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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십경(瀛洲十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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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1. 4. 2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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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십경(瀛洲十景)

 

 

조선 후기 제주도 향토 학자이던 

매계(梅溪) 이한우(李漢雨 1818/1823~1881년)가 선택한

제주도의  10가지 경승(景勝)를 일컫는 말이

영주십경(瀛洲十景) 입니다. 

여기서 영주(瀛洲)는 신선이 사는 곳을 뜻하는 제주도의 별칭입니다.

 

십경을 10폭 병풍처럼 간결하면서도 상호 연관된 시로 그려낸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그가 선택한 10경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가 성산일출- 성산포의 일출봉에서 바라보는 해뜨는 광경

둘째는 사봉낙조-  제주시의 사라봉에서 바라보는 해지는 광경

세째가 영봉춘화 - 한라산 언덕에 핀 봄꽃의 아름다움

네째가 귤림추색 - 가을에 귤이 노랗게 열린 귤나무 숲

다섯째가 정방하포 - 여름에 바다로 곧바로 물줄기가 떨어지는

                            정방폭포의 장엄한 풍경

여섯째는 녹담만설 - 봄이 늦도록 하얗게 눈이 덮힌 백록담의 풍경

일곱째가 산포조어 - 산지포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는 풍경

여덟째가 고수목마 - 방목된 말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는 풍경

아홉째는 영실기암 - 한라산 영실의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이루어놓은 경치

열째가 산방굴사 -산방산 중턱의 굴 속에 있는 절인 산방굴의

늙은 소나무 사이로 바라보이는 남쪽 바다의 풍경

 

 

 

 

1. 성산출일 ( 城山出日 )

 

일출봉에서 동해의 해돋이를 바라보는 장관을 말한다.

성산 일출봉은 제주도의 동쪽 끝 바닷가에 위치한 한 개의

바위덩어리로 된 산이다.

    

해발 182m의 이 산은 바다 가운데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를

이루면서 정상은  속칭 99봉우리의 암벽으로 성곽처럼

펼쳐져 화산이 폭발할 때 생긴 분화구가 하나의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성산 일출봉 꼭대기에 올라서 바다의 해돋이를 보면

둥근 불덩어리가 수평선이 아니라 한가운데서 솟아나

온 바다를 불태워 꿈틀거리면서 다가오는 것 같은

장엄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 산은 주위가 깎은 듯한 기암 절벽이 되어 솟아올랐고,

그 정상은 우묵하게 패어져 분지(盆地)를 이루었다.

이 분지의 주위는 형형 색색의 암봉(岩峯)으로 둘러있는데,

수가 아흔 아홉이라고 한다.   

    

만일 그 봉우리가 1백 이였다면 제주에도 호랑이,

사자 같은 맹수가 날 것인데, 하나가 모자라 아흔 아홉이기 때문에

호랑이도 사자도 아니 난다고 한다.

 

 

 

 

 

 

2. 사봉낙조 ( 紗峰落照 )

 

제주시 사라봉에서 바다로 지는 일몰의 광경을 말한다.

사라봉은 제주시내 동북쪽 바닷가에 솟은 산이다.

148m 높이의 이 봉우리는 남으로 한라산과 면하고

서북은 바다로 뻗어 나와

성산 일출봉과 대조적이다.

     

사라봉에 올라서 제주시내와 제주항의 조망 너머 저 멀리

서녘바다로 해가 지는  석양을 바라다보면 마치 하늘과

바다가 맞붙어 불타는 듯한 감동에 휩싸인다

 

 

 

 

3. 영구춘화( 瀛邱春花 )

 

제주시 남쪽 방선문에서 봄의 철쭉꽃을 감상하는 일을 말한다.

제주시 오등동 남쪽 6km에 위치한 방선문은 제주시 용담으로

흐르는 한천의 상류로서 계곡 양편은 기암과, 수림,

그리고 철쭉꽃의 명소이다.

 

여기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두 갈래 계곡이 마주치는 곳에 대문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이 석문이 바로 방선문이다.

이 바위문은 그 안에 1백여 명이 들어앉을 만한 넓이이다.

그리고 이곳 양편 바위 벼랑으로 둘러싸인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흘러서

시원한 느낌을 준다.

