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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 삶으로 부활 증거하는 그리스도인 / 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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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 삶으로 부활 증거하는 그리스도인 / 배광하 신부

부활 제3주일 (루카 24, 35-48) :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발행일 : 2009-04-26 [제2645호, 10면]

참다운 증인

길을 가다보면 자주 ‘목격자를 찾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보게 됩니다. 자동차 사고가 그 지점에서 일어났는데, 그것을 직접 본 목격자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 현수막 밑에는 연락처와 함께 사례금을 주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피해를 당한 분들의 억울함과 다급함이 그 현수막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봅니다. 저 또한 그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목격자 증인은 반드시 정확성이 있어야 합니다. 긴가민가 하는 어리숙한 태도와 어설픈 대답은 오히려 피해자의 가슴에 또 한 번의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작가 ‘김승옥’은 그의 단편 「무진기행」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 - 잘 아는 체 한다는 것이 그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안다고 이야기 하지만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묻어 나오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안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아는 체’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 입장에서는 가슴이 아프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 대축일 「부속가」 찬양에서 분명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 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교통사고 현장이나 범죄 현장의 목격자인 경우는 그 현장을 분명 보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 부활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경험에는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이 있듯이 부활 체험의 증언은 간접경험으로도 가능합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언제나 부활을 경험할 수 있고, 그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 성 바오로는 분명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는 선교여행에서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야기하며, 그 증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삶에서 끊임없이 부활을 체험했고, 부활을 살았던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힘주어 증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로마 6, 9).

진정 부활의 참된 목격자인 증인은 그 부활을 삶으로 사는 자입니다.

증인의 삶

법정이나 혼인성사 때, 증인을 세우는 까닭은, 그가 자신이 보았던 것을 끝까지 바르게 증언해 달라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증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위증을 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죽음 앞에서도 그 일에 대한 참다운 증언을 끝까지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당신의 부활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유령으로 착각하자 직접 당신의 손과 발을 보이시며 만져 보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루카 24, 39)고 하시면서 극구 당신이 유령이 아님을 증명하시기 위하여 생선 한 토막까지 드시는 장면을 연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이신 부활 증명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 같은 예수님 사랑의 마음이 제자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은 과연 부활의 참된 증인이 됩니다. 때문에 배신자이자 겁쟁이였던 베드로는 오늘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이 분명히 보았던 부활 사건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사도 3, 15).

그 같은 부활의 참된 증언을 듣고 또 들었던 우리 역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삶을 매순간 부활의 기쁨으로 살았던 증인들을 만났고, 또 만나고 있습니다. 지금 제 책상에는 한 분의 성화와 두 분의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사도 성 바오로와 성녀 소화 데레사,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의 사진과 성화입니다. 이 분들이 정녕 죽음으로 모든 것을 끝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죽었으나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진정 산자의 부활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썩을 육신을 지닌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영생의 부활을 이미 현세에서부터 살았기 때문에 다시 부활을 사는 것입니다. 부활은 진정 뜨거운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세상을 위하여 투신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사순을, 십자가를, 희망 없는 삶을 사는 이들에게 마지막 부활의 희망이 있음을 온 몸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 같은 삶이 참된 부활의 증인된 삶인 것입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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