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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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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3. 8. 2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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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들은 누구인가?

 

비잔틱 벽화 '동방박사들의 경배' 

 

영어 성경에는 동방박사를 Wise men from the East(동쪽에서 온 현자들)라고 되어 있다. 라틴어의 Magi(마기: 메이자이)를 Wise men(현자: 지혜자)으로 번역한 것이다. 라틴어인 Magi는 Magos의 복수형이다. Magos는 고대 페르시아어인 Magus에서 비롯한 단어로서(영어의 Magic은 Magi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고대 점성술사를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를 의미했다. Magi는 옛 페르시아의 승족(僧族)을 말하기도 했다. 마치 유대족속에서 레위부족을 제사장부족이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Herodotus)는 동방박사(마기)를 옛 페르시아의 북동부에 있는 메데아(Medea)왕국의 신성한 계급의 사람들이라고 해석했다.

 

마기 족속은 페르시아에 사제(승려)들을 공급했다고 한다. 예레미아는 이들 마기족의 수장을 라브-마그(Rab-Mag)라고 불렀다. 글자그대로 승족의 수장이라는 뜻이다(예레미아 39: 3, 29:13). 라브-마그는 변방국의 왕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앗수르(Assyria)와 바벨론(Babylonia)이 멸망한 후에 마기 승족들은 페르시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페르시아의 키루스(Cyrus)왕이 마기 승족들을 모두 굴복시켰으며 그의 아들 캄비세스(Cambyses)는 한걸음 더 나가서 이들을 핍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마기 족속들은 옛 페르시아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자기들의 대표인 과마타(Guamata)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반란은 오래가지 못했다. 과마타는 암살당했고 다리우스(Darius)가 왕이 되었다. 이후 페르시아에서는 마기 족속들의 멸망을 축하하여 국경일로 삼았었다. 이 국경일을 마고포니아(Magophonia)라고 불렀다. 마기 족속은 비록 멸망했지만 그들이 남긴 종교적인 영향은 상당기간 계속되었다. 마기 족속은 예수가 탄생하던 시점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은 바로 페르시아의 마기족 유민들의 대표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방으로부터의 현명한 사람’을 동방박사라고 번역했다. 박사라고 하면 일단 대단히 학식이 많고 유능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메데의 귀족들. 페르시아의 박사들. 혹자는 이들이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동방박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상 성경에서는 마기(메이자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주로 마법사, 요술사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구약의 다니엘서 1: 20에는 마기를 박수와 술객(術客)으로 표현하였다. 박수라는 것은 남자 샤만, 특히 강신(降神)과 관련이 있는 무당을 일컫는 말이다. 다니엘 2: 27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지혜자, 술객, 박수, 점쟁이를 모두 일컫는 용어로 사용했다. 그 이후의 다니엘 5: 7에도 ‘술객과 갈대아(현재의 터키 지방)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 말하되...’라는 표현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갈대아 지방에는 술사와 점쟁이들이 많았으며 바벨론(현재의 이락)에도 지혜자(Wise men)가 많았다고 볼수 있다.

 

 한편, 신약에서도 마기라는 단어가 몇차례 나온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8: 9에는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서 마술(魔術)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라는 기록이 있다. 마술을 행하는 사람이 마고이 또는 마기였다. 사도행전 13장 6절에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라는 기록이 있다. 이 경우에 마고이 또는 마기는 거짓 선지자거나 마술사를 뜻했다. 역대의 유명한 신학자들인 성 유스틴(St Justin), 오리겐(Origen), 성 아우구스틴(St Augustine), 성 제롬(St Jerome) 등은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 마기(동방박사)를 지혜자, 마술사, 점성술사 등으로 해석하였으며 동방의 왕이나 위대한 성인으로 보지는 않았다.