 

 

 

 

4. 귤림추색 ( 橘林秋色 )

 

제주시 오현단 주변 귤 과원의 가을경치에서 연유한다.

제주에서 처음 과원이 생긴 곳은 옛 주성 즉, 지금의 제주시였다.

 

늦가을 주성에 라서 바라보면 과원에 노랗게 익은 귤들이

별세계를 이루었다.

 

노란 감귤은 제주의 늦가을 정취를 대표한다.

 

10월 중순 이후 절정을 이루는 노란 감귤과 가을 바람이 빚어내는

정취는 단풍 일색인 다른 고장의 가을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서귀포, 남원, 중문 쪽의 남제주군 지역에 감귤 농원이 밀집해

있어 귤림추색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현재의 제주시내에서는 옛 귤림추색을 볼 수 없으나 해방 후

남제주군 일대부터 감귤재배가 확대되면서 지금은 제주 전역에서

귤림추색을 수 있게 되었다

 

 

 

 

   5. 정방하폭( 正房夏瀑 )

 

정방폭포에 여름이 와서 깎아지른 바위벼랑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마치 하늘에서하얀 비단을 드리운 것처럼 되었을

때를 말한다. 

 

그러므로 정방폭포는 바다 쪽에서 보는 것이 제격이다.

 

서귀포 동쪽 바닷가에 있는 정방폭포는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로 유명하다.

 

폭포의 높이는 23m 이고 특히 주변의 해안절벽은 장관을 이루고,

앞 바다에 섶섬, 문섬, 새섬 등은 난대림이 우거져 남국의  

이국적인 정취를 한결 돋군다.

 

낙하수의 물보라에 의한 무지개와 인근 바다의 파도소리가

어우러진 장관은 이 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4. 녹담만설 ( 鹿潭晩雪 )

 

한라산 정상에 쌓인 겨울눈이 이듬해 5월까지 녹지 않아서 산봉우리를 하얗게

빛내는 광경을 말한다.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은 화산 폭발 때 분화구였던 곳에 고여 있는 둘레 2km의

깊고 맑은 못이다.

신선들이 하얀 사슴을 타고 노니는 곳으로 그 사슴들이 이 못물을 마셨다 하여

백록담이라고 일컬어진다.

백록담은 그 주위가 옛 분화구였던 기아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그 절벽에는

고산지대의 갖가지 야생화들이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특히 이곳에는 누운향나무들이 깔려있고 주변에는 구상나무 수풀, 그리고

철쭉밭이 펼쳐져 있다.

 

 

방선문 (訪仙門)

      방선문은 제주시 아라동 들판에 있는 절경인데, 영주십경의 하나로 쳐온 경승지이다.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기도 했던 곳으로,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어느 해 중복 날 여러 선비들이 방선문에 가서 반석(먹돌판) 위에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선비가 돌연 흑심을 품기 시작했다.

      중복 날이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간다고 하니, 한번 구경이나

      해 보자는 속셈이었다.

      흑심을 품은 선비는 여러 친구들이 바둑시합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는데도 혼자 남아

      바위틈에 숨어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사오시(巳午時)가 될 무렵에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서는 옷을 벗고 목욕하기 시작했다.

      숨어 기다리던 선비는 아름다운 선녀들의 몸매를 구경이나 해 보려고 바위틈에서 머리를 쑥

      내밀었더니, 마침 한 선녀가 이를 보고 말았다.

      그 선녀는 깜짝 놀라며, '인간세계 사람이 우리가 목욕하는 것을 본다.' 고 고함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소리에 같이 목욕하던 선녀들도 황급히 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옥황상제는 목욕하러 인간세상으로 내려갔던 선녀들이 급히 올라와 버린 것이 하도 이상해서,
      "어떻게 해서 이렇게들 속히 올라오게 되었느냐?"
      "우리들이 목욕하는 것을 인간세계 사람들이 머리를 쳐들고 보려고 하기 때문에 겁이 나서

      올라왔습니다."
      "그 놈이 지금 그 자리에 있을까?"
      "혹, 있을 것입니다."
      옥황상제는 오방신장(五方神將)들을 시켜 인간세상으로 내려가 그 선비를 잡아오도록 했고

      오방신장들은 인간세계로 내려와 그 선비를 잡아다가 옥황상제 앞에 꿇어 앉혔다.

