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 요한 33~37) - ‘하늘과 땅의 주재자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09:16

본문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 요한 33~37) - ‘하늘과 땅의 주재자’

발행일 : 2003-11-23 [제2374호]

권위주의 시대 세대들은 불신 받고 힘없어 보이는 오늘의 대통령 모습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박정희가 대통령인지 대통령이 박정희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던 시대에 살면서 대통령을 위엄과 권위의 상징으로 세뇌된 필자나 그 이전 세대들은 언론과 국회에 치이고, 또 검찰에서조차 불신 받고 각종 이익집단으로부터 공격받는 힘없는 대통령의 모습은 실망과 함께 나라의 앞일까지 걱정하게 만드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힘없는 대통령, 불신 받고 초라한 대통령의 모습은 결코 부정적인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숙성도 함께 보여주는 지표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힘이 없기에 통치와 지배의 관점이 아니라 그만큼 더 봉사의 관점으로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는 점과, 이러한 모습이 어쩌면 예수님이 가르친 지도자의 모습에 더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인류가 추구해야 할 지도력은 지배와 통치의 지도력이 아니라 사랑과 봉사가 바탕이 된 지도력, 위로부터 주어지는 획일적이고 강력한 힘이 아니라 낮은 곳을 향해 다가가는 초라한 모습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전례력으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중 제 34주일을 지내면서 하늘과 땅의 주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기리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어처구니없게도 세상의 왕이신 예수님이 일개 총독인 빌라도에게 심문 받는 모습입니다.

우선 오늘 복음의 교훈을 생각하기 전에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이 너를 유다인의 왕이라고 고발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냐는 빌라도의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이 대답은 우선 예수님이 왕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라는 말씀으로 영토와 조직,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의미에서의 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메시아에 대한 분명한 선을 그음으로써 오늘의 우리에게도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부분은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란 37절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속한 것만을 모든 것으로 아는 인간, 힘과 권력을 진리로 알고 있는 빌라도에게는 내적이고 정신적인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일 수밖에 없기에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빌라도는 『아무튼 네가 왕이냐?』고 질문하게 되는데 위의 말씀은 이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여기서 진리라는 말을 주석가들은 『하느님은 사랑이요 구원이시라는 것』, 그리고 『예수님은 사랑과 구원의 중개자라는 계시』를 뜻하는 말이라 정의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대답은 앞의 대답에 대한 강조입니다.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면서, 당신의 왕국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백성으로 하는 내적이고 정신적인 의미의 왕국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생각해야 할 바는 그리스도 왕권을 기리는 오늘 초라한 예수님의 모습을 복음으로 선택한 교회의 의도입니다.

아마 첫 번째 이유는 다스림에 대한 모범을 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세상의 왕이신 예수님이 심판받고 처형 받는다! 철저한 자기 비움과 목숨 바친 사랑, 진리에 대한 철저한 헌신이 다스림의 모범이라는 것이지요. 교회가 그리스도의 왕직을 봉사직이라 칭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고,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이들이 특히 생각해야할 모범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의도는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신앙해야 하는가 하는데 대한 대답을 주기 위함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섬기고 숭배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하늘」에 계시고, 높은 데에 계시는 하느님이라면 섬기고 제사 드리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임마누엘), 심판 받고 고통 받는 예수님이라면 그러한 대상일수만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늘을 우러르기 전에 먼저 주위를 살펴야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기에 고통 받고 소외된 이웃 안에서 느끼고 체험하고 발견해야 할 하느님이 바로 우리가 신앙하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글을 마치면서 필자가 오늘 복음에서 정말 묵상하고 싶은 점은 빌라도의 조소 섞인 심문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주위의 환경과 자신의 욕심, 그리고 다른 이들의 조소 섞인 언행 때문에 자신이 진정으로 가야할 길을 외면하는 모습이 바로 오늘의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홍금표 신부〈원주교구 삼척종합복지관장〉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