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교황청 홈페이지에 수록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문장 설명입니다(안드레아 코르데로 란자 디 몬테제몰로 몬시뇰 작성)
전통과 새로움의 조화
문장은 중세 때부터 군인들과 귀족들이 흔히 사용해 왔으며, 이에 따라 일반 사회의 문장을 규정하고 설명하기 위한 매우 특수한 문장학 용어도 생겨났다.
이와 동시에, 성직자들을 위한 교회 문장도 발전하였다. 교회 문장은 방패의 구성과 명칭에 관련해서는 일반 문장 규정을 그대로 따르지만, 방패 주변에 성품의 위계, 통치권, 품위에 따른 종교적 교회적 상징들과 표장들을 배치한다.
교황들이 사도좌의 고유한 상징들 외에도 개인 문장을 가지게 된 전통은 적어도 800년 정도 되었다. 특히 르네상스와 그 이후 수세기 동안은 당대 교황의 주요 업적을 교황 문장으로 나타내는 것이 관례였다. 사실 교황의 문장은 건물이나 다양한 인쇄물, 교령, 문서들에 등장한다.
교황들은 흔히 자기 가문의 방패를 사용하거나, 그들 삶의 이상을 나타내거나 과거의 사건이나 경험 또는 교황직의 특별한 계획들과 관련된 요소들을 나타내는 상징들로 자신만의 방패를 만들었다. 또는 주교로 임명되면서 채택했던 방패를 변형하기도 하였다.
교황으로 선출되어 베네딕토 16세라는 이름을 택한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자신의 개성과 교황직을 역사에 전하게 될 풍부한 상징과 의미를 담은 문장을 선택하였다.
신분과 직함의 표지인 문장
문장은 몇 개의 중요한 상징들이 담긴 방패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사람의 품위와 위계, 직함, 통치권 등을 나타내는 요소들이 방패 주변에 배치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택한 방패는 매우 단순하다. 곧 교회 문장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어 온 형태인 성작 모양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방패의 바탕색은 추기경 시절 문장의 방패 구성과는 달리 붉은 색이며, 금색 샤페(chape; 문장학 용어. 방패의 상변 중앙에서 하변 양끝으로 두 개의 사선으로 그어진 삼각형 문양)가 있다. 사실상 주된 바탕색은 붉은 색이다.
위쪽 양 상단에 각각 금색의 샤페가 있다. 샤페는 종교의 상징으로서, 수도원, 더 정확히 말하면 베네딕토 영성의 영향을 받은 이상주의를 나타낸다. 가르멜회와 도미니코회와 같은 여러 수도회들이 그들의 문장에 샤페 형태를 채택하였다(도미니코회는 사실 예전 문장에서만 샤페 형태를 사용하였고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 설교회의 베네딕토 13세(1724-1730)는 검은 색 샤페로 분리된 흰 색의 ‘도미니코회 쉐프(chief; 문장학 용어. 문장을 그려 넣는 방패의 위쪽 ⅓의 부분)’를 사용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방패는 뮌헨 프라이징 대교구장 시절과 그 이후 추기경 시절의 문장에 이미 사용했던 상징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새 문장에서는 구성과 배치가 달라졌다.
문장의 주요 바탕색은 중앙의 붉은 색이다. 방패의 중심을 가르는 지점에는 커다란 금색 조개껍질이 있는데 이는 세 가지 상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의미는 신학적인 것으로, 아우구스티노 성인에 관한 이야기를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바닷가에서 한 아이가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서 모래밭의 작은 구멍에 붓고 있는 것을 본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아이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아이의 설명을 듣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아이의 헛된 짓을 유한한 인간 마음 안에 하느님의 무한함을 담으려는 자신의 헛된 노력에 비유한다.
이 이야기는 분명한 영적 상징을 지닌다. 곧, 이 이야기는 신학의 무한한 원천에서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이끌어내되, 인간의 이해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겸손함을 지니라는 권유이다.
또한 조개껍질은 수세기 동안 순례자들을 나타내는 데에 사용되어 왔다. 베네딕토 16세는 이 상징을 유지함으로써, 세계 곳곳을 방문한 위대한 순례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하였다. 4월 24일 주일에 교황 즉위 장엄 미사에서 입은 제의를 장식했던 큰 조개껍질 문양이 이를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조개는 또한 바바리아 지방 레겐스부르크(Ratisbon) 인근의 고대 쇼텐 수도원 문장 안에 있는 상징이기도 한데, 베네딕토 16세는 이 수도원과 긴밀한 영적 유대를 맺고 있다.
