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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 예수님 닮은 목자 더 필요한 세상/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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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 예수님 닮은 목자 더 필요한 세상/배광하 신부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요한 10, 11-18) : 하느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
발행일 : 2009-05-03 [제2646호, 10면]

착한 목자

인도 독립의 아버지인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자신이 만난 예수님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였습니다.

“신약성경과 산상설교를 읽게 되면서 나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별히 산상설교는 내가 어린 시절에 배운 것을 연상시켰고, 내 존재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어떤 원칙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이 가르침은 악에 대한 비 보복, 또는 무저항입니다. 내가 읽은 모든 글 중에서 내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는 글은 예수님께서 주신 새로운 법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 즉 하느님을 경외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수록, 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산상설교가 그리스도교의 전부임을 보았습니다. 바로 산상설교로 인하여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과 간디의 이 같은 고백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행일치라는 점입니다.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당신을 착한 목자라고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양들인 우리는 그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목자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양들이 그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르겠습니까? 예수님 안에 한 양이었던 간디는 비록 예수님의 말씀처럼 당신의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이었지만 목자의 음성을 알아들었습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처럼 지상의 삶을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 15).

예전 개신교 목사 한 분이 미국에 가서 “불교를 믿는 국가들이 잘 사는 것을 보았습니까? 전부 가난한 나라들뿐입니다”라는 말을 하여 국민의 분노를 산 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불자들은 격노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말씀을 거꾸로 이야기하는 모순을 범하였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루카 6, 20) 그와 같은 복음적 논리가 아닌 경쟁과 경제의 논리로 반 복음적 메시지를 전한다면 어떤 양들이 그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진정 당신의 말씀대로 가난을 사셨고 양들을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때문에 그분이 진정 착한 목자이신 것입니다.

그분의 양 떼

오늘 요한은 넘치는 하느님 사랑을 감격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외칩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1요한 3, 1).

피조물이며 유한의 존재인 우리가 창조주이시며 무한의 존재이신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 그래서 그 놀라우신 분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은 진정 그리스도교의 신비입니다. 이 같은 감격의 은총은 예수님의 강생과 수난, 그리고 부활로 말미암아 분명히 밝혀졌습니다. 이제까지 하느님은 심판자, 징벌자이신 두려움의 상징이었는데, 예수님의 말씀처럼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목자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받게 된 구원에 관하여 이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 12).

하느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가 그분의 자녀라면, 자녀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착한 자녀들은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그분 뜻에 따라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마지막 음성, 그 뜻은 이것이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 19-20).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그 같은 당신의 뜻을 또다시 사랑의 걱정 어린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요한 10, 16).

해마다 교회는 오늘 부활 제4주일을 착한 목자 주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는 양떼들인 우리가 그분의 음성을 들었으면, 그분의 뜻을 따르고자 결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진정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닮아 세상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그 목소리를 들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큰 목소리로 외칠 참된 사도들이 많이 나오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닮은 착한 목자를 더욱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성소주일인 목자의 간절한 목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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