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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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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2. 5. 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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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지게

    
 

영동 감나무골에 사는 덕보는 효성이 지극하였습니다. 이른 나이에 혼자되신 아버지를 정성을 다하여 모셨습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사람이 워낙 모자라서 바보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었지요.

  봄기운이 퍼지기 시작한 어느 날입니다. 덕보는 서울 외삼촌 댁에 다니러 갔다가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습니다.

 

  감나무골에서는 1년 가야 한두대 볼까 말까 하는 자동차가 줄을 지어 다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와! 저 뛰뛰빵빵 차들 좀 봐!”

  덕보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외삼촌 댁에 다다르고 보니 외삼촌 댁에도 자동차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덕보는 또 한번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외삼촌, 이 뛰뛰빵빵 차가 웬 거예유?”

  “웬 거긴. 이 외삼촌네 자동차지.”

  외삼촌은 어쩌나 보려고 덕보 앞에서 일부러 뽐내는 얼굴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덕보는 외삼촌네 뛰뛰빵빵 차라는 말에 그만 화들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외삼촌, 어떡해서 이 뛰뛰빵빵 차가 외삼촌네 것이 됐대유?”

  “그야 돈을 주고 샀으니까 외삼촌네 자동차가 됐지.”

  “이 뛰뛰빵빵 차로 뭘 하는데유?”

  덕보는 눈을 껌벅이며 물었습니다.

 

  “그야 하는 일이 많지. 누굴 만나러 갈 때도 타고 볼일을 보러 나갈 때도 타고…….”   한참 동안 설명을 하던 외삼촌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이렇게 말했습니다.

 

  “효도를 할 때도 뛰뛰빵빵 하지.”

  ‘효도’라는 말에 덕보의 눈이 황소 눈만큼 커졌습니다.

  “그래유? 이 뛰뛰빵빵 차가 효도를 다 해유? 어떻게 효도를 하는데유?”

  덕보는 호기심이 잔뜩 어린 눈으로 외삼촌을 쳐다보았습니다.

 

  “들어 보게나. 이 뛰뛰빵빵 차에다 외할아버지를 태우고 시내를 한 바퀴 도는 거지. 그러면 외할아버지께서는 ‘아, 기분 좋다!’ 하시며 어린애처럼 좋아하시거든. 덕보 자네도 얼른 돈을 벌어 효도 한번 해 보게나.”

  외삼촌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덕보는,   “저도 방금 좋은 생각이 났구먼유.”

하며 빙긋이 웃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뒤 덕보는 심부름을 마친 영동 감나무골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덕보는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헛간에서 지게를 꺼내더니 아버지 앞에 턱 버텨 놓는 것이었습니다.

 

  “아부지, 지게 위에 타셔유. 얼른유.”  덕보 아버지는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덕보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럴 수밖에서요. 난데없이 지게 위에 올라타라니 말입니다.

  “나보고 이 지게 위에 올라타라는 거냐?”

  덕보 아버지가 되물었습니다.

 

  “그래유. 얼른 타세유. 서울 외삼촌한테서 배워 가지고 왔구먼유. 외삼촌이 외할아버지를 뛰뛰빵빵 차에 태워 가지고 하루에 한 번씩 바람을 쐬러 나가더구먼유.”

 

  덕보 아버지는 그제서야 그게 드라이븐가 뭔가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으이그 이 녀석아, 그건 자동차니까 타지. 그래, 지게가 자동차라도 된단 말이냐?’ 속에서는 그 말이 부글부글 올라왔지만, 덕보 아버지는 아들의 갸륵한 마음씨에 이끌려 지게 위에 올라탔습니다. 


  


 

 

 “네 말대로 올라탔다.”

  아버지의 말에 덕보는 히죽 웃었습니다.

  “잘하셨어유. 그럼, 일어서유.”

 

  그러고 나서 덕보는 허리에 힘을 불끈 주어 지게를 진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덕보는 아버지를 지게 위에 태워 가지고 사립문을 나섰습니다.

 

  “아부지, 제가 뛰뛰 하면 아부지는 빵빵 하셔유, 아셨지유?”

  “오냐, 알았다.”

  “뛰뛰!”

  덕보가 입으로 자동차 흉내를 내었습니다.

  “빵빵!”

  지게 위의 아버지도 입으로 자동차 흉내를 내었습니다.

  “뛰뛰!”

  “빵빵!”

  ‘뛰뛰빵빵’ 소리는 고샅(마을의 좁은 골목길)에서 고샅으로 꼬불꼬불 이어져 갔습니다.  “아이고, 덕보 아버지 호강하시네.”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아부지, 기분 좋으시지유?”   “그래, 기분 좋다.”

