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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곡...아리랑

국악(國樂樂)

by 巡禮者 2011. 10. 2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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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곡...아리랑~~!!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작곡가들로 이루어진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하기 대회에서 한국 고유의 전통 음악인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에 지지율 82%라는 엄청난 지지를 받고 아리랑이 선정됐다고합니다.


선정 과정 중에서 단 한명의 한국인도 없었기 때문에 서로가 놀라는 눈치였다고 했습니다.

선정인들은 듣는 도중 몇 번씩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리랑"은 음악을 사랑하는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깨우쳐줬다 해도 과언은 아닌듯 싶습니다.



 


아 리 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 여성 아카펠라의 진수 - Ladies Talk



아리랑 클래식 버젼



아리랑을 얼후[이호二胡]로 연주한 것

아리랑을 '얼후(이호二胡)'라는 동양악기를 주축으로하여 여러가지 서양악기들과 함께 연주한 것입니다. '얼후'라는 악기는 우리나라 전통악기 '해금'과 비슷한 중국이나 티벳의 전통악기입니다.


한국의 대표적 구전민요.


[개요]


어느 시대에 생겨났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지금 전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해외에도 널리 전승되고 있다.


[기원]


〈아리랑〉의 기원설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체로 여음인 '아리랑'의 어원에서 그 바탕을 찾고 있다. 〈아리랑〉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시기는 1930년대를 전후한 시기이다. 이런 이유로 어원설은 대체로 〈아리랑〉의 최초의 형태가 1930년대에 정착된 〈아리랑〉과 유사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아리랑'이라는 말을 실사(實詞)로 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① 아리랑(我離娘):'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 ② 아이농설(我耳聾說):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고생하던 민중들이 반가운 말은 못듣고 괴로운 말만 듣게 되니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는 설, ③ 아랑전설(阿娘傳說):밀양 영남루의 아랑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노래에서 나왔다는 설, ④ 알영설(閼英說):신라의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말에서 변했다는 설 등이 있다. 이밖에도 여러 발생설이 있으나 어느 것도 확실한 근거가 없으니 그저 구음(口音)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 유래했다고 봄이 바람직하다.


[역사적 상징]


아리랑은 다른 민요와 마찬가지로 본래 노동요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때의 주로 두레노래로 불렸으며, 따라서 구술과 암기에 의한 전승 또는 자연적 습득이라는 민속성 이외에 지역동동체 집단의 소산이라는 민속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 집단성은 시대성과 사회성을 내포하게 되었다. 비록 그 노랫말이 개인적인 넋두리의 비중이 컸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근세의 민족사가 반영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농부든 어부든 광부든 각기 그들 생활 속의 애환을 아리랑에 담았다는 점에서 직업공동체·사회공동체의 이른바 문화적 독자성이 강한 노래가 되었고,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민족적 동질성을 지탱하는 가락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대원군에 의한 경복궁 중건때의 민중의 고통이나 관리의 가렴주구가 아리랑에 얽혀 전해지는가 하면, 일제 강점기하의 민족적 수난에 대한 저항의식이 나운규 제작의 영화〈아리랑〉을 탄생케 했음이 이를 입증한다. 특히 영화〈아리랑〉의 등장은 아리랑이 지니는 역사적 상징이 민간전승으로부터 다른 차원의 문화영역으로 옮겨갔음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예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리랑은 단순히 단일한 장르의 민요로 파악할 수 없는 다양성과 초역사성을 지닌 음악사·문학사·예술사의 거봉으로서, 우리 민족의 원초적 정서와 맥을 같이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아리랑의 파급]


한국의 3대 전통민요 아리랑은 〈정선아리랑〉·〈진도아리랑〉·〈밀양아리랑〉을 말한다. 〈정선아리랑〉은 태백산맥 동서를 따라 설정된 메나리토리권의 민요로 민요적 전통성과 지역성이 강하다. 〈진도아리랑〉은 호남지역의 육자배기토리권에 속하지만 다른 육자배기토리 민요와 약간 차이가 있다. 전라남도 진도와 호남지역, 충청남도 일대, 경상남도 서부지역, 제주도 등에 분포되어 있다. 〈밀양아리랑〉은 영남지역에서 전하지만 영남지역의 정자토리 민요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편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 〈신아리랑〉을 계기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통속민요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후 〈아리랑〉은 대중가요·영화·무용·문학 등의 전 예술분야에 파급되는 현상을 가져왔다. 대중가요로는 1931년 〈낙랑아리랑〉을 비롯하여 많은 곡이 만들어졌고 신민요에는 〈경기아리랑〉이 효시가 되어 많은 곡들이 불렸다. 3대 전통 아리랑을 제외한 여러 아리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춘천아리랑〉(한말에 춘천에서 의병투쟁을 벌일 때 부른 노래)·〈본조아리랑〉(대원군과 민비의 권력 싸움을 민중들이 성토한 노래)·〈광복군아리랑〉(만주 광복군의 독립의지를 담고 있는 노래)·〈치르치크 아리랑〉(조국을 빼앗기고 소련으로 떠난 알타아타시의 한인들이 부른 노래) 등이 있다. 대중가요 아리랑으로 〈아리랑 삼천리〉·〈영암아리랑〉 등이 있다. 남북이 분단된 지금은 아리랑이 민족화합의 노래로서 널리 불리고 있다.

