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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서 가장 오래된 '논농사 유적' 세종시서 찾았다

역사 자료

by 巡禮者 2015. 6. 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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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서 가장 오래된 '논농사 유적' 세종시서 찾았다

 

한국고고환경연구소 정부청사 부근 대평동 일대서
3200년 전 논농사 흔적 발견

유적, 지상 8m 아래에 묻혀 있어
논흙속 벼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기원전 12~13세기 경작" 추정
기존 유적보다 400~500년 앞서
아파트 들어설 예정 / 학계 "특별한 보존대책 세워야"

물을 댄 논에 벼를 키워 수확하는 논농사의 역사는 한반도에서 언제쯤 시작됐을까.

기존 유적보다 연대가 400~500년 앞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3200년 전 논 유적이 충남 세종시에서 발견됐다. 한국고고환경연구소(소장 이홍종 고려대 교수)는 신정부청사 부근에 있는 대평동 택지개발터 일대를 지난해 8월부터 조사한 결과, 기원전 12~13세기 청동기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국내 최고의 논 유적을 찾아냈다고 최근 밝혔다.

드러난 논 유적의 규모는 상당하다. 전체 면적이 4000평이 넘으며, 단위 논의 면적도 100~200평에 이른다. 금강 변에서 700m 떨어진 자연제방의 습지에 조성됐으며 전체적으로는 휘어진 일(一)자 모양이다. 4~5개의 단위 논으로 구획됐으며, 논 구역을 가르는 두둑(이랑)과 물꼬를 터주는 배수로 흔적 등도 남아 있다. 연구소 쪽은 "논흙 속의 식물 성분을 분석한 결과 벼의 기둥 세포로 확인됐으며, 이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를 지속적으로 측정한 결과 중심연대가 기원전 12~13세기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논 부근의 같은 시대 주거지에서 나온 볍씨의 눌림 흔적(압흔)이 남은 토기조각 연대가 측정 결과와 일치한 것도 중요한 근거다. 유적들은 지상 8m 아래에 묻혀 있던 것. 청동기시대 초기 문화층의 최하층부에 해당한다. 보통 시굴조사에선 1~3m 굴착에 그치지만, 이 연구소는 항공사진·고지도 등의 자료를 이용한 고지형 분석 조사를 토대로 유적가능지역을 파악해 깊은 곳까지 굴착해 이를 찾아냈다.

고대 한반도 논 유적은 1998년 발견된 울산 무거동 유적과 2000년대 조사한 충남 논산 마전리 유적 등이 있다. 모두 기원전 5~7세기께의 것들이다. 연구소 쪽은 "대평동 논 유적 발견으로 한반도 논농사의 실제 시작 시기를 기존 학설보다 500년 이상 올릴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땅에서 작물을 심어 농경을 한 것은 5000~6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라는 게 통설이다. 2012년 강원도 고성 문암리에서 가장 이른 5000여년 전 신석기시대 밭 유적이 발견된 바 있다. 그러나 논 농경은 시기가 훨씬 늦고 유적도 10곳 안팎이다. 기후조건이 제약되고, 노동력이 많이 들며, 농법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충북 청원 소로리 출토 볍씨가 세계 최고인 1만7000~1만2000년 전 구석기 토탄층에서 나왔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지만, 야생인지, 실제 경작인지는 불확실하다. 따라서 대평리 유적은 기원전 1000년 이전부터 논에서 벼가 경작됐음을 입증하는 유일한 실증적 근거가 된다. 조상기 중앙문화재연구원장은 "논 단위 면적이 100평 이상으로, 3~5평 정도인 다른 지역의 후대 논 유적을 압도하는 규모란 점이 놀랍다. 청동기시대부터 한반도 굴지의 곡창지대였음이 실증된 셈"이라고 말했다.

대평동 유적은 어진동 정부청사에서 2~3㎞ 거리다. 2010~11년 초기 백제 호족, 관리들의 저택터와 집단 주거지, 수장급 널무덤과 얼음창고터 등이 발견된 나성동 도시유적 옆이다. 두곳 모두 금강변 평야에 자리잡아 농경과 물자운송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요지다. 고대 한반도 남부에서 인구가 가장 밀집된 생산거점이자, 백제 도시유적이 있었다는 점 등에서 학계는 5세기 백제의 공주 천도 때 유력한 지역적 기반이 됐을 것으로 분석한다. 이 소장은 "이번 발견으로 행정수도로 도약한 세종시의 뿌리가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뿐 아니라 금강유역권에 일찍부터 고대 도시가 들어설 만한 생산 토대가 형성됐음을 입증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논 유적이 발견된 곳은 수년 전 대형 주거단지 계획과 분양이 확정돼 20일 현재 원상태로 묻는 복토 작업이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시공사는 흙을 3~4m 더 쌓아올린 뒤 아파트를 지을 예정이다. 학계에서는 "대평동·나성동 유적을 적극적으로 보존활용해 세종시의 역사적 맥락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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