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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요한의 첫째, 둘째, 셋째 서간(상)

성경자료

by 巡禮者 2010. 8. 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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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요한의 첫째, 둘째, 셋째 서간(상)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강조

겸손으로 이웃 위한 제물 돼야

요한의 첫째, 둘째, 셋째 서간(이하 요한 1서, 2서, 3서)도 야고보 서간, 베드로 첫째?둘째 서간, 유다서간과 함께 ‘가톨릭 서간’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요한 1, 2, 3서는 가톨릭 서간에서 떼어내 요한 묵시록 및 요한복음과 함께 별도로 공부하는 것이 좋다.

요한 1, 2, 3서와 요한 묵시록, 요한 복음서를 묶어서 ‘요한계 문헌’이라고 한다. 이름도 같은 ‘요한’이 들어가지 않는가. 물론 내용도 여러 가지 면이 공통되고, 또 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내용이 많다.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보자. 요한 1, 2, 3서는 얼핏보면 그 주제가 완전히 다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읽다 보면 이 세 서간이 모두 공통된 사상과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같은 교회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한계 문헌에는 독특한 용어들을 계속 반복해서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빛’‘의로움’‘사랑’‘진리’와 같은 것들이다. 이 용어를 사용하는 목적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중요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요한 1, 2, 3서에도 이러한 용어와 용법이 많이 나온다.

요한 1서는 이단자들의 침투로 인한 교회 분열을 막기 위해 쓴 서간이다. 또 요한 2, 3서는 개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있지만 사실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다. 요한 1서는 5장이고 요한 2, 3서는 지난 주 공부한 유다서간과 마찬가지로 1장으로 이뤄진 짧은‘쪽지 편지’다.

구체적으로 내용에 들어가 보자. 요한 1서는 생명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1요한 1, 1~2).

어디서 많이 접한 말씀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 우리는 요한복음 1장에서 이와 비슷한 말씀을 읽은 기억이 있다. 다시 읽어보자.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 1~4).

요한복음 1장과 요한1서 1장은 시작부터 그 전하려는 사상은 물론이고 논법과 비유도 비슷하다. 이 두 성경이 전하려는 내용은 오직 하나다. ‘하느님은 빛이시고 하느님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1요한 1, 7)해 주신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다.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하면 우리 자신을 속이고 진리 안에서 살지 않는다는 증거”(1요한 1, 8 참조)다. 요한 1서의 목적은 바로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1요한 2, 1)이다.

성경구절이 자꾸 나오니까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그럼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 하느님은 빛이시고 죄가 없으신 분이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제물이 되신 분이다. 우리 죄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시기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되신 분이다. 반면 인간은 죄인이다. 따라서 하느님께 죄를 용서받아야 할 존재다.

자 이제 우리는 하느님이 어떤 존재이고, 우리 또한 어떤 존재인지 알았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겸손해야 한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죄를 위해서 제물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위한 제물이 되어야 한다(1요한 2, 3~29 참조).

죄인인 이웃을 만나면 기뻐해야 한다. 나를 제물로 바칠 대상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럼 나를 어떻게 제물로 바쳐야 하나. 물론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다. 영적으로 기도해 줄 수도 있고, 희생을 바칠 수도 있다.

지혜로운 조언을 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죄인을 만났을 때 죄인이라고 판단을 내리고, 공동체에서 소외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죄인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나 또한 죄인이다.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1요한 2, 9).

죄를 지은 이웃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사랑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이웃을 위한 제물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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