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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미만 14시간한다는 ‘이 동물’…죽음도 불사한 이들의 사랑법 [생색(生色)]

생태계 자연

by 巡禮者 2024. 1. 2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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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8] 사춘기가 되어서였을까요. 새끼 티를 내던 그에게서 어느덧 사내의 향기가 나기 시작합니다. 이성을 보는 눈빛도 찐득해졌지요. 엄마만 찾아 울부짖던 예전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사랑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외모도, 성향도 딱 자기 타입인 이성을 만난 것이었지요. 상대방도 이 녀석이 싫지는 않은 눈치입니다. 둘은 어느덧 ‘교미’에 나섭니다.

 

둘의 사랑이 멈출 줄 모릅니다. 마치 폭주기관차마냥 달리는 것처럼 보였지요. 3시간이 지나고, 6시간을 넘겨도, 둘은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갑니다. 마침내 사랑의 행위가 중단 됐을 때는 12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인간이여, 내 앞에서 오래한다고 자랑하지 말지어다.” 1880년대 독일의 대중 동물학 서적인 ‘브렘스 티어레벤’에 수록된 안테키누스 삽화. 쥐같이 생긴 이 동물은 코알라와 친척에 가까운 유대류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누군가 노래했지요. 정말로 그랬습니다. 12시간의 사랑을 나눈 이 녀석의 몰골이 말이 아니어서였지요.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고, 죽음이 임박한 듯 보입니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이 녀석이 조용한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는 이내 숨을 거두었지요. 행복한 죽음이었을까요.
 

섹스 중독 철부지 얘기가 아닙니다. 이 동물 수컷 대부분이 비슷한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강렬하고, 길고 긴 섹스. 그리고 죽음. 코알라의 친척뻘인 ‘안테키누스’ 수컷의 삶입니다.

 
호주의 귀염둥이...교미할 때만큼은 폭주기관차
안테키누스는 호주에 서식하는 ‘귀염둥이’입니다. 완전히 자랐을 때 크기가 최대 31cm, 몸무게가 많이 나갈 때 조차 170g에 불과합니다. 코알라와 같은 유대류라고 하지만, 겉모습만 봤을 때는 설치류로 보이기도 합니다. 얼핏보면 다람쥐와 유사한 모습이라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듬뿍 받는 동물이기도 하지요.

사춘기를 맞은 이들의 행동은 썩 귀엽지 않습니다. 특히 수컷의 모습이 그렇지요. 안테키누스는 7~9월에 번식기를 맞이합니다. 남반구인 호주에서는 겨울에서 초 봄에 짝짓기 시즌을 맞이합니다.

 

“귀엽다고 무시하지 말라고.” 귀여운 얼굴의 안테키누스는 무시무시한 짝짓기를 하는 동물이다. <저작권자=Mel Williams from Melbourne, Australia>
태어난지 생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수컷들의 몸속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의 몸은 이제 짝짓기를 하지 못해 안달난 상태로 바뀌어 가는 것이지요. 마침내 제 짝을 만난 수컷은 미친듯이 교미를 해댑니다. 평균적으로 12시간 동안 사랑을 나눌 정도지요. 어느 과학자들은 14시간까지 관측했다는 기록도 있었습니다.

‘마라톤 섹스’가 끝나면 쉼의 시간이 찾아올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다른 파트너를 또 찾아 나섭니다. 3주 동안 미친 듯이 파트너를 찾는 것이지요. 다른 일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섹스중독자’의 모습이지요.

 

달콤한 사랑 뒤엔 언제나 죽음이 찾아온다
오랜 사랑은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지요. 사랑을 할 때 조차도 수컷은 불안합니다. 또 다른 수컷이 호시탐탐 자신의 파트너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다른 수컷 역시 몸에서 남성호르몬이 폭발해 주체가 안될 지경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교미하는 수컷을 툭툭 건들며 “야 나도 하자”고 싸움을 걸게 되는 것이지요.

 

                                        “이건 너무 길지 않아?” 영국의 조류학자 존 굴드가 1863년 그린 안테키누스.
 
 
가까스로 라이벌을 때려 눕히고 다시 사랑을 이어갑니다. 몸 곳곳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털은 탈모 환자마냥 후두둑 빠졌지요. 면역체계가 붕괴돼 볼품 없는 꼴로 전락하고 맙니다. 과로 스테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치솟기 때문입니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지만, 안테키누스 수컷의 마지막은 안쓰럽기 그지 없습니다. 실제로 첫 번식기 이후 살아남는 수컷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안테키누스 대부분 수컷의 향년은 불과 1세. 포유류 치고는 상당히 짧은 수명이지요.