 

예물을 가지고 찾아온 동방박사들 

 

 

나중에도 언급되겠지만 동방박사들을 왕으로 보는 견해도 상당하다. 이는 구약 이사야 60: 3, 시편 72: 10, 시편 68: 29의 말씀에 비유하여서이다. 기독교 초기에는 마태복음의 동방박사 이야기를 구약의 이사야와 시편의 말씀을 상고하여 왕들이 찾아 왔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동방박사를 왕이라고 보게 된 것은 콘스탄틴 황제 이후라고 보고 있다. 주후 5백년경에 시작된 이같은 견해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까지 계속되었다. 종교개혁 당시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와 영어로 번역하면서 Magi를 Wise men으로 번역함으로서 왕이라는 개념이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18세기 '동방박사의 경배' 책자 그림

 

 

코란에서는 마태복음에서와 같은 동방박사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하지만 예전부터 아라비아에서는 동방박사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 9세기경의 무슬림 백과사전 집필자인 알-탈바리(al-Talbari)는 마기들이 예수에게 예물을 드렸다는 얘기를 수록하였다. 알-탈바리는 이 이야기의 소스가 7세기의 작가인 와히브 빈 무나비(Wahib bin Munabbih)라고 밝혔다. 어떤 종교단체는 동방박사 에피소드에 대하여 대단히 비판적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동박박사들의 방문(공현)을 축하할 일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신명기 18:10-11과 레위기 19:26, 이사야 47: 13-14에 기록된 것을 내세우며 교회에서 점성술과 마술을 옹호하는 것을 비난했다. ‘여호와의 증인’은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별이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적인 헤롯에게 인도하였음을 지적하고 이로 인하여 무고한 어린이들이 비참하게 살육되었다고 주장했다.

 

천사의 지시에 따라 애굽으로 피난가는 성모와 아기 예수. 그 때에도 별이 나타나 인도 했는지는 미확인. 하지만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커다란 별이 그려져 있다.


 

 

동방박사들의 일정 / 동방박사들의 루트

 

제임스 티소트의 '동방박사들의 여행'. 수행원이 상당히 많았다.

 

동방박사들은 어떤 루트를 따라 베들레헴에 왔을까? 아마도 시리아(수리아)와 유브라데스강의 사이에 있는 시리아사막을 건너 할레브(Haleb 또는 Aleppo)나 투드모르(Tudmor)에 도착한 후 계속하여 다메섹(Damascus: 다마스커스)을 거쳐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오늘날 이슬람 순례자의 길이라고 하는 메카 루트를 따라 내려오다가 갈릴리 호수를 지나 여리고성 쪽으로 내려오지 않았을까 보고 있다. 아무튼 성경에서 지적한 ‘동방’이라는 곳이 어딘지에 대한 설명이 없음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복음서의 저자들이 조금만 신경을 써서 동방박사들이 어느 곳에서 온 사람들이라고만 적어 놓았어도 성경을 해석하는데 훨씬 쉬었을 것인데 그렇지 못하여 아쉬움이 있다. 

 

동방이 어디를 의미한다는 추측은 많이 있었다. 성막시무스와 데오도투스(Theodotus)는 바빌론이라고 주장했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와 성시릴(St Cyril)은 페르시아라고 했으며 성유스틴(St Justin)과 그노시스교의 경전과 성에피파니우스(St Epiphanius)는 아라비아라고 주장했다. 물론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가하면 중국의 기독교 학자들은 동방박사 중의 한 사람이 중국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무어(Christopher Moore)가 쓴 ‘양’(Lamb)이라는 책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언제 왔었나?

 

 

 

동방박사들은 언제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을까? 우리는 보통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바로 그날에 동방박사들이 찾아와 경배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림에도 보면 동방박사들이 목자들과 함께 아기 예수와 마리아에게 경배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다. 과연 그랬을까? 성경의 몇 구절을 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것 같다. 우선 누가복음 2: 21-22을 보자. ‘21 할례할 팔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지 8일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는 것이 분명하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적어도 이틀거리이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후 그 다음날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리는 만무하다. 요셉도 본래의 출장목적인 호적을 마쳐야 하므로 최소한 하루는 더 베들레헴에 머물러야 했을 것이다. 이렇듯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일이 급한데 언제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와서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다는 것인가?

 

 

신학자들은 동방박사들이 예수의 할례 이후에 찾아 왔다고 보고 있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루살렘에서의 할례 이후에 베들레헴으로 간 것이 아니라 갈릴리로 갔을 것이다. 동방박사들이 경배를 했다면 베들레헴이 아니라 갈릴리에서였을 것이다. 한편, 동방박사들이 떠나자마자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헤롯의 박해를 피하여 애급으로 피난하라고 했을 것이다. 마태복음 2: 13에 보면 ‘그들이(동방박사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급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보면 알수 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와 마리아에게 경배한 후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헤롯이 동방박사들에게 속은줄 알고 대단히 화가 나서 베들레헴과 그 부근에 있는 사내아이들을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이로 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라고 명령하기 전에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였음은 분명한 일이다.

