묻고 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공한 그 도리를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한다.


가을의 길, 걸음을 내 디디는 곳마다 법의 일주문이 하나씩 열린다.

그러기에 걸음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오륙십을 살았더라도, 한순간이라도 순수한 자신의 걸음을 내디딘 적이 있는가.

그 걸음이 아니었다면 예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고,

앞으로도 지금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단풍 옷을 벗듯 버리고 가자.

걸음걸음마다 낙엽을 밟으며 무상으로 지워지는 자취 없는 길을 걷자.

외롭게 걸어가자. 그 외로움을 벗 삼은 순수한 사람들이 모여 숲이 되어가자.


이러저러하게 떠들썩한 선거가 마무리되었다.

여느 때처럼 색깔론도 흑색선전도 많았다. 이기기 위한 경쟁에 동원되는 것치고

정당하고 바람직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것도 한 삶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었다고 이해하고 가자.


그 내용이 무엇이었든 “안풍의 아나로그 편지”의 순수, 함께 하기 위해서

벗어버린 기득권, 그 의미가 숲으로 난 길이었음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당선자는 시민사회의 승리라고 말한다. 숲에는 정상이라는 승리의 깃발을

꽂을 곳이 없다. 산의 정상은 숲이 끝나는 곳에 있다. 그 곳엔 또 다른 숲을 향해

길을 가야하는 이정표가 있을 뿐이다.


리비아의 카다피도 한때는 영웅이었다. 지금 우리가 움켜쥐고 있는 진리와

가치라는 것들도 시간이 흐르면 변해간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함께했던 순수한 열정이다. 기쁨을 함께 맛보았다고 승리한 것은 아니다.

설산동자의 수행처럼 걸음걸음마다 살피는 깨어있음이 필요하다.


시민의 대표는 첫 출근을 시민과 함께 대중교통으로 했다.

수많은 바람을 품은 사람들의 숲으로 걸아 갔다. 이제 밖은 겨울의 찬바람이

불어오고 집안은 감당하기 버거운 욕구의 불꽃을 피워댈 것이다.


정치는 생물이고 독사와 같아서 언제 독을 뿜어댈지 모른다. 함께 하고 있음에

대한 값을 치르라 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욕구이다.


화려한 불꽃은 곧 단풍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저 자연의 이치를 망각한 채,

채워지지 않는 욕구의 불꽃이 계속 피어오를 것이다. 그럴 때 다시 가을 숲으로

가야 한다. 그 숲은 기억 속의 숲이 아니어야한다. 순수한 열정만 있어야 한다.

그곳에서 다 벗어버리고 처음처럼 외로이 걸어가야 한다.


외로운 이들이 다시 함께 걸어가면 겨울 숲의 길도 따뜻하다. 특별한 길은 없다.

특별한 사람도 없다. 특별한 성자도 없다. 그저 그러한 줄 알고 순수한 열정

하나로 묵묵히 또 다른 숲을 향해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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