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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 그린 게 아니다?

역사 자료

by 巡禮者 2015. 9. 18.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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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 그린 게 아니다?

 

조규희 서울대 강사, ‘통설’ 반박



1447년 그린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일본 덴리대 소장)는 15세기 세종 때의 ‘문예 부흥기’ 분위기를 전하는 걸작이다. 가로 1m를 넘는 두루마리 그림은 전통적 이상향인 복사꽃 마을(도원)이 험준한 준봉에 둘러싸인 환상적 풍경을 담고 있다.

명작을 탄생시킨 주역으로 알려진 이가 당대 최고의 문화후원자였던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1418~1453)이다. 그는 1447년 음력 4월20일 밤 잠을 자다가 복사꽃숲 가득한 도원경을 신하 박팽년과 함께 말타고 찾아가는 꿈을 꾸었다. 갈림길을 만났을 때 신령스런 옷을 입은 도인이 나타나 낙원에 가는 길을 일러주었다고 한다. 이 생생한 꿈을 그리라고 안견에게 명하고 사흘 만에 몽유도원도가 그려졌다는 게 지금까지 안휘준 서울대명예교수 등이 정립한 통설이다. 현재 전하는 ‘몽유도원도’ 뒤에는 안평대군이 꿈 내용을 기록한 기문(記文)이 붙어있다. “비해당(안평대군)이 몽유도원기를 작성해 내게 보여주었다”고 적은 박팽년의 그림 서문과 더불어 창작 배경을 뒷받침하는 문헌 근거로 받아들여져 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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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그림엔 의아한 부분이 적지않다. 그림은 화폭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시공간이 흘러가면서 첩첩산중을 지나 붉은 복사꽃 핀 마을로 옮겨가는 풍경을 보여주지만, 사람이 없다. 안평대군의 생생한 꿈 속 이야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이 그려진 뒤 안평대군이 자기 꿈을 갖다 붙인 건 아닐까. 게다가 동아시아의 전통 두루마리(횡권)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공간을 옮겨가면서 보는 게 원칙인데, 이 그림은 시선의 방향이 완전히 거꾸로다. 왜 그럴까.

“부암동 별장 ‘무계정사’ 풍경”
그림 속에 사람이 안 보이고
중신들 시문 꿈 언급 안해
풍수지리적 영험 ‘서응도’ 주장


몽유도원도의 수수께끼를 통설과 전혀 다르게 풀어낸 학설이 나왔다. 조규희 서울대 강사는 최근 삼성미술관 리움이 펴낸 학술총서 <세밀함으로 읽는 한국미술>에 실은 ‘안평대군의 서응도’란 논고를 통해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그가 칩거했던 서울 부암동 무계정사의 풍수지리 환경을 이상적으로 풀어낸 그림이란 주장을 내놓았다.

“애초부터 꿈 이야기를 풀어낸 그림이 아니었기에 꿈속 인물들을 그릴 필요가 없었”으며, “안평대군과 수하 문인들은 경복궁을 감싼 백악산 서북쪽 산기슭에 조성한 무계정사를 꿈꾸던 도원경으로 보고 이 땅을 안견에 그리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몽유도원도를 보고 붙인 박팽년, 최항, 정인지, 최수 등 집현전 학사와 당대 중신들의 제화시문에서 꿈이 그림의 내용으로 풀려나왔다는 명시적 대목이 보이지않기 때문이다.

최수는 그림을 감상하면서 “붓끝에 아롱져 펼쳐진 도화원의 풍경”이라고 했고 다른 필자들도 도원경을 그린 ‘몽도원도’ 혹은 ‘도원도’로만 명시할 뿐 안평대군의 꿈 내용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안평대군 자신이 꿈에 대해 쓴 기록들도 이를 뒷받침한다. 안견에게 그리라고 명한 대목은 보이지 않고 무계정사가 자리한 부암동 산야의 모습이 꿈에 본 도화원 풍경과 거의 비슷해 무계정사 편액을 붙였다는 대목 등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무계정사가 궁궐에서 풍수 관련 서적을 구상했던 중신 이현로의 조언에 따라 마련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몽유도원도는 무계정사의 이상향적 풍경을 음양조화에 따라 풍수적으로 재해석한 그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백악산 아래 경복궁 궁궐에서 남쪽을 보며 정무를 봤던 왕실의 시야에서 보면 백악산 서북쪽 무계정사는 우백호(서쪽 호랑이)자리에 해당한다. 무계정사 건물 안에 내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몽유도원도는 그림 보는 시선을 극적으로 뒤집으면서 무계정사의 풍수적 기능을 부각시킨 그림일 수 있다는 논지다.

결론적으로 몽유도원도는 꿈의 그림이 아니라, 12세기 송나라 이후 실제 산천처럼 풍수지리적 영험을 지닌 그림으로 유행한 ‘서응도’로 볼 수 있다고 조씨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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