 

 

♪ 정선아리랑 - 김영임
 





정선아리랑 - 김영임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유정사 법당 뒤에 칠성단 모두 붙고
팔자에 없는 아들 딸 낳아 달라고
석달 열흘 노구에 정성을 말고
타관백리 외로이 난 사람 괄시를 마라


세파에 시달린 몸 만사에 뜻이 없어
홀연히 다 떨치고 청려(靑藜)* 를 의지하여
지향 없이 가노라니 풍광은 예와 달라
만물이 소연한데 해저무는 저녁노을


무심히 바라보며 옛일을 추억하고
시름 없이 있노라니 눈앞에 왼갖 것이
모두 시름 뿐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오


태산준령 험한 고개 칡넝쿨 얼크러진
가시덤불 헤치고 시냇물 굽이치는
골짜기 휘돌아서 불원천리 허덕지덕
허위단심 그대를 찾아왔건만
보고도 본체 만체 돈담무심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법당 뒤에 촛불을 밝혀두고
아들 딸 낳아 달라고


두손을 모아 비는구나

 

 

 

 

♪ 진도아리랑 - 김영임


 





진도아리랑 - 김영임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 눈물이 난다



약산 고을에 진달래 꽃을
한송이만 캐어도 모두 따라간다



간다 간다 내 돌아간다
정든님 따라서 내가 돌아간다



* '구비구비' 의 사투리

 

 

 

 

♪ 밀양아리랑 - 이지수

 

 

심포니 팝 피아니스트 이지수와 체코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의 협연 <밀양 아리랑>

새로 나온 이지수의 2집 앨범 Dream of you 에 수록된 곡

 

심포닉 팝 아티스트는 대중음악에 오케스트레이션을 가미해 귀에 익숙한 음악을 보다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것 많은 사람들의 그의 음악을 주목한다.

익숙함 속에서 신선함을 발견할 때 공감하며 감동하고 열광하기 때문이다.

 

겨울연가, 봄의 왈츠, 실미도, 게임 Zera 의 OST 에 참여해 보다 유명해진 이지수지만

피아니스트로서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무대에서 더욱 빛이 나다.


 





밀양아리랑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어절씨구 아라리가 났네


동부지방 민요의 한 축을 이루는 밀양 아리랑은 빠른 장단이 많이 쓰여 경쾌하고 흥겨운 민요이다. 흔히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로 시작하는 밀양 아리랑 가락에는 힘찬 세마치 장단의 경쾌함이 짙게 깔려있다.


하지만 밀양 아리랑은 그 흥겨움에 반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으스스한 전설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옛날 조선 명종 때 밀양 부사에게 아랑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한 관노가 아랑의 미모에 반해 사모하게 되었다. 어느 날 이 관노가 침모를 시켜 아랑을 영남루로 유인했다. 아랑이 루에 올라 달빛에 취해 있을 때 그 관노가 나타나 사랑을 고백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을 했다.


하지만 아랑이 저항을 하자 칼로 찔러 살해하고 암매장해 버렸다. 딸을 찾지 못한 부사가 서울로 올라 가고 난 후부터 새로 부임하는 부사는 원인 모르게 급사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다가 담이 큰 부사가 부임하여 아랑귀신을 만나 자초지종을 알게 되고 죄인을 찾아 처벌하여 아랑의 원한을 달래 주었다는 이야기다.


아랑의 정절을 기려 밀양의 부녀들이 부르던 노래가 '아랑가'였는데, 그것이 변하여 밀양 아리랑이 되었다는 것이다.


경남 밀양에서는 밀양 아리랑의 근원 설화인 아랑의 넋을 추모하는 아랑제를 매년 음력 4월 16일에 열고 있으며, 1999년 밀양아리랑보존연합회가 구성되어 활발한 보존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 사랑향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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