      괘씸하게 생각한 옥황상제는,"어째서 그렇게 불순한 행위를 하였느냐?" "그런 게 아니오라,

      선녀들이 목욕하는게 너무나 아름다워서 조금만 쳐다보려고 했는데, 그만들키고 말았습니다."

      "내가 당장 너의 목을 치고 싶지만 살려주겠다.

      대신 너는 백사슴이 되어서 한라산 백록담이나 지키도록 해라."
      선비는 백사슴이 되어 백록담에 살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제주도에 사슴이 많았을 적에는 한라산에 비가 오려고 하면, 흰 사슴이

      나와서 끽끽끽끽 울어대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고 한다.

 

 

 

 

 

 

 

 

 

 

 

 

 

 

2. 정방하폭 ( 正房夏瀑 )

 

       정방폭포에 여름이 와서 깎아지른 바위벼랑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마치 하늘에서

       하얀 비단을 드리운 것처럼 되었을 때를 말한다.

       그러므로 정방폭포는 바다 쪽에서 보는 것이 제격이다.

       서귀포 동쪽 바닷가에 있는 정방폭포는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로 유명하다.

       폭포의 높이는 23m 이고 특히 주변의 해안절벽은 장관을 이루고, 앞 바다에 섶섬,

       문섬, 새섬 등은 난대림이 우거져 남국의   이국적인 정취를 한결 돋군다.

       낙하수의 물보라에 의한 무지개와 인근 바다의 파도소리가 어우러진 장관은

       이 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3. 귤림추색 ( 橘林秋色 )

 

        제주시 오현단 주변 귤 과원의 가을경치에서 연유한다.

      제주에서 처음 과원이 생긴 곳은 옛 주성 즉, 지금의 제주시였다.

      늦가을 주성에 라서 바라보면 과원에 노랗게 익은 귤들이 별세계를 이루었다.

      노란 감귤은 제주의 늦가을 정취를 대표한다.

      10월 중순 이후 절정을 이루는 노란 감귤과 가을 바람이 빚어내는 정취는 단풍

      일색인 다른 고장의 가을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서귀포, 남원, 중문 쪽의 남제주군 지역에 감귤 농원이 밀집해 있어

      귤림추색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현재의 제주시내에서는 옛 귤림추색을 볼 수 없으나 해방 후 남제주군 일대부터

      감귤재배가 확대되면서 지금은 제주 전역에서 귤림추색을 볼 수 있게 되었다.


 

  4. 녹담만설 ( 鹿潭晩雪 )

 

         한라산 정상에 쌓인 겨울눈이 이듬해 5월까지 녹지 않아서 산봉우리를 하얗게

       빛내는 광경을 말한다.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은 화산 폭발 때 분화구였던 곳에 고여 있는 둘레 2km의

       깊고 맑은 못이다.

       신선들이 하얀 사슴을 타고 노니는 곳으로 그 사슴들이 이 못물을 마셨다 하여

       백록담이라고 일컬어진다.

       백록담은 그 주위가 옛 분화구였던 기아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그 절벽에는

       고산지대의 갖가지 야생화들이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특히 이곳에는 누운향나무들이 깔려있고 주변에는 구상나무 수풀, 그리고

       철쭉밭이 펼쳐져 있다.


 

 5. 사봉낙조 ( 紗峰落照 )

 

      제주시 사라봉에서 바다로 지는 일몰의 광경을 말한다.

      사라봉은 제주시내 동북쪽 바닷가에 솟은 산이다.

      148m 높이의 이 봉우리는 남으로 한라산과 면하고 서북은 바다로 뻗어 나와

      성산 일출봉과 대조적이다.

      사라봉에 올라서 제주시내와 제주항의 조망 너머 저 멀리 서녘바다로 해가 지는

      석양을 바라다보면 마치 하늘과 바다가 맞붙어 불타는 듯한 감동에 휩싸인다.

 

6. 성산출일 ( 城山出日 )

 

     일출봉에서 동해의 해돋이를 바라보는 장관을 말한다.

     성산 일출봉은 제주도의 동쪽 끝 바닷가에 위치한 한 개의 바위덩어리로 된 산이다.

