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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역할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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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역할

발행일 : 2002-06-30 [제2305호]

광해군에 대한 일화이다. 조선시대 선조가 세자 책봉에 대한 일을 생각하다가, 여러 왕자들을 앞에 불러 놓고 그들의 슬기를 시험해 본 일이 있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선조가 이런 질문을 하자, 왕자들은 별로 대수럽지 않게 생각하는 듯, 혹은 "떡"이라고도 하고, 혹은 "꿀이요", "고기요"라고도 하는데 광해군의 차례가 되자, 그는 뜻밖에 "소금이올시다"라고 하였다. 선조가 그 까닭을 물으니 "모든 음식에는 소금이 들어가야 맛이 나기 때문이옵니다"라고 광해군은 대답하였다. 선조는 이에 크게 만족하여, 그의 형인 임해군과 그밖의 여러 왕자들을 물리치고 그를 세자로 책봉하였다. 물론 광해군의 슬기로움은 나이가 들면서 광폭으로 변하여 갔지만 소금이 가지고 있는 역할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일화이다.

연중 제 5주일인 오늘 복음은 소금과 빛의 두 가지 상징어를 전해 준다.

먼저 소금이라는 상징어의 의미를 묵상해 보자! 소금은 이스라엘에서는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소금은 먼저 음식의 맛을 내는데 사용되기도 하고, 곡물의 부패를 방지하고 보존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이스라엘에서는 하느님께 곡식 예물을 드릴 때에는 반드시 소금이 들어가야만 했다.

이 외에도 소금은 촉매제로도 사용되었다. 소금의 촉매 작용을 보기 위해서는 초에 소금을 넣어 보면 알 수 있다. 초의 빛도 밝아지고 촛농도 흘러내리지 않는데, 어떻든 이러한 특성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빵을 일정한 온도로 맛있게 굽기 위해 화덕을 만들 때에도 적당량의 소금을 넣어 화덕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농사법을 보면 밭에 소금을 넣었던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어떻게 생각해 보면 소금은 당시 부와 풍요를 상징하였기에 어떤 신앙적인 의미로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어떻든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였다는 것만을 기억하는 것도 소금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소금이 의미하는 바는 '좋은 것' '귀중한 것' '유용한 그 무엇'을 상징한다고 본다면 틀림이 없다.

그런데 소금이 귀중하고 좋고 유용한 그 무엇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소금이 가지고 있는 짠맛 때문이다. 때문에 소금이 자신의 고유한 특성인 짠맛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수 밖에 없다.

즉,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은 소금처럼 아무리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라 하더라도 변질되어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잃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소금처럼 귀중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그리스도인 모두를 지칭한다. 때문에 소금의 비유를 그리스도인! 그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나가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로 이 말씀을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소금이 짠맛을 내기 위해서는 소금이 자신을 녹여야만 하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복음의 후반부는 빛의 상징어이다. 빛은 생명의 관점에서 본다면 소금보다 더 필수적인 것이요, 근원적인 것이다. 그러기에 등불을 등경 위에 얹어 두어야 한다는 말씀은 아무리 필수 불가결한 것일지라도 있을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그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다할 때만이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빛은 구약성서에서는 자주 메시아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고,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1, 9) 세상의 빛(8, 12)이라 하였다. 때문에 원래 이 빛의 상징어는 예수님의 신상발언이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등불은 등경 위에 올려져 집안을 비추어야 하듯이 그처럼 예수님의 삶도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의 박해 때문에 신변이 위험하다 해서 달아나거나 숨을 생각이 전혀 없고 계속 활동하시겠다는 자신의 결의를 드러내는 말씀이었을 것인데, 오늘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이 말씀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빛의 상징어의 결론은 분명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타인의 생명을 위해 '희생'과 '드러남(모범)'의 '빛의 삶'이 우리의 자리요, 이러한 삶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역할을 다하는 것이란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역할을 다하는 빛을 비추는 삶 !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으로 시작하는 오늘 이사야 예언서의 1독서의 말씀은 세상의 빛으로서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된다.


홍금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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