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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름날의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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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1. 7. 11.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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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름날의 삽화


그해 여름을 떠올리면 아직도 개구리 울음소리가 묻어 있는 비가 내리는 듯하다. 그때 우리 가족은 말 그대로 야반도주를 했다.

늦은 밤, 버스에서 내린 곳은 서울 변두리의 종점이었다. 내리긴 했으나 갈 곳이 없었다. 게다가 비까지 퍼붓고 있었다. 비에 쫓겨 들어간 곳이 산 아래에 있는 포도 밭이었다. 막 익어 가던 포도송이 아래에 다섯 식구가 쪼그리고 앉았다.

처음엔 무성한 잎이 비를 막아 주는 것 같았으나 잎에 모인 빗물이 일시에 쏟아질때는동이로 들이붓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가 목덜미를 잡아채는 것만 같아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그 빗물 덕에 눈물을 들키지 않을 수 있어서 안도했다.

가족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양팔로 우리를 껴안은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삼 남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귀청이 따갑게 울리는 개구리 소리만 천지에 가득할 뿐.

폭우 속에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옷깃을 움켜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리면 그 바람에 놀라 잠이 깼다. 그때마다 한결같은 힘으로 내 어깨를 안고 있는 엄마의 팔을 느끼고는 다시 잠들었다. 잠결에 개구리 우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빗소리가 개구리 우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때론 그게 아버지의 울음처럼 들리기도 해서 그 밤의 모든 소리들이, 소리 내는 모든 것들이 너무도 싫었다. 모르겠다. 밤을 꼬박 새고 이튿날 우린 어디로 갔는지, 한 끼 먹을 여유도 없으면서 아버지는 다섯 식구가 살아갈 단칸방을 어떻게 얻었는지….

여러 날 학교에도 갈 수 없었던, 고등학교 1학년 여름의 일이었다. 절망이란 말조차 호사로웠던 그 잔인한 시간을 무던히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이 함께였기 때문일 것이다.

30년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밤새 내 어깨를 안고 있던 엄마 팔의 힘은 지금도 생생하다. 슬프고도 단단한 그 느낌은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며, 다 잘될 거라는 열렬한 응원이기도 하다. 길이 보이지 않아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어깨가 먼저 엄마의 팔을 기억해 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비가 그치면 어느 곳에선 개구리 소리 더 요란하겠다

 

이영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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