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하라 사막에 있다면,
거기서 완전히 고립되어있다면
나는 사하라 사막 그 자체이다.
나의 일부가 그 전부이고,
그 전부가 나의 전부가 되는 것이다.
생명이 전무한 사막처럼 이 세상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도 나와 말을 나눌 사람이 없는 날은
나는 사하라 사막보다 더한
고독에 빠져있는 고립의 상태이다.
그러면서도 그 상황을 벗어날 수가 없다.
나를 놓지 않고 당기는 뭔가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가에 눌린 것처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그 상황을 아무리 누군가에게
설명을 해준다 한들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살아가는 세계,
내가 보는 세계는 만인이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나만의 영역도 있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상대를 다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한들, 그렇게 고독에 빠진 사람을 향해
마음을 열고,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설령 옳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그를 위해 순수하게 고개를 끄덕거려 수긍해 줄 때
나는 그를 위해 대단한 봉사를 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하라 같은
절대 고독의 상황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어려운 상황에서 인간은 자기만의 신앙을 찾는다.
기근으로 쓰러질 지경에 놓인 사람에게는 한 조각의 빵이,
목이 마라 죽어가는 사람에겐 시원한 물 한 방울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중인 사람에게는
위에서 내려주는 밧줄 하나가 신앙의 대상이 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달콤한 다른 말이나
조건도 의미가 없다. 그 충분조건을 제공할 때
그는 나의 사람으로 다가와 내 말을 들어주며,
나의 친구가 되거나 동지가 된다.
최복현 칼럼 -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