‘프라이징의 무어인’
방패에서 ‘샤페’라 불리는 부분에는, 베네딕토 16세가 1977년 뮌헨 프라이징 대교구장이 되었을 때 문장에 사용했던, 바바리아 전통에서 가져 온 두 가지 상징이 있다. 방패 오른쪽(문장을 보는 사람 편에서는 왼쪽) 상단에는 붉은 입술과 왕관, 옷깃을 한 무어인의 얼굴(에티오피아인의 머리: caput Aethiopum)이 무어인 고유의 피부색인 갈색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8세기에 설립된 프라이징 교구의 유서 깊은 상징이다. 프라이징 교구는 교황 비오 7세와 바바리아의 막시밀리안 요제프 왕의 협약(1817.6.5.)에 따라, 1818년에 뮌헨-프라이징 대교구가 되었다.
무어인의 얼굴은 유럽의 문장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사르디니아와 코르시카 문장에, 또 여러 귀족 가문의 문장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탈리아 문장은 대개 머리에 왕관 대신 흰색 띠를 두르고 있는 무어인을 묘사함으로써 해방된 노예를 나타내는 반면, 독일 문장에서는 왕관을 쓰고 있는 무어인을 나타내고 있다. 무어인의 얼굴은 바바리아 전통에서 흔하며, ‘에티오피아인의 머리’ 또는 ‘프라이징의 무어인’으로 알려져 있다.
짐을 지고 있는 곰
방패의 왼쪽 상단에는 곰 고유의 색, 곧 갈색 곰이 그려져 있으며, 등에는 짐 싣는 안장을 지고 있다. 오래된 전승에 따르면, 프라이징 초대 교구장인 코르비니안 성인(680년에 프랑스 샤트르에서 출생, 730년 9월 8일 사망)이 말을 타고 로마로 길을 떠났다. 숲을 지나던 중 그는 곰의 습격을 받고, 이 과정에서 말은 처참한 죽음을 당한다. 그러나 코르비니안은 그 곰을 길들이는 데에 성공하여, 곰의 등에 짐을 싣고 로마까지 가게 된다. 문장에서 곰이 짐을 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쉽게 해석해보면, 하느님의 은총으로 길들여진 곰은 바로 프라이징 교구장 자신이며, 짐을 얹은 안장은 자신이 지고 있는 막중한 주교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황 문장의 방패는 문장학 용어로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겠다. “붉은 색 바탕, 황금색 샤페. 황금색 조개껍질. 오른쪽 샤페에는 붉은 색 왕관과 옷깃, 고유의 피부색으로 그려진 무어인의 얼굴. 왼쪽 샤페에는 검은 띠로 맨 붉은 색 짐을 지고 가는 고유의 색으로 그려진 곰.”
방패가 그것을 지니고 있는 사람과 그의 이상, 전통, 삶의 계획, 그에게 영감을 주고 지침이 되는 원칙들과 관련된 상징들을 지니고 있다면, 그의 위계와 품위, 통치권을 나타내는 다양한 상징들은 방패 주변에 배치된다.
안드레아 성인의 십자가 형태로 교차된 금색과 은색의 열쇠가 방패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교황 문장의 유서 깊은 전통이다. 이 열쇠들은 영적 세속적 권위의 상징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열쇠들은 방패 뒤쪽 또는 위쪽에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마태오 복음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열쇠들은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에게 주신 권위의 전형적인 상징이다. 따라서 모든 교황 문장에 열쇠가 등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일반 문장에는 언제나 방패 위에 모자 형태의 것, 대개는 왕관이 있다. 교회 문장에도 흔히 모자가 나타나지만, 이는 명백히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들이다.
교황의 문장에는 예로부터 삼중관(tiara)이 등장했다. 본래 교황관은 일종의 챙 없는 형태의 ‘모자’(tocque)였다. 1130년, 국가에 대한 교회의 주권의 상징으로 왕관이 하나 더해졌다.
보니파시오 8세는 1301년에 프랑스의 공정왕 필립과 대립할 당시, 그의 영적 권위가 그 어떤 세속적 권위보다도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왕관 하나를 더 추가하였다.
