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권세, 나라가 바로서는 날
회개하며 산 이들 천상구원 얻을 것
그리스도께서 일곱 봉인 중 첫 봉인을 떼신다. 그러자 흰색 말 위에 활을 든 사람이 화관을 받고 승리를 위해 나아갔다(묵시 6, 2 참조). 기품이 늠름한 승리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는 이제 둘째 봉인을 떼신다. 그러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는데, 그 위에 탄 이는 사람들이 서로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도록 땅에서 평화를 거두어 가는 권한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큰 칼을 받았다”(묵시 6, 4).
예수께서 이어 셋째 봉인을 떼시자, 손에 저울을 든 이가 검은 말을 타고 나타나고, 넷째 봉인을 떼시자 ‘죽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푸르스름한 말을 타고 나타난다. 악한 이들은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묵시다(묵시 6, 5~8 참조).
이어 다섯 번째 봉인과 여섯 번째 봉인을 뗀 후에는 지금까지 와는 달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나타난다. 예수께서 다섯 번째 봉인을 떼자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자기들이 한 증언 때문에 살해된 이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에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님, 저희가 흘린 피에 대하여 땅의 주민들을 심판하고 복수하시는 것을 언제까지 미루시렵니까?”라고 부르짖는다. 이 부분을 자칫 “원수를 갚아 달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안된다.
묵시록 전체 차원에서 보면 이 부르짖음은 바로 하느님의 정의가 바로 세워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신의 권세와 나라가 서기를 바라는 그런 울부짖음인 것이다. 실제로 울부짖는 이들에게 희고 긴 겉옷이 주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처럼 죽임을 당할 동료 종들과 형제들의 수가 찰 때까지 조금 더 쉬고 있으라는 분부를 받는다(묵시 6, 9~11 참조).
예수께서 이제 여섯번째 봉인을 떼신다. 그러자 큰 지진이 일어나고, 태양은 검게 되고 달은 온통 피처럼 된다. 또 하늘의 별들은 땅으로 떨어지고,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듯 사라져 버리고, 산과 섬은 제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땅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장수들과 부자들과 권력가들, 또 종과 자유인도 모두 동굴과 산 바위 틈에 몸을 숨긴다(묵시 6, 12~15 참조).
이 부분은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때 맞게 되는 종말론적인 대 파국을 묘사하고 있다. 결국 예수께서 여섯 봉인을 떼시는 이 내용은 당시 교회를 박해하고 있었던 권력자와 죄 지은 이들에게 내려질 하느님의 엄중한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점이 생긴다. 분명 두루마리는 일곱 봉인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여섯 번째 봉인까지 떼신다. 아직 하나가 남았다. 일곱 번째 봉인 이야기는 뒷부분에 나온다. 그 일곱 번째 봉인을 떼는 날, 바로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지금 여기서’볼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은 그 하느님 나라를 두 가지 차원에서 묘사하며, 맛보기로 살짝 보여준다. 하느님의 옥좌 앞에서 영광을 받는 의인의 모습과, 하느님과 함께 영광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것이다.
“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온다. 그가 땅과 바다를 해칠 권한을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친다. ‘우리가 우리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까지 땅도 바다도 나무도 해치지 마라’”(묵시 7, 3) 의인은 이마에 인장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14만4000명이다(묵시 7, 4 참조).
일부 개신교에서 이 14만 4000명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곤 한다.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종말에 14만 4000명만 구원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14만 4000명 안에 들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가진 것 모두 내놓아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극기와 희생, 기도의 삶을 살아도 14만 4000명 안에 들까말까 할 것이다.
성서신학은 이 수를 상징적으로 해석한다. 성경에서 12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의 12지파, 예수의 12사도 등 온 인류를 뜻하는 충만의 숫자다. 이 충만의 숫자에 12를 더 곱하면 144가 된다. 충만에 충만을 곱한 것이다. 이 144에 또다시 1000배 한 것이 바로 14만4000이다.
14만4000명이 인장을 받는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께서 모든 인류의 구원을 원하신다는 의미다. 전 인류가 회개하고 참다운 삶을 살아간다면, 진정으로 하느님 창조의 의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간다면 종말의 그 날, 모든 이들에게 인장이 찍힐 것이다.
요한은 이어 이마에 인장이 있는 백성들이 하느님 나라에 모여 있는 장엄한 모습을 보게된다.
〈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