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한국인의 여름나기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27. 15:15

본문

 

한국인의 여름나기

발행일 : 2000-07-09 [제2208호]

봉두완이 바라본 오늘의 세계

7월이 가고 8월이 온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여름의 한가운데서 숨을 헐떡이고 있다. 6월의 의료대란과 7월의 은행대란을 겪으며 지칠대로 지쳐있다. 많은 사람들이 들떠서 어디론가 떠나는 휴가철이지만 7월의 평화지수는 그야말로 '제로' 에 가깝다.

위기의 7월을 넘기며 국민들은 아직도 만성 피곤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는 것일까. 김포공항 출입국관리소가 집계한 내국인 출입자수는 지난 5월말 이미 17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0%가 늘어난 수치다.

고개드는 사치풍조

이런 추세라면 해외여행이 지난해보다 30% 넘게 늘어날 전망이다. 3년전인 1997년 여름,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기승을 부렸던 호화, 사치 여행풍조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행선지가 동남아, 미국 중심에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지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인기가 높은 해외 여행지 티켓은 이미 지난 6월말로 동이 나 버렸다.

답답하고 불안한 이땅의 여름에서 도피하고 싶은 것일까. 그러나 그냥 밖으로 나가기만 하는 것이라면 다행일텐데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출국 때 골프 채 반출신고를 한 여행자수는 지난해 상반기 9123명이었는데, 올해는 16717명으로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나이든 사람들은 들어올 때 고급 양주도 잔뜩 사들고 온다. 400달러가 넘는 양주는 지난해 월 평균 여섯병이 들어왔는데, 올해는 월평균 50병으로 폭증했다. IMF 사태가 터지던 그해에도 해외여행이 유난히 극성스러웠다. 올 여름 해외여행 물결이 혹시 불길한 사태를 예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환율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도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최근 단기외채 급증으로 외환 차입과 상환의 불일치에 대한 우려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메리츠증권은 '동남아 자본시장 동향과 한국시장의 영향' 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제체력은 지난 97년 함께 외환위기를 겪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에 비해서는 튼튼하지만 무역수지 흑자액이 줄어들고 단기 외채 비중이 늘어나고 있어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한 상황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경제연구기관들은 한국경제에 '운명의 여름'이 다가왔다고 경고 한 바 있다. 한국경제가 '여름나기' 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주변은 어떠한가. 우리의 여름나기는 건강한가.

이미 동해안 피서인파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배 가량이 늘어난 규모라고 한다. 지난 제헌절 연휴 때부터 밀려든 인파는 22일 주말을 고비로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7월말과 8월초 그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금강산 가는 배가 출항하는 동해시 망상해수욕장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426%가 늘었다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고삐는 이미 풀린 것이다. IMF사태를 계기로 한때 정착하는가 싶던 '합리적인 소비행태' 는 이제 간 곳 없고, 저마다 분에 넘치게 허세를 부리는 풍조가 다시 사회전반에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가전제품과 중대형 승용차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 하는가하면 60∼100평에 달하는 대형아파트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고 한다. 큰 것, 값비싼 것이 좋다는 '대물(大物) 신드롬' 이 되살아 나고 있는 것이다. 실속없이 외양만 쫓는 이같은 사회병리 현상의 끝은 어디일까.

천민자본주의는 사라져야

보다못해 세정당국이 과소비 풍조를 바로잡기 위해 사치생활자들에 대해 특별세무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탈세혐의가 있는 과소비 조장업소와 사치품제조 유통업체, 그리고 호화사치 생활자를 대상으로 내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무조사만으로 호화 사치와 과소비풍조가 제어될 수 있을까. 이왕 시작한 이상 이번 조사가 과거식의 엄포나 일과성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호화사치생활자들에 대해 모든 소득을 세원으로 포착해 상응하는 세금을 공평과세로 바로 잡아야 한다.

"돈이야 어떻게 벌었든 내돈 갖고 내가 쓰는 데 무슨 참견이냐"는 졸부 음성 탈루소득자들의 천민 자본주의는 사라져야 한다. '속대발광욕대규' 란 고인의 시가 실감날 정도로 가만히 앉아있으면 '발광' 이 나서 고함을 지르고 싶다. 그러나 고함대신 독서삼매에 빠졌던 고인들의 절제와 침묵의 미덕을 배우자.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한귀절을 음미하며 여름밤 하늘의 별을 보자. "우리들 모두는 진흙탕 가운데 있다네, 그러나 우리 들 중 몇 사람은 별들을 바라보고 있다네"


봉 두완/ 적십자사 부총재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