1342년 베네딕토 12세는 교황의 도덕적 권위가 세속의 어떤 군주보다도 높음을 상징하기 위하여 세 번째 왕관을 추가하고 아비뇽 소유를 재확인하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러한 세속적 의미는 사라졌지만, 세 개의 금관으로 이루어진 은색 삼중관은 교황의 삼중 권한, 곧 성품권과 통치권, 교도권을 상징하게 되었다.
지난 수세기 동안, 교황들은 공식적인 장엄 예식과, 특히 교황직을 시작하는 ‘대관식’ 날에 삼중관을 썼다. 바오로 6세는 대관식 때에 밀라노 대교구가 헌정한 귀한 삼중관을 썼다. 밀라노 대교구는 비오 11세에게도 삼중관을 헌정한 바 있다. 그 후, 바오로 6세는 이 삼중관을 한 자선 단체에 기증하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것과 같은 단순한 ‘주교관’(mitre)을 도입하였으며, 이를 때때로 장식물이나 보석들로 장식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오로 6세는 ‘삼중관’과 교차된 열쇠들을 사도좌의 표장으로 남겨 두었다.
오늘날, 교황직 시작을 위한 예식은 더 이상 ‘대관식’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교황의 완전한 통치권은 콘클라베에서 추기경들이 자신을 선출하였음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며, 일반 군주처럼 대관식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예식은, 베네딕토 16세의 지난 4월 24일 예식처럼, 단순히 베드로 직무 장엄 즉위식이라고 불린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공식 교황 문장에 삼중관을 넣지 않기로 하였으며, 삼중관처럼 작은 구(球) 모양과 십자가로 장식된 것이 아닌 단순한 주교관으로 대신하였다.
삼중관의 상징을 연상시키기 위하여 그의 문장에 있는 교황관은 은색 바탕에 세 줄의 금색 띠(삼중 권한: 성품권, 통치권, 교도권)가 있고, 이 세 띠들이 중앙에서 만남으로써 그것들이 교황 안에 하나로 일치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팔리움
한편,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문장에는 전혀 새로운 상징이 있는데 바로 ‘팔리움’이다. 적어도 최근에 교황이 문장에 팔리움을 넣는 것은 전통이 아니었다.
그러나 팔리움은 전례에서 교황의 전형적인 표지로서, 옛 교황들의 초상화에 흔히 나타나며,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양 떼의 목자인 교황의 책임을 상징한다.
초기에 교황들은 어깨에 진짜 양가죽을 둘렀다. 후에 이것이 특별히 이를 위하여 사육한 양의 순수한 양털로 짠 흰색의 양모 영대로 대체되었다. 또한 초세기에 팔리움은 주로 검은 색이나 때로는 붉은 색의 십자가들로 장식되었다. 4세기에 이미 팔리움은 교황을 특징짓는 고유한 전례적 상징이 되었다.
교황이 팔리움을 관구장 대주교들에게 수여하기 시작한 것은 6세기부터였다. 그들이 임명 후 팔리움을 요구할 의무는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확인된다.
역대 모든 교황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는 바오로 대성전의 유명한 성화당 부조들을 보면(초기 초상화들은 상상으로 그려졌다), 여러 교황들, 특히 5세기에서 14세기 사이의 교황들이 팔리움을 걸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팔리움은 교황 통치권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관구장 대주교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그 관하 교구장들과 이 통치권을 공유한다는 명시적인 형제적 표지이다. 따라서 팔리움은 주교의 단체성과 보조성의 가시적 징표이다.
사목 표어가 생략된 문장
일반 문장이든 교회 문장이든, 통상적으로 문장에는 (특히 낮은 서열일수록) 방패 아래에 리본이나 카르튜슈(소용돌이무늬 장식)를 달고, 삶의 이상이나 계획을 짧게 표현한 사목 표어나 잠언을 새겨 넣는 것이 관례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주교 문장에 ‘Cooperatores Veritatis’(진리의 협력자)라는 말을 주교 사목 표어로 골랐었다. 이는 여전히 그의 열망이며 계획이지만, 교황 문장에는 쓰지 않았다. 최근 수세기 동안 교황 문장의 공통된 전통에 따른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교황 문장에는 사목 표어를 쓰지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요한 바오로 2세가 자신의 사목 표어 ‘Totus Tuus’(온전히 당신의 것)를 자주 인용한 것을 기억한다. 교황의 문장에 사목 표어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믿음과 바람과 사랑에서 기인하는 모든 이상에 전적으로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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