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바라보라
이제 막 불혹을 넘긴 나이. 사랑하는 두 자녀를 둔 어머니. 오랜 병고로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가쁜 숨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자매의 모습은 한 인간이 겪어내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녀의 형부로부터 연락을 받고 병실에 누워 있는 그녀를 방문했을 때 그녀는 두려움 속에서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몸부림치며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3년 전에 암 수술을 하고나서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병마를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지만, 계속되는 병고 속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이 남기고 떠나야할 세상에 대한 애착이 그녀를 더 큰 고통과 절망 속에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병자성사를 청했던 가족들은 아직도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움 속에서 떨고 있는 그녀를 안타까워 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손에 묵주를 쥐어 주면서 “이 고통 속에 함께하시는 주님을 부르세요.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고 모든 것을 그 분에게 맡기세요”하고, 고통 속에 일그러진 그녀의 머리위에 안수를 했습니다.
일주일후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녀를 다시 방문했을 때 그녀는 놀랍게 변화해 있었습니다. 이제는 말도 할 수 조차 없는 그녀는 일주일 전에 고통 속에서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니라 마치 좋은 곳을 향해 떠나는 사람처럼 평안하고 고요한 모습으로 변화해 있었습니다. 내 눈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그리고 입술을 움직여 힘겹게 말했습니다. “지금 나는 평안합니다.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하느님께 가서 평안히 살고 싶습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녀를 통해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좋은 것들을 마련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간 동안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자신의 힘으로는 숨조차 쉬기 힘든 순간이 다가오자 그녀는 하느님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내 힘으로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 그 곳에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새로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제야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확실한 사랑의 끈을 다시 붙잡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두 가지의 영적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첫 번째 영적 진실은,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왔으며 하느님께 속해있다는 진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믿는 사람은 자신이 누리는 삶 속에 ‘내 것’이라고 우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분의 선물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을 주신 분의 뜻대로 살아가기에 진리의 빛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이 영적진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내 것’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삽니다. 그래서 모든 사물과 사람들마저도 ‘소유’의 대상으로 대하게 되고, 마침내는 하느님마저도 소유하고자하는 헛된 욕망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헛된 욕망은 나 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진 사람들을 시기하고,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이들을 질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크게 배신하고’ ‘주님의 집을 부정하게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영적진실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섭리(攝理)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사랑으로 내신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모든 것을 완성하신다는 믿음 안에서 살아갑니다. 이 믿음은 ‘내 뜻’ 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 졌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를 믿지 못하는 이들은 모든 일을 ‘내 뜻’대로 이루어 지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걱정하고 불안해하게 됩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다른 이들을 이용하고 하느님마저도 이용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왔으며 하느님께 속한다는 첫 번째 영적진실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두 번째 영적진실도 똑같이 무시하고 비웃게 되는 것이며 하느님을 떠나 구제할 길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입니다.
회개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신 선물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그 선물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를 참된 회개의 길로 인도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마련해 놓으신 선물은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은총의 사순시기에 우리를 위해 높이 들려진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사랑의 힘으로 새로워지는 은총을 청합니다.
김영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