 

'동방박사의 경배'.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품

 

 

그런데 문제가 있다. 누가복음 2: 39에 보면 예수에게 성결의식을 거행한 후에 갈릴리로 돌아갔다고 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성결의식만 마치고 금방 갈릴리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곳에서 며칠 더 묵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누가복음에는 그 유명한 동방박사들이 경배했다는 얘기도 없고 애급으로 피난했다는 얘기도 없으며 헤롯 때문에 무고한 아기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얘기도 없고 성가족이 상당 기간 동안 애급에 피난 갔다가 갈릴리로 돌아왔다는 얘기도 없다. 누가복음에는 그저 예수께서 태어나신 일과 8일후에 할례를 받으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갈릴리로 돌아갔다는 얘기로 연결될 뿐이다. 나사렛에 머문 기간은 상당히 짧다. 그 이후에 성가족은 아마도 베들레헴으로 돌아가 머물렀을 것이다. 베들레헴에 다시 돌아갔을 때 동방박사들이 찾아 왔을 것이다. 문제는 왜 베들레헴으로 돌아갔느냐는 것이다. 다시 베들레헴으로 갔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산후에 몸도 성하지 아니한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리 저리 다녔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동방박사들이 찾아온 것은 헤롯왕 시절이었다. 헤롯은 여리고에서 주전 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므로 동방박사들이 찾아온 시기는 적어도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4년 이전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헤롯을 찾아 온 것은 여리고가 아니라 예루살렘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그 시기는 주전 4년 초이거나 주전 5년 말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이 주후 4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역사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께서 헤롯이 죽기 8년전에 태어났다는 것이 신빙성이 있게 된다. 아무튼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온 시점이 아기 예수가 탄생한지 적어도 1년 이상 지난 후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다. 헤롯은 박사들로부터 별이 나타난 시기에 대하여 물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을 찾아온 때부터 최대 2년 전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당장 명령을 내려서 베들레헴과 그 인근지역에 있는 남자 아이 중 두 살 미만을 모두 찾아 죽이라고 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했던 헤롯 대왕(주전 72-주전 4) 

 

 

학자들은 헤롯이 두 살 아래의 남자 아이들을 참혹하게 살육한 사실에 비추어서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 예루살렘에 온 시점을 예수께서 태어 난지 2년후 정도라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동방박사들은 헤롯에게 별이 2년 전에 나타났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동방박사들이 헤롯에게 별이 나타난 때를 속여서 말했을 수도 있다. 중세의 그림들을 보면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할 때에 아기 예수는 말구유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기 예수가 태어 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방문했다는 의미이다.

 

물론 그림은 다만 그림일뿐이기 때문에 내용이 정확치 않을수 있지만 그래도 큰 교회에 거는 그림인데 사실과 너무 동떨어진 내용은 그릴 수는 없을 것이므로 어느 정도 근거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이 무슨 이유로 별이 나타난 시점을 거짓으로 말했겠느냐는 의문을 가질수 있다. 헤롯의 포악한 의중을 간파하고서 그렇게 말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물론 하나의 가설에 불과한 일이다. 그보다도 더한 궁금증은 따로 있다. 동방박사들이 어디서부터 여행을 시작했는지 확실히 모르지만 아무튼 페르시아 지역이라고 한다면 그곳에서 예루살렘까지 오는데 2년이나 걸렸냐는 의문이다. 뙤약볕을 피해서 천천히 걸어온다고 해도 두어 달이면 충분한 거리이기 때문이다. 동방에서 '왕중의 왕'에게 경배하기 위해 찾아나선 박사들은 원래 네 명인데(넷이라는 숫자는 완성을 의미함) 그중 하나가 도중에 길을 잃어 낙오되는 바람에 셋만 오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이것은 글자그대로 전설일 뿐이다.

