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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1주일-그 날과 그 시간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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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1주일-그 날과 그 시간

발행일 : 2005-11-27 [제2476호]

“십자가, 잠든 영혼 깨우는 입맞춤”

깨어있음의 의미

신앙인으로서는 새해의 첫날인 오늘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고 당부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잠든 우리의 영혼을 두드려 깨웁니다. 어렸을 적부터 아침잠이 많은 저는 어머니의 애절한 외침이 들려도 눈을 뜨지 못하고 마침내 어머니께서 이불을 걷어 올리고 나서야 아직도 덜 깬 잠 속에서 하루를 맞이하곤 했습니다. 그런 날은 책가방 챙기는 일도 허둥대고 학교 가는 길도 멀기만 해서 교문 앞에서 저승사자처럼 지각생을 기다리시던 교련선생님과 선도부의 얼차려로 고된 하루를 시작해야했던 기억이 납니다.

잠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이고 신비스러운 요소이지만 두 가지의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잠은 인간을 재생시키는 휴식이 되기도 하고, 어둠과 무의식 속으로 빠져 들게 하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잠은 삶의 원천이며 죽음의 형태로서 서로 다른 은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영적인 생활에서 잠은 영적 무감각과 나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잠은 죄를 야기하는 죽음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런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회개의 상징이요, 생명에로의 복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인생에는 결국 두 가지 철학이 있을 뿐이다. 첫째 철학은 우선 먹고 마시며 축제를 즐기다가 숙취로 끝나는 삶이 그것이고, 다른 철학은 먼저 단식 하다가 나중에 잔치의 기쁨을 맛보는 삶이 그것이다. 희생을 통해 나중에 얻게 된 기쁨이야말로 언제나 비할 데 없이 감미롭고 더 오래 남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환희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패배로 시작한다. 정신적 희열로 시작하는 환희의 종교들은 흔히 환멸과 실망으로 끝난다.”

이 시대의 영성가이며 위대한 가톨릭 저술가로 존경받는 풀톤 쉰(Fulton J. Sheen) 주교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대림절을 시작합니다. 우리를 빚으신 분이 하느님이심을 잊지 않는 삶만이 우리를 하느님의 길로 향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길을 떠나면 우리의 삶은 목적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가 잘못하였기 때문에 주님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능력만이 우리를 참다운 삶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믿음이 죄 속에 잠든 우리를 깨울 수 있다고 외칩니다.

사람은 잠을 자고 있어도 정신은 말짱하게 깨어 있을 수도 있고, 깨어 있을 지라도 쓸데없는 데에 정신을 팔게 되면 잠든 것과 같은 상태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일에 분주하여 신앙의 길을 소홀히 하게 되고,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채 헛된 욕망을 쫓아 살아가고 있다면 깨어 있어도 잠든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스승의 기도에 따라왔다가 잠든 제자들에게 애절한 목소리로 호소하십니다. “시몬아,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마르 14, 37~39)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하는 우리의 나약함이 깨어있으나 잠든 것과 같은 처지에서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참다운 소망을 품고 있는 사람은 잠자고 있어도 영혼은 늘 깨어 있습니다. 소풍가기 전날 저녁에 아침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맞이하는 사람이 새벽을 기다리는 것처럼, 좋은 것을 기다리는 사람은 ‘잠자리에 들었어도 정신은 말짱하게 깨어 있는 것입니다.’(아가 5, 2)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중에 ‘잠자는 숲속의 미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마법에 걸려 백 년 동안이나 숲속에서 잠에 빠져있었던 오로라 공주가 필립 왕자의 진정한 사랑이 담긴 입맞춤으로 잠에서 깨어나 사랑을 이루게 된다는 이야기는 잠든 우리를 깨우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일깨워줍니다.

우리를 잠에 빠져들게 하는 마법은 무엇일까? 인생의 길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삶의 무게일 수도 있고, 변화를 포기한 채 하루하루를 견디어내는 무기력한 삶일 수도 있고, 공허한 마음을 헛된 것으로 채우려는 결핍일 수도 있고, 영혼을 짓누르는 죄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는 도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삶은 우리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입을 다물게 합니다. 그래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상태 - 죽음의 잠 속에 우리를 가두어 둡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잠든 우리를 깨우러 오셨습니다. 당신의 목숨을 바쳐서 우리를 깨우시러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십자가는 잠든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사랑의 입맞춤입니다.

‘그분께서는 또한 여러분을 끝까지 굳세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1고린 1, 9)

김영수 신부 (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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