  “그럼, ‘아, 기분 좋다!’ 하셔야지유. 그래야 저도 기분이 좋지유.”

  아들의 말에 지게 위의 아버지는 그만 가슴이 찌르르해졌습니다.

  “아, 기분 좋다!”   아버지의 눈에 이슬이 비쳤습니다.

 

  “아부지, 저도 기분이 좋네유.”

  아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습니다.

  “뛰뛰!”

  “빵빵!”

  그 날부터 감나무골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뛰뛰빵빵’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어느 날엔 한 번뿐이 아니라 두세 번씩이나 ‘뛰뛰빵빵’ 소리가 울려 퍼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대개 덕보가 기분이 무척 좋은 날이었습니다. 이웃 마을 장정들과의 내기 씨름에서 이겼거나, 동네 사람들한테서 칭찬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덕보 아버지는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 보기에 부끄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하루 이틀 지나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그 뛰뛰빵빵 차 놀이에 정이 폭 들어 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들의 듬직한 등에 얹혀 가는 즐거움이 괜찮았습니다. 게다가 덕보가 ‘뛰뛰’ 하면 ‘빵빵’ 하는 자동차 놀이도 재미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대로 이 별난 자동차 소리가 나면 ‘덕보 아버지 호강하시네.’ 하며 웃곤 했습니다.

 

  정말이지 지게 위에 올라앉은 덕보 아버지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아들 덕보가 걸음을 떼놓을 때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흐뭇해하는 모습이 이 세상에 더 부러울 게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뛰뛰!”

  “빵빵!”

  그 소리 또한 그 어떤 자동차 소리보다도 기운찼고 흥이 넘쳤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동네의 풍경이 또한 그럴싸했습니다.

 

  봄이면 개나리들이 울타리 쪽에서 고개를 내밀고는 이 별난 자동차를 웃음으로 반겼습니다. 여름에는 느티나무의 새들이 이 별난 자동차를 보겠다며 짹짹거렸습니다. 또 가을에는 동네의 감나무들이 이 별난 자동차 소리를 자장가 삼아 하루하루 붉게 물들어 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겨울엔 솜옷을 입은 앞산이 허리를 구부리고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뛰뛰!”

  “빵빵!”

  ‘뛰뛰빵빵’ 소리는 그렇게 봄부터 겨울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봄부터는 이 별난 자동차 앞에 꼬맹이 차가 한 대 앞장을 섰습니다. 그사이 장가를 든 덕보가 낳은 순이가 바로 꼬맹이 차였지요.

  세월이 흘렀습니다.

 

  ‘뛰뛰’ 소리는 여전히 크고 우렁찬 게 그대로인데, ‘빵빵’ 소리는 자꾸만 작아져만 갔습니다. 해가 갈수록 덕보 아버지의 기력이 떨어졌기 때문이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아, 기분 좋다!’ 하는 소리도 예전 같이 않았습니다.

 

  덕보는 그 작아지는 소리 때문이 흥이 나지 않았습니다.

  “뛰뛰!”

  “빠…….”

 

  마침내 덕보 아버지는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 별난 자동차 놀이도 더 이상 동네에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뛰뛰빵빵’ 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지요.  “아부지, 빨리 일어나셔유. 뛰뛰빵빵 하셔야지유.”

  하지만 덕보 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병이 깊어져 갔습니다.

 

  어느 해 겨울, 눈이 푸지게 오는 날이었습니다. “얘 아범아, 우리 딱 한 번만 뛰뛰빵빵 하자.” 아버지가 덕보에게 말했습니다.

 

  “눈이 저렇게 오시는데유?”

  덕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아버지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덕보는 아버지를 안아다가 지게 위에 앉혀 드렸습니다. 그러고는 춥지 않게 이불을 씌워 드렸습니다.

 

  덕보는 지게를 지고 조심조심 일어섰습니다.

  “뛰뛰!”

  “빵빵!”

  언제 따라나섰는지 순이가 제 할아버지 대신 ‘빵빵’ 소리를 냈습니다.

  “뛰뛰!”

  “빵빵!”

  ‘뛰뛰빵빵’ 소리에 동네 사람들이 나와 보고는 다들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뛰뛰빵빵’ 소리는 고샅에서 고샅으로 꼬불꼬불 이어져 갔습니다.

  방앗간 집 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아부지, ‘아, 기분 좋다!’ 한번 해 보셔유.”

  덕보의 말에 아버지는 기분이 좋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그러고는 다시는 고개를 쳐들지 않았습니다.

  눈만 쉬지 않고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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