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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 시선 당기고 마음 움직이는 ‘믿음’ / 장재봉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2. 11. 2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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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 시선 당기고 마음 움직이는 ‘믿음’ / 장재봉 신부

연중 제32주일 (마르코 12, 38-44) 과부의 용기있는 믿음
발행일 : 2012-11-11 [제2819호, 18면]

 


우리는 오늘 복음과 독서를 통해서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유독 하느님의 마음을 당기고 예수님의 시선을 끌었던 두 여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두 여인의 지독히 지난했을 삶의 자락을 엿보게 됩니다.

믿음이 좋으면 복을 받아서 잘 먹고 잘살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 시험당하기 딱 좋은 구절입니다.

그날 하느님께서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줌으로 빵을 구워 아들과 먹고 ‘죽을 작정’을 하고 있는 가난한 과부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먹고살도록’ 조처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낌없는 봉헌을 통해서 주님을 감동시켰던 구차한 과부에게도 예수님의 살뜰한 보살핌이 따랐을 것이라 짐작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결코 ‘말로만’ 칭찬하고 데먼데먼 모른 척하셨을 리는 없을 것이라 싶은 것입니다.

나아가 그날 주님께서 보여주신 따뜻한 베풂의 모습이 제자들에게 또렷한 귀감이 되어 마침내 야고보 사도는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는 것이 곧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임을 명확히 밝힐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야고 1,27 참조).

문명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세상에서는 가난한 이웃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단단할지라도 그것으로 세상의 풍요를 보장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세상이 말하는 ‘복’과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축복’의 의미를 살피고 싶습니다.

세상은 착하게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왜곡했습니다. 나아가 천박한 가치관을 덧칠해대는 중입니다. 예를 들어 나에게 이로움을 주는 사람이나 이익을 주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나에게 져주고 나 때문에 손해당하더라도 묵묵하게 입 다무는 사람은 무던하다고 여깁니다. 순전히 본인의 이익과 편의에 따라 자기중심 논리로 인간성마저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야말로 진리의 기준을 잃고 주님의 뜻에 상반되게 살아가는 유감 된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손해 보되 손해를 끼치지 말라고, 차라리 내가 앓을지라도 이웃을 아프게 하지 말 것을 당부하십니다. 남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이용당할 것을 권하십니다. 이래서 세상은 주님의 말씀을 싫어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명하여 착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눈에도 폼나면 따라서 믿겠다고 비아냥댑니다. 이 때문에 약간 허탈합니다. 혹간 면구스럽습니다. 믿음이 좋으면 축복을 얻는다는 약속이 무슨 소용이냐고 되물으며 신앙의 회의를 품기도 합니다. “하느님 믿어도 별수 없네”라는 세상의 비웃음에 승복 당합니다.

그날 ‘죽을 작정’을 할 만큼 곤고한 삶 안에서도 낯선 엘리야 예언자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자신의 마지막 빵을 챙겨 건네던 사렙타 과부의 모습이 믿음의 저력입니다. 가진 것이라곤 ‘렙톤 두 닢’뿐이면서도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다’ 그분께 봉헌할 것을 작정하고 실천했던 가난한 과부의 결단이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의 축복이란 우리의 삶에 놓인 재난과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순명의 자세로만 가늠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복음적인 삶은 재난이나 고난을 비켜가는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라 살펴집니다.

그날 주님을 믿어 선하게 생각하고 착하게 지낸 두 과부의 고통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그것으로 끝장나지 않았습니다. 결코 손해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가난은 오히려 놀라운 하느님의 은혜를 끌어 들이는 축복이었기 때문입니다.

눈앞이 캄캄한 고난으로 마음이 무너질 때, 삶을 가로막는 재난에 숨이 막힐 때, 먼저 이웃을 생각했던 사렙타 과부의 온유한 사랑과 두 렙톤마저 아끼지 않았던 과부의 용기 있는 믿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넘어, 끝내 승리하도록 도우시는 그분의 손길을 느끼며 힘을 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안에 있는 믿음과 희망이 그분의 시선을 당기고 그분의 마음을 움직이는 복된 도구로 사용될 것임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을 찾는 이들에게는 좋은 것 하나도 모자라지 않으리라”(시편 34,11)는 주님의 약속을 믿어 채움 받는 참 행복의 주인공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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