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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이 미이라불상이 되기까지의 엽기고행

종교학(宗敎學)

by 巡禮者 2010. 4. 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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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이 미이라불상이 되기까지의 엽기고행


전설에 의하면 Sokushinbutsu는 한마디로 죽어서 미이라佛이 되는 고행이라고 할수가 있습니다. 즉 미이라불상이 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는데, 그 죽는 방법과 과정이 너무나 혹독하고 잔인해요. 이習俗은 일본 북부의 Yamagata市에서 전해오는데 그곳에는 대략 16~24구의 이런 미이라佛이 있답니다.

미리라佛이 되기를 원하는 스님들은 3년 동안 특별한 식이요법을 행합니다.

그들은 물기가 적은 단단한 과일과 씨앗들을 먹으며 엄격한 신체요법과정을 3년동안 실행합니다. 이렇게 하면 몸안에 축척되었던 지방이 모두 분해되어 사라집니다.


다음 단계는 나무껍질과 뿌리, 그리고 옻 나무즙(옻칠을 하는 도료)을 마십니다.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뱃속의 모든 기생충이나 세균등은 배설되거나 토하여서 몸안의 액체는 전부 소진된다고 해요. 이 과정 역시 3년이 걸린다는 것으로 보아 인체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인한지 놀랍습니다.


그런 과정을 전부 거치면 연꽃모양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준비한 연꽃모양 비슷한 관속에 들어가 앉습니다. 이 관에는 작은 구멍이 있고 이 구멍으로 끈을 늘이어서 방울을 달아 관속의 스님은 매일 방울을 흔들어서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립니다.


이렇게 지나다가 어느 날인가 방울소리가 없고 밖에서 흔들어도 응답이 없으면 죽음에 이른 것으로 판단을 하고 구멍을 막고 장례를 치룹니다.



원래 부처님이 설파하신 成佛의 의미가 이런 것이었을까요? 부처님은 정신세계의 得道를 위해서 그 과정으로 고행을 하고 자선을 베풀라고 하였다.



해탈 [解脫]  vimoka

불교에서 인간의 속세적(俗世的)인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상태.


인간의 근본적 아집(我執)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인도사상(印度思想)·불교는 이것을 종교와 인생의 궁극 목적으로 생각하였다. 즉 범부는 탐욕·분노·어리석음 등의 번뇌 또는 과거의 업(業)에 속박되어 있으며, 이로부터의 해방이 곧 구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구원은 타율적으로 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혜, 즉 반야(般若)를 증득(證得)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는 데 특징이 있다. 결국 번뇌의 속박을 떠나 삼계(三界:欲界·色界·無色界)를 탈각(脫却)하여 무애자재(無礙自在)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가리킨다.

 

열반 [涅槃]   nirvāna 

불교에서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

열반이란, 산스크리트의 ‘니르바나’의 음역인데, 니원(泥洹) ·열반나(涅槃那) 등으로 음역하기도 하며 멸도(滅度) ·적멸(寂滅) ·원적(圓寂), 또는 무위(無爲) ·부작(不作) ·무생(無生) 등으로도 의역한다. nir(out)+vā(to blow)의 어원으로 해석되는 열반의 본뜻은 ‘불어서 끄는 것’ ‘불어서 꺼진 상태’를 뜻하며, 마치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 ·고뇌가 소멸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때 비로소 적정(寂靜)한 최상의 안락(安樂)이 실현된다. 현대적인 의미로는 영원한 평안, 완전한 평화라고 할 수 있다.


남방의 팔리 불교에서는 조림(稠林)이 없는 것으로, 이 경우에도 번뇌의 숲이 없어진 상태를 열반이라고 한다. 부파불교(部派佛敎)에 이르러서는 석가불의 이상화 ·신격화에 따라 열반에 대한 생각도 변하여, 수행자가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이 세상에 생존하는 동안에는 완전한 열반을 체득하기란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 세상에 생존하는 동안에 얻어진 열반은 불완전한 것(有餘涅槃)이며, 사후에 비로소 완전한 상태에 들어간다(無餘涅槃)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석가불과는 달리 열반의 경지가 아니라 아라한(阿羅漢:궁극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대승불교에서는 유여 ·무여열반 외에 본래자성청정열반(本來自性淸淨涅槃)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을 주장하였다. 전자는 일체중생의 심성(心性)이 본래 청정하다는 것으로, 진여(眞如:있는 그대로의 진리) 그 자체임을 달관하여 안심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하며, 후자는 대승불교에서 이상으로 여기는 열반으로서 생사에도 머물지 않고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 것, 즉 열반 비지원만(悲智圓滿:자비와 지혜가 원만함) ·임운무작(任運無作:아무런 조작 없이 있는 그대로 운용됨)의 불 ·보살의 상태를 말한다. 결국 열반이 어떤 특별한 경지로서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범부(凡夫)의 미혹이며, 열반은 유(有)도 무(無)도 아닌 공(空)으로서 윤회나 열반이나 어떤 구분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의 보살의 활동이 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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