     해발 182m의 이 산은 바다 가운데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를 이루면서 정상은

     속칭 99봉우리의 암벽으로 성곽처럼 펼쳐져 화산이 폭발할 때 생긴 분화구가 하나의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성산 일출봉 꼭대기에 올라서 바다의 해돋이를 보면 둥근 불덩어리가 수평선이

     아니라 한가운데서 솟아나 온 바다를 불태워 꿈틀거리면서 다가오는 것 같은 장엄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 산은 주위가 깎은 듯한 기암 절벽이 되어 솟아올랐고, 그 정상은 우묵하게 패어져

     분지(盆地)를 이루었다.

     이 분지의 주위는 형형 색색의 암봉(岩峯)으로 둘러있는데, 그 수가 아흔

     아홉이라고 한다.   

     만일 그 봉우리가 1백 이였다면 제주에도 호랑이, 사자 같은 맹수가 날 것인데,

     하나가 모자라 아흔 아홉이기 때문에 호랑이도 사자도 아니 난다고 한다.

 

 7. 고수목마 ( 古藪牧馬 )

 

       고마장에서 말을 풀어 기르는 풍경을 말한다.

      제주는 예로부터 목장으로 이름난 섬이었다.

      도내 중산간 일대에 이름난 목장들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 현재의 제주시 일도동

      남쪽에는 수천이 넘는 소와 말을 방목하던 고마장이 있었다.

      봄철이 되어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자유롭게 뛰노는 말떼의 평화로운 목장

      풍경은 제주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이 풍경이 곧 고수목마였다.

      지금도 중산간 지대가 목장으로 개발되어 넓은 들판에서 풀을 뜯는 소와 말을

      볼 수 있다.

      한편 제주 재래종 말인 조랑말은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8. 산포조어 ( 山浦釣魚 )

 

      옛날 산지포에서 작은 배를 타고 낚시하던 모습을 말한다.

      산지포는 지금의 제주항이다. 제주도의 관문인 제주항은 옛 산지포로서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은 옛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개발되었지만 조선말기까지만 해도 현재의 제주

      기상청으로 올라가는 길에 북수구였던, 돌로 만든 반원형인 홍예문이 있어서

      산지포의 출입구가 되었다.

      이 홍예문 동쪽에는 물맛이 좋은 산지물이 흘렀으며 그 하천 양편 기슭에는

      수양버들이 늘어져서 꾀꼬리들이 울고 냇물에서는 은어들이 뛰었다고 한다.

      바람이 자고 날이 저물면 버드나무 밑에서는 출어할 낚시배들은 한 척 두 척

      삿대질을 하면서 홍예문을 지나서 바다로 나간다.

      밤이 되면 수백 척의 낚시배들이 등불을 밝혀 고기를 잡는데 그 불빛이 바다에

      반사하여 불야성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풍경이 곧 산포조어였다.

      그러나 지금은 제주항의 방파제가 낚시꾼들의 낚시터로 바뀌고, 근해에서 집어등을

      켜놓고 고기를 잡는 채낚기 어선들의 불빛이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9. 산방굴사 ( 山房窟寺 )

 

        산방산에 있는 굴사를 말한다.

       산방산은 안덕면 사계리에 치솟아 화순항을 바라보는 해발 395m 험준한

       바위산이다.

       온 산이 절벽으로 되어 있으나 산 남쪽 허리에 동굴이 뚫려 있어 100여명이 들어

       앉을 수 있다.

       굴 안은 석벽으로 병풍을 둘러친 듯하며 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 맛은 일품이다.

       이 굴은 예로부터 불상을 모셔 예불하던 곳으로 고려 때 혜일 스님이 불도를

       닦았다고 한다.

       산방굴사에서 내려다보는 해안 풍경은 장관이다.

       바로 앞의 용머리 해안, 형제섬, 마라도, 하멜표류기로 널리 알려진 가파도가

       보인다.

    슬픈 산방덕이의 이야기

     '산방굴사'는 산방산에 있는 절이다.

     산방산 서남쪽 절벽 중턱에 길이 10m, 너비 5m, 높이 5m의 굴이 있다.
     이 굴 안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이 굴이 바로 산방굴사 이다.

