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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 선교, 진정한 나눔의 기쁨입니다/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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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0. 7. 3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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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 선교, 진정한 나눔의 기쁨입니다/배광하 신부

민족 복음화 미사 (루카 28, 16~20) : 사명을 부여하시다
발행일 : 2007-10-21 [제2570호, 6면]

-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 -

그들의 수고를 기억해야

예전에 아프리카에서 선교하시던 분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발가락 사이가 계속해서 무척 가려워, 어느 날 예리한 칼을 소독하여 조심스럽게 발가락을 갈라 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발가락 사이에 애벌레들이 우글우글 하더랍니다. 샌들을 신고 맨발로 다니니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 유충들이 땀구멍 속으로 들어가 성장한 모양이라 하였습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징그러움의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더운 여름과 벌레들을 유독 싫어하는 저는 습기와 벌레가 많은 곳에서의 복음 선포는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더구나 워낙 토종 음식을 좋아하는지라, 김치와 두부, 된장찌개 없는 식단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때문에 이역만리 낯선 곳에서 기후, 언어와 풍습, 음식 등의 불편을 감수하며 복음을 전하시는 분들의 숭고함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진정 복음을 선포하는 분들의 수고와 눈물과 땀이 있었기에 하느님 안에 사는 기쁨을 선교지의 백성들이 맛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 14~15).

작년 한 해에도 세계 여러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던 선교사들이 피살되거나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순교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박해는 아직도 세계 도처에 눈을 부릅뜨고 복음 선포자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불편과 고통, 목숨의 위협 속에서도 복음을 선포하는 까닭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참 기쁨을 맛본 때문이며, 그분께서 길이요 진리이심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신앙 안에서 기쁨을 느꼈던 이들이 참 기쁨인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 지상에서 천국을 살아가는 이들이 천국을 만들 수 있고,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 같은 숭고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곳이며 기쁨이 존재하는 평화의 낙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너희와 함께

얼마 전 온 국민을 경악케 하였던 분당 모 개신 교회의 아프카니스탄 선교 피랍 사건은 복음 선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깨닫게 한 소중한 교훈의 사건이었습니다.

어떤 자매님은 그 개신 교회가 “순교를 하더라도 이슬람 지역의 선교는 계속할 것이다” 하는 이야기를 듣고 분개하면서, “순교란 목숨을 내 놓으며 신앙을 증거 하는 것이지 그렇게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것이 무슨 순교란 말이냐?” 하였습니다. 의미 있는 분노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가톨릭 선교사들의 아름다운 선교의 모습입니다. 가난한 나라에 복음 선포 때문이 아니라, 진정 그들의 고통에 함께 하며 동고동락하는 모습,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며 희망과 기쁨을 주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당신 지상 삶의 마지막 명령을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복음 선포였습니다. 그런데 떠나가시는 스승님께서 남겨진 제자들에게 하신 끝 말씀은 분명 복음 선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20).

함께 있어 주는 것, 무엇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그들의 삶 속에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융화되는 것, 가난한 이들에게 교만과 우월의 그릇된 정신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낮추어 예수님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복음 선포의 정신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교회의 사무처장이신 배영호 신부님의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가치관을 잃은 인류, 근원을 망각한 인류, 돌아갈 고향을 잃은 인류에게 복음 선포는 더욱 절대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근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곁에는 이 점을 깨우친 예언자들이 있어 왔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예언자들은 자꾸만 근원을 향한 길, 자칫 망각하고 지내온 근원을 향한 길이 본연의 길이라고 일러줍니다.

망각되고 상실된 우리 현 존재의 근원이자 고향을 다시 찾아 우리에게 데려다 주는 이른바 ‘존재의 목동’, ‘근원의 배달부들’이 우리 곁에 있고, 우리는 이러한 현대의 ‘착한 목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듣는 행복을 나눕니다.”

이 시대에 참된 예언자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복음 선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