 
수컷보다는 나은 암컷의 삶
암컷의 운명은 수컷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한 달의 임신기간을 거쳐 아이를 양육하는 만큼 보다 긴 수명을 보장받기 때문입니다. 여러 파트너와의 긴 시간의 교미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10마리나 되는 새끼들의 모습이 제각각입니다. 같은 아빠의 새끼들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달랐지요. 분명 같은 시기에 한 어미의 뱃속에서 나온 아이들이었는데도요. 암컷은 최대 2주 동안 신체 내부에 정자를 저장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한 번에 아빠가 다른 여러 새끼들을 낳는 것이지요. 같이 태어난 4마리 새끼가 ‘각각’ 아빠가 달랐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놔주세요, 저 짝짓기 하러 가야 한단 말이에요.” 수컷 안테키누스. <저작권자=Katrin Solmdorff>
 
 
약 15% 정도의 어미는 두 번째 번식의 과정까지 겹친다고 하지요. 15% 정도는 수컷의 두배인 2년 정도 사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적은 수의 개체들은 세 번의 번식까지 성공합니다.

어미의 양육에는 색다른 원칙도 존재합니다. 어미는 새끼 수컷이 스스로 먹이를 먹을 수 있겠다 싶을 때 죄다 쫓아버립니다. ‘남혐’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수컷 새끼들이 남매지간인 암컷들과 교미를 할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지요. 수컷의 엄청난 성욕을 알고 있는 셈이지요. 전혀 혈연관계가 없는 수컷들과 연결시켜주는 것도 어미의 역할입니다.

 

안테치누스는 왜 ‘자살적 교미’를 하나
수컷의 ‘광적’인 교미는 자살적 재생산(Suicidal Reproduction)이라고 부릅니다. 번식 후 대부분의 수컷이 죽는 모습을 두고 이렇게 이름지은 것입니다. 이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교미를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 역시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수 많은 동물들이 한 번의 번식 후 사망하는 ‘일회생식성(Semelparity)’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번식기인 일정 시기에만 짝짓기를 하고 생명을 마감하는 것이지요.

나비·매미·거미·오징어·문어 같은 동물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새끼를 낳습니다. 먹이부족 혹은 다른 환경적 요인으로 사망률이 높은 이들이 번식 방법으로 알려졌지요. 포유류에서는 거의 드문 생식법이지만, 안테키누스만큼은 이 길을 따르고 있습니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안테키누스 수컷은 생후 1년이 되기 전에 (장시간) 짝짓기를 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저작권자=Patrick_K59>
 
거의 죽을 때까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인간이 보기에 ‘괴이쩍은’ 방식입니다.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는 다회생식으로 새끼를 낳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화적 관점에서 ‘일회생식성’도 분명한 장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만큼 가급적 많은 새끼를 낳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대(代)가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지지요. 물량공세 방식의 번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먹이 환경이 안테키누스의 번식 방법을 결정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특정 곤충이 주식인 안테키누스는 먹이를 거의 먹지 못하는 시기를 거칩니다. 이들이 새끼를 낳는 8~10월은 먹이가 가장 풍부한 계절로 알려져 있지요. 젖을 먹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산모가 영양을 보충해야 합니다. 이 시기에 맞춰 암컷들이 발정이 나게끔 진화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안테키누스 수컷이 장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안테키누스 수컷은 교미 후 대부분 죽습니다. 극소수의 생존자도 있습니다. 누구냐고요. 인간에게 포획된 수컷입니다. 연구용으로 잡힌 탓에 번식의 기회를 놓친 것이었지요. ‘자살적 재생산’을 하지 못하고, 결국 수명 연장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지요. 섹스를 하면 죽고, 숫총각으로 남으면 살게되는 기묘한 역설. 지나친 섹스가 끼치는 위험, 인간의 이야기만은 아닌 셈입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1867년 영국 화가 포드 매독스 브라운이 그린 로미오와 줄리엣.
 
<세줄요약>

ㅇ쥐와 닮은 유대류 안테키누스는 14시간동안 교미를 한다. 번식이 끝나면 기력 소진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ㅇ수명이 1년으로 짧은 탓에 한번에 모든 기력을 쏟아부어 가급적 많은 새끼를 낳기 위해서다. ‘일회생식성’(Semeparity) 동물인 셈이다.

ㅇ지나친 섹스는 위험하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참고 문헌>

ㅇ브론윈 M 맥켈런 외, 안테키누스의 생식 신호 광주기 :생태학적·진화적 결과, 린네학회의 생물학 저널 87권,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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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운 기자(penkang@mk.co.kr)입력 2023. 7. 23

출처 : 매일경제 & 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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