     굴속 암벽에서는 언제나 수  정 같은 맑은 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 물은 먹으면 늙지 않고 오래 산다는 약수로 알려진다. '

     산방굴사'는 고려 시대의 고승 헤일대덕이 거처하던 기원정사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산방굴사에는 슬픈 사연을 담은 산방덕의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여신 산방덕이 태어났다.
     자라면서 그녀는 가끔 내려다보는 인간 세상이 너무도 좋게 느껴진 나머지 인간 세상에 내려가

     살게 해 달라고 옥황상제께 백일동안을 기원했다.

     산방덕이 백일 기도를 마치는 그날, 옥황상제는 폭풍우와 벼락 천둥을 동반하여 그녀를 소녀로

     변신시켜 산방굴로 내려 보냈다.

     산방굴에서 지내며 숙녀가 될 즈음 그녀는 빼어난 미모를 지녔다.

     산방덕은 '산방굴사'에 내려온 여신이었지만, 인간 세계에 사는 이 인간적인 고뇌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도 이성이 그리워진 것이다.

     그녀는 여느 여성들처럼 고승이라는 남자와 열렬한 사랑 끝에 결혼했다.

     행복하기만 한 결혼 생활에 어느 날 뜻밖의 불행이 닥쳐왔다.

     그 무렵 산방덕의 미모를 탐내는 남자들은 주변에 많았다.

     그 가운데 당시 고위직에 있던 한 남자가 자신의 직권을 이용하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산방덕을 빼앗으려고 궁리했다.

     그녀의 빼어난 미모에 매료된 그 권력자는 그녀의 남편 고승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재산까지 모조리 빼앗아 귀양을 보내 버렸다.

     그후 산방덕이에겐 온갖 감언이설과 위협으로 자신의 야욕을 채우려 했다.

     정황을 알아차린 산방덕은 이를 뿌리치고 인간세계에 내려온  것을 몹시 한탄하며 산방굴에

     들어가 아무런 표현 없이 굳어져 바위가 되어 버렸다.

     지금도 산방굴사 암벽 사이로는 수정 같은 맑은 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 떨어지는 물은 자신의 불행과 인간세계의 한량없는 죄악을 슬퍼하며 한없이 흘리는

     산방덕의 눈물이라고 한다.

     하나의 전설에 불과하지만 예로부터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다.

     미모의 여인들 가운데서 겪었던 한결같은 비극이 암시해 주듯 산방덕에게도 운명의 장난은

     여지없이 찾아왔던 것일까.
     이 산방굴사는 산방덕에 얽힌 전설로 한결 숙연한 느낌을 더해준다.

     산방굴사에서 내려다보는 해안 경관은 장관이다.

     < 소재지 :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181 ∼ 1 산방산 >


 

 10. 영실기암(靈室奇巖)

 

          한라산 영실의 오백나한형 기암들을 말한다.

        영실은 한라산 정상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진 험준한 기암절벽으로서 수백의

        기암들이 솟아있는 모습은 마치 나한이나 장군들의 무리와 같아서 오백나한 또는

       오백장군이라고 일컬어진다.

       이곳은 기암들이 이중 삼중으로 우뚝우뚝 치솟은 신령스러운 영실을 이루고 있다.

       미륵불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숱한 부처들이 늘어선 병풍바위, 오른쪽에는 많은

       나한들이 시립한 형상을 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설법하던 영산의 모습이라고 하여 영실이라고

       불리워 졌다.
       영실은 예로부터 신령이 사는 곳으로 신성시되어 등산한 사람이 이곳에서

       잡스런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구름이 낀다고 하여 지금도 제주 사람들은

       이 곳을 지날 때 그 금기를 지켜 마음을 바로 잡는다.

     설문대 할망

    오백장군의 어머니 설문대할망은 굉장히 키가 클 뿐만 아니라 힘도 세었다.

    흙을 파서 삽을 일곱번 떠 던진 것이 한라산이 되었으며, 도내 여러 곳의 산들은 다 할머니가

    신고 있던 나막신에서 떨어진 한 덩이의 흙들이다.

    그리고 오백형제나 되는 많은 아들을 거느리고 살았다.

    그런데 이 할머니의 아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흉년이 든 어느 해, 아들들이 도둑질하러 다 나가 버렸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돌아오면 먹이려고 죽을 쑤다가 잘못하여 그 커다란 가마솥에 빠지고

    말았다.

    아들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돌아오자마자 죽을 먹기 시작하였다.

