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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신부님인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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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1. 9. 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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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신부님인줄 몰랐습니다!

  

 

     난 화물차를 몰고 다닌다. 화물차 기사가 아니라, 내 차가 사람도 6명 태울 수 있는

     더블 캡 4륜구동 1톤 화물차이다. 내가 화물차를 몰고 여기저기 다니면 사람들이 먼저

     묻고는 한다.

 

    "이 차가 신부님 차입니까." "예",

 

    "그게 아니라요. 신부님이 돈 주고 직접 사신 차냐고요?" "예, 왜요"

 

    화물차는 신부가 된 다음해부터 본당에 고물상을 차려놓고, 폐지와 공병을 수집하여

    우리보다 더 못한 사람들을 돕는데 쓰기 위해 구입한 것이다.

 

    물론 나의 승용차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일 때문에 곳곳에서

    본의 아니게 신자들에게 마치 암행감찰, 요새 말로는 몰래카메라 같은 역할을 할 때가 있다.

 

    내 차에 걸 맞는 품위(?)를 안고 사는지라, 나를 모르는 신자들이 신부인 것을 모른 채 나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평상시 그 신자들이 사람대하는 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화물차를 몰고 다니는 익명의 어떤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말이다.

 

    이 글을 쓰기 하루 전 일이다.

 

   타 본당 신자 분들이 우리 본당에 볼일이 있어 들르신다는 소식을 수녀님으로부터 들었다.

   그때도 역시 난 본당의 한 신자분과 함께 폐지와 공병을 분리하는 중이었고, 열심히 작업하는

   도중에 그 신자 분들이 마당으로 들어오셨다.

 

   차에서 내리는 그분들을 보며 난 "어떻게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나 묵묵부답.

   못 들었나 싶어 더 큰소리로 "저기요 어떻게 오셨습니까." 역시 대답은커녕 묻는 쪽으로

   고개도 안 돌린다.

 

   순간 발끈한 나 "사람이 묻는데 왜 대답을 안 합니까?" 그때 수녀님이 나타나셔서

    "본당신부님이세요."하니 "어머 신부님! 신부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신부인줄 당연히 몰랐겠지. 내 면상에 신부라고 쓰여 있는 것도 아니고, ‘나 신부’ 라고

   명찰 달고 일하는 것도 아니려니와 풍기는 이미지도 영 신부와 어울리지 않으니…

 

   그러나 내가 발끈하고 화가 나는 이유는, 아니 이런 일들이 허다하지만 영 너그러워지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신부인데 감히 신자가 신부도 못 알아보느냐가 아니라. 신부이면 만난 적이 없어도

   들어서 잘 안다는 둥, 인사라도 한번 나눈 적이 있으면 굉장히 친한 척, 아는 척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면서 몰골이 좀 변변치 못한 사람들에게는 자기 본당에 들어오는

   사람이건, 남의 본당에서 만난 사람이건 모두가 안면몰수이니 천주교 신자들은 정말 ’야박’

   하고 ’폐쇄적’ 이란 생각이 들곤 한다.

 

   주임신부님 만나러 왔다고 말씀드려도 화물차는 절대 성당에 주차가 안 된다는 서울의 어느

   본당. 후배신부 만나러 기분 좋게 찾아간 전주의 어느 본당에서의 문전박대. 무엇보다도 같은

   교구 행사나 본당 곳곳에서 느끼는 신자들의 불친절과 교양 없는 언행… 그러다 신부인 것을

   알고 나면 어쩔 줄 몰라 하며 내뱉는 말.

 

    "신부님인줄 몰랐습니다."

 

   신부에게는 또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것도 되고, 소위 변변치

   못하게 보이는 사람을 대할 때에는 쳐다보지도 않고, 무심하고 야박하게 구는 모습들은

   신부가 되기 전부터 내가 안타깝게 느낀 천주교 신자들의 모습이다.

 

    한마디로 세속의 얄팍한 사람들과 다를 것 하나 없는 모습이다.

 

   바르티매오라는 앞을 보지 못하는 거지는 예수님을 따르는 행렬이 나타나자 예수님께

   간곡하게 자비를 청한다. 사람들은 그 앞 못 보는 거지에게 조용히 하라고 꾸짖는다.

   (마르코10.46-48)

 

   만약 자비를 청하는 사람이 거지가 아니라, 고관이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과 무엇이 다르던가?

 

   몸은 예수님을 따르는 행렬에 속해 있지만, 이미 마음은 그 행렬을 떠나 있음을, 그 행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예수님은 그것과 상관없이 그 거지의 눈을 뜨게 해주신다. 나도 거지가 될 수 있다. 나도

   변변치 못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나도 지금 변변치 못한 사람이다.

 

    하느님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담겨져 있다.

 

▣  춘천교구 권오준 베네딕토 루치아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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