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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한 줌의 사랑 / 나광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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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3. 1. 1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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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한 줌의 사랑 / 나광남 신부

  




언젠가 서울에서 전철을 탔다.
마침 빈 자리가 있어 앉았다.
다음 역에서 세 명의 아이가 탔다.
중3 내지는 고1 쯤 되어 보였다.
한 아이는 내 옆 빈 자리에 앉았고 두 아이는 자리가 없어

 내 앞에서 손잡이를 잡고 섰다.
서 있는 아이들이 시끄럽게 이런저런 말을 주고 받았다.
그들의 대화 내용은 이랬다.


오른쪽 아이: "HOT가 뭐의 준말인지 아냐?"
왼쪽 아이: "몰라."
오른쪽 아이: "그것도 모르냐? '에이 촌티 나는 놈'의 준말이래."
둘은 깔깔대고 웃었다.

 

 




그들의 대화는 또 이어졌다.
왼쪽 아이: "내 여자 친구가 핸드폰 문자로 목사님 말씀이 은혜롭다고 교회에 가자더라."
오른쪽 아이: "뭐? 말씀이 은혜로워! 와! 되게 우습다! 말씀이 은혜롭대! 정말 처음 듣는 말이다."
신선한 충격이다.
그리고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오른쪽 아이는 또 깔깔대고 웃었다.
그러면서 하는 행동은 더 가관이었다.

 

 



 

둥근 손잡이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잡고는 딱딱 부딪치며

 손잡이에 매달려 턱걸이를 해댔다.
나의 눈살이 찌푸러졌다.
나는 속으로 '이런 버릇없는 녀석들 같으니라구!

정말 못된 녀석이구먼!'
그리고 막 그 행동을 제지하려는 차에 열차 끝쪽의 문이 열리면서

찬송가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나의 시선도 아이들의 시선도 소리나는 쪽을 향했고,

우리는 한 분의 할머니를 보게 됐다.
소경 할머니였다.

그런데 있을 수 없는 일이 내 앞에서 일어났다.

 

 



내 앞에서 그렇게 버릇없이 말하고 장난하던 오른쪽 아이가
갑자기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동전을 한 줌 꺼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동전 숫자를 세지도, 얼마짜린지 보지도 않았다.
그 아이는 왼쪽 아이에게 그 중의 반을 건네고는 자신의 가슴을
오른 손바닥으로 만지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저 소리만 들리면 왠지 가슴이 뭉클해."


그 할머니는 다가왔고 아이들은 아무 주저없이

그 동전을 할머니의 바구니에 쏟아 넣었다.
그리고는 멋쩍은 몸짓을 하더니 이내 아까 하던 행동을 반복했다.
둥근 손잡이 두 개를 딱딱 부딪치며

손잡이에 매달려 계속해서 턱걸이를 해댔다.
나는 머리를 망치로 한방 얻어 맞은 듯 했다.
'우째 이런 일이.'
저런 버릇없는 녀석들이 어떻게 저런 착한 일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무 주저없이.
그들을 욕했던 내 자신이 상당히 부끄러웠다.
나는 전철에서 내렸다.
걸으면서 생각은 계속 전철 속 아이들의 행동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뭔가를 정리해 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장난한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누구하나 제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바구니에 동전을 넣는 것, 그것은 분명 잘한 일이었다.
이 또한 다른 사람을 안중에 두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칭찬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지도, 칭찬도 못했다.
어느새 우리는 다른 사람을 안중에 두고

 의도적인 착한 행동을 하고 있고,
또 다른 사람이 볼까봐 보이지 않는 데서

나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 아이들의 행동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고 아주 신나는(?)충격이었다.
이제 더 이상 나에게 보여지는 사람들의 잘못된 말 한 마디,
잘못된 행동 한 가지에 내 모든 판단을 두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는 오늘도 그 녀석들을 생각한다.
'에이 버릇 있는 녀석, 착한 녀석.'
나는 오늘도 그런 녀석을 만나고 싶다.
그들이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을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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