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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어무이 / 김진학

아름다운시

by 巡禮者 2010. 12. 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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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어무이 / 김진학

     


    밤이 길면 겨울도 깊었다
    고무신 놓인 댓돌엔 눈이 쌓여
    고무신인지 눈인지 구별이 안됐던 겨울밤
    화로 위 인두에선 어무이냄새가 났다

    젊은 군인의 소매를 끄는
    밤거리 여자의 강한 화장품냄새를 지나
    품위를 따지는 롯데백화점 VIP코너를
    하닐 없이 기웃거리다

     

    라면 한 개만 사먹게 천원만 달라는
    영등포 역사 앞의 취한 노숙자 손 위에
    오백 원짜리 동전 두어 개를 던지고

     

    지하도를 건너 만난

     

    오뎅이 풍덩풍덩한 포장마차에서

     

    어무이와 거친 손만 닮은 여자가 내주는
    20도의 소주가 36.5도의 체온과 만났다

     

    초저녁 겨울과 만났다
    여자가 국수틀을 돌린다
    반질반질한 국수틀 손잡이가
    재봉틀 손잡이를 닮았다

    겨울밤이 깊으면 재봉틀 소리도 길었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있는 자식을 보고


    “아저씨는 눈교?”

    어무이는 너무 낡아

     

    당신이 평생을 돌려

     

    고장이 밥 먹듯 하던

     

    재봉틀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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