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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대축일(마태오 28, 16~20)“일즉다, 다즉일”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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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대축일(마태오 28, 16~20)“일즉다, 다즉일”

발행일 : 2003-06-15 [제2352호]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하시는 주님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과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만난다면 대화는 불가능합니다. 서로의 언어를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상대의 모국어를 이해하든지 아니면 통역을 거칠 때만 그 대화는 가능합니다.

부부심리를 연구하는 분들에 의하면 부부가 대화 생활을 잘 할 수 없는 원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하는데 그중에 한 가지는 부부가 사용하는 언어에서 찾습니다.

남 녀는 각기 다른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이러한 다른 사랑의 언어를 「이해와 통역」 없이 자신의 관점에서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려 하기에 대화는 자주 단절되고, 대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인정과 사랑, 이해와 관심이 벽에 부딪히게 되고 대화 생활은 단절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언어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남?녀의 차이, 그리고 이 세상의 가장 독특한 그 사람만의 언어를 이해하면서 사랑을 전할 때는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언어로 표현할 때 사랑의 대화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초월자와 인간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신에 대한 이해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시도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 사이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요, 또 유한한 인간의 언어로 하느님을 규정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어쩌면 어리석은 행위요, 더 나아가 한계를 가진 인간의 머리로 무한한 하느님의 신비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만질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의 신비, 우주와 지구, 생명체의 신비 앞에서 경건성을 가져야 된다면, 무한한 신 앞에서 우리가 취할 태도는 이성의 논리에 따른 이해보다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신뢰와 믿음 그리고 경건성이 우리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신비를 기리는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이 교리는 오늘 감사송에 나와 있듯,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느님이시며 한 주님이시나, 위로서 하나가 아니시고 삼위일체이신 본체로서 하나라는 것, 한 하느님이 세 위격으로서 존재하는데 이 위격들은 하나의 하느님 본성이고, 본질이며 실체라는 교리로 니케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를 거치면서 형성된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것은 어떤 이론적인 사색에서 나온 정의이기 보다는 초대교회가 예수님과 성령의 체험에서 출발한 교리라는 사실입니다. 즉, 예수님과 성령 안에서 하느님을 본 사람들의 체험입니다.

그러기에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일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말하는 언어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면서 가져야 되는 태도는, 다양함 속에서 활동하시는 그분의 모습을 발견하는 눈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자와 성령의 모습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사도들과 교부들처럼 오늘의 다양한 모습과 환경 속에서 활동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첫 복음의 장소인 갈릴래아에서 전도명령과 함께 당신의 현존을 약속합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전도 명령과 함께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는 현존을 약속함으로 제자들을 위로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현존 약속은 복음서 처음의 약속인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약속의 성취이고, 또 이는 구약에서 예언자들을 파견할 때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하신 하느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세상에 나아가기를 멈칫거리는 예언자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기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이러한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떤 사건이나 일 또는 능력에서가 아니라 하느님 현존 자체에서 위로와 힘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는 그분의 현존을 의식할 때 우리 신앙은 의미와 활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삼위일체 대축일, 일(一)즉(則)다(多) 다즉일 이란 선현들의 말씀을 헤아려 보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맛보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는 대축일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홍금표 신부〈원주교구 삼척종합복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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