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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 더 큰 은혜를 위하여 / 장재봉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2. 10. 3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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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795) 더 큰 은혜를 위하여 / 장재봉 신부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눈먼 거지'입니다. 동냥을 해서 살아가는 일이 본업인 만큼, 주님께서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으셨을 때 "돈을 달라"라고 했을 법도 한데, 주저하지 않고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했다는 점이 상당히 신선합니다. 앞서 들었던 부자 청년 이야기와 버무려 생각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똑같이 주님을 스스로 찾았으며 똑같이 주님을 길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나를 따라라"라는 주님의 말씀에 마음이 슬퍼져서 떠나버리고, 또 한 사람은 "가거라"는 말씀을 듣고서도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두 사람이 모두 주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은 셈입니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두 사람을 확연히 차별대우하신 점도 흥미로운데요. 부자에게는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라고 똑 부러지게 명하시고,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에게는 오히려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 줄 것을 청하셨다니 그렇습니다.

복음사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결코 '힘든 것', '어려운 것', '도무지 할 수 없는 것' 따위를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결코 '이겨내지 못할 시련'(1코린 10,13)으로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시며 각자에게 꼭 알맞은 것, 스스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만을 청하신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렇게 살피니, 시력을 잃고 구걸하며 살아가던 바르티매오가 겉옷을 벗어던진 채, 주님께로 달려갔다는 구체적인 상황묘사를 한 복음사가의 의도가 분명히 다가옵니다.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을 넘어선, 지금 당장 먹을 것보다 귀한 진리를 향한 열망의 자세를 가르쳐 준 것으로 생각됩니다. 눈먼 이의 처절한 뜀박질을 통해서 일상을 넘어선 매우 고귀하고 훨씬 근원적인 것을 갈구하라는 당부라 새깁니다.

그날 주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바라신 것은 '재물'에 얽매인 마음에서 자유로워지라는 권고였습니다. 혹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 마음이 슬프고 근심스러워진다면 지체없이 자신의 영혼을 점검하라는 당부로 듣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가진 것이 '겉옷'뿐일지라도 그분께로 가까이 가는 일에는 훼방일 수 있으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온 세상의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이 때문에 그분과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 '서로 사랑'하는 일에 걸림이 되는 모든 것을 치워 버리기 원하십니다. 이 때문에 우리 안에 가득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것들을 '없앨 것'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의 명령을 버겁게 여기는 마음, 그분께 등을 돌릴 만큼 애착하는 것을 '처리하고' 따를 것을 명령하십니다.

풍족히 주신 것으로 더 많이 사랑하고 베풀며 지내는 삶은 분명한 축복입니다. 하지만 많이 가진 것이 선을 행하는 일의 근간은 아닙니다.

물론 돈이 없고 가난해서 겪어야 하는 삶의 고통은 고달픕니다. 세상에는 돈 때문에 슬퍼지고 근심해야 하는 일도 허다합니다. 하지만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그럼에도 교회 안에서까지 가진 것이 많아야만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주님의 일마저도 경제적인 여유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줄로 여깁니다. 틀렸습니다. 물질이 적다고 주님의 일을 못하거나 주님을 따를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도 아주 많습니다. 가진 것이 적으면서도 더 큰 일을 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복음의 멋진 비밀입니다. 재빨리 내려놓고 더 단출해져서 그분께로 달려가는 용기야말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도전해볼 만한 대단한 은혜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께 청하고 간구하는 우리에게 응답하십니다. 그분의 답변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십분 감안하신 것이기에, 각기 다를 터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분의 말씀에 귀가 밝아져서 타인이 아닌 나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따르는 '거룩한 욕망'에 사로잡히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바르티매오가 지녔던 간절한 몸짓을 익혀 삶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내던지고 그분께로 달려가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마침내 그분께로부터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 누리는 은총의 주역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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