    여느 때 없이 죽 맛이 참으로 좋았다.

    그런데 맨 나중에 돌아온  아들은 이상하게 여겼다.

    죽 맛이 갑자기 좋아질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국자로 죽솥을 휘저었다. 뭔가 국자 끝에 걸리었다.

    뼈다귀였다.

    계속해서 휘저었다.

    그러자 사람의 두개골같이 보이는 뼈가 나왔다.

    그리고 보니 아버지가 보이질 않았다.

    아버지가 죽을 휘젓다가 빠져 죽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날이면 날마다 멀리서 아버지를 그리며 울다 보니 화석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리하여 남편과 또 그 많은 아들들을 잃어버린 설문대할망은 홀몸이 되었다.

    이제 갈 데도 올 데도 없는 단신이라 만단수심을 다 잊어 버리고자 나다녔다.
    할머니는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발끝은 바닷물에 잠기어 물장구를 쳤다.

    그리고 빨래를 할 때면 한쪽 발은 한라산, 또 한쪽은 관탈섬을 디디었다.

    그리고 서귀포와 법환리 앞 바다에 있는 범섬에는 커다란 구멍이 두개 뚫려 있는데, 이것은

    이 할머니가 누울 때 잘못 발을 뻗쳐 생긴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늘 도민들에게 명주 백동(1동은 50필)을 모아  속옷을 한 벌만 만들어

    주면 본토에까지 걸어서 다닐 수 있도록 다리를 만들어 주마 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도민들은 모을 수 있는 데가지 모았으나 한동이 모자랐다.

    육지와의 다리는 실현되지 못하였지만, 조천리에 있는 엉장매 코지는 이 할머니가 놓으려던'

    다리의  흔적이며, 신촌리의 암석에 있는 큰 발자국은그때 자취라고 한다.

    이 할머니는 자신의 키가 큰 것을 늘 자랑하였다.

    그래서 용연물 (제주시 용담동 해변에 있음)이 깊다 길래 들어섰더니 발등에 겨우 닿았으며,

    홍릿물(서귀포 서홍동에 있음)은 무릎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한라산의 물장오리 물은 밑이 없는 연못이라 나오려는 순간 그만 빠져 죽고 말았다 한다

  제주를 만든 설문대 할망


 

    제주사람들은 옥황상제가 천지를 창조했다고 믿었고, 물론 막힌 섬의 숙명을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설문대 할망>이라는 신의 힘을 빌어 육지부와 다리를 놓으므로 서 극복하려고 했다.

    <설문대 할망>이 얼마나 크냐하면 '한라산을 엉덩이로 깔아 앉아 한쪽 다리는 관탈섬에 디디고, 한쪽

    다리는 서귀포 앞 바다의 지귀도에 디뎌서 우도를 빨래 돌로 삼아 빨래를 했다.' 는 식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얼마나 시련이 혹독했기에 이처럼 거녀(巨女)의 신을 상상하고 그 힘으로 소망을 성취하려는 꿈을

    꾸었을까?

    거인에의 꿈은 바로 제주인의 꿈이었던 것이다.

    <설문대할망>에 관한 설화는 여러 갈래로 전승되는데 여기서는 오름을 만든 이야기,

     분화구 생긴 이야기만을 살펴보기로 하자.

   제 1화..오름만든 이야기


    제주도에는 많은 오름(기생화산)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이 오름은 설문대 할망이 치마

    자락에다 흙을 담아 나를 때에 치마 터진 구멍으로 흙이 조금씩 새어 나와 흘러서 된

    것이라고 한다.

  제 2 화 .. 분화구가 생긴 이야기


   구좌읍에 도랑쉬는 산봉우리가 움푹하게 패어져 있는데, 이것을 <설문대 할망>이 흙을 집어

   넣고 보니 너무 많이 넣어져서 주먹으로 산봉우리를 탁 쳐버렸더니 움푹 패인 것이라고 한다.

   이런 설화는 거신인 <설문대 할망>이 제주 창조의 과정을 지명을 증거로 하여 설명하는 지명

   전설이면서 초인적인 능력을 소유한 주체자의 활동은 신성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자기가 지니지 못한 힘을 신을 빌어 해결하려고 했었다.
   그것이 바로 제주인의 의식이다.

흐르는 가곡은 김인혜님이 부른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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