 

'동방박사들의 경배' Leonhard Scherhauff 작품 

 

 

페르시아로부터 예루살렘까지는 거리가 대략 1,000마일로부터 1,200마일에 이른다. 이만한 거리라면 낙타를 타고 슬슬 쉬어가면서 최소 3개월에서 최대 1년이 걸린다. 실제 여행 기간은 그렇다고 해도 준비하는데 또 한 달 정도는 걸릴 것이다. 그러므로 동방박사들이 별이 나타난 때로부터 1년 이내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가톨릭교회는 예수공현(公顯)의 축일을 1월 6일로 지키고 있다.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이 예수의 나심을 치하하기 위해 찾아와 경배한 날을 말한다. 이는 크리스마스(12월 25일)로부터 13일 후가 된다. 그러나 이같은 날짜 계산은 교회 전례(典禮)상의 계산일뿐이며 역사적인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4세기에 동방교회들은 예수 탄생 축일을 1월 6일로 지키기 시작했다. 동방교회들은 동방박사들의 경배와 예수의 세례도 이날 함께 축하한다. 기독교가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크리소스톰(Chrysostom) 시기에 안디옥교회에서부터였다. 그후 예루살렘교회와 알렉산드리아교회가 안디옥교회의 관례를 따라 12월 25일로 성탄절을 지키기 시작함으로서 세계적인 축일로 정착되었다.

 

 예수공현축일을 처음 시작한 터키 안디옥가톨릭교회의 '동방박사들의 경배' 스테인드 글라스

 

 

별 이야기

 

지오토 디 본도네의 '동방박사들의 경배'에서 베들레헴의 별이 지붕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왔으며 다시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갈 때에도 별이 나타나 인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별을 ‘베들레헴의 별’(Star of Bethlehem)이라고 부른다. 정말 별이 인도 했을까? 초자연적인 스토리를 기피하는 개신교들, 그리고 성서의 내용을 과학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자 하는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하였다.

 

 

-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별이라는것은 아마도 혜성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밝은 빛을 내는 별이란 있을수 없다. 그러나 2천년전 당시 혜성이 나타났다는 기록은 없다.

- 동방박사들이 보았다는 별은 아마도 목성과 토성이 겹쳐서 보인 것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목성과 금성이 겹쳐서 보인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두 별이 합쳐서 더 밝은 빛을 냈다.

- 동방박사들은 새로 생성된 별(Stella nova)을 보았을 것이다. 노바와 같은 별은 새로 생성될 때에 당분간 환한 빛을 내다가 차츰 빛이 사라진다.

 

 

이러한 가설들이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생각하면 모두 '해당무'이다. 마태복음 2: 9에는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라는 기록이 있다. 어떠한 혜성이든지, 또는 목성이든지 금성이든지 서로 겹쳐서 빛을 내던지, 또는 새로운 별이 생성되어 환한 빛을 내던지 어쨌든 간에 성경에 기록된 대로 문득 나타나 갈 길을 인도하였으며 박사들이 목적지에 도착하자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늘에 있는 항성의 위치는 매일 1도 정도씩 달라진다. 하늘의 있는 어떤 별도 박사들의 길을 인도해줄 정도로 빨리 위치를 변경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항성이나 혜성이든지 환하게 빛을 내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는 없다. 혜성이라고 하면 멀리 사라지면서 빛이 희미해질 뿐이다. 기적이라는 것도 생각할수 있다. 하늘에 갑자기 밝은 별이 나타났다가 움직인후 사라진다는 것은 기적일 수밖에 없다. 비슷한 기적은 구약시대에 있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갈 때에 밤에 불기둥이 나타나 앞을 인도했다는 내용이다(출애굽기 13: 21). 하지만 마태복음의 설명은 불기둥이 아니라 별이다. 누가복음 2: 9의 말씀도 눈여겨 볼 내용이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두루 비추매’라는 구절이다. ‘주의 영광’이라는 말은 영어로 Brightness of God(하나님의 밝은 빛)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의 영광이 두루 비추다'라는 말은 '크로 밝은 빛이 두루 비추다'라는 말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사울의 회심을 설명하는 9: 3에도 비슷한 밝음이 설명되어 있다. 기록된바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이다. 그러므로 동방박사들에게 타나났던 밝은 별은 과학적으로는 설명할수 없는 하늘의 밝은 빛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방법이 없다.

 

장 드 보스(Jean de Beauce)의 '동방박사들의 경배"에도 베들레헴의 별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선물 이야기: 황금과 유향과 몰약

 

프랑스 샤트레 성당의 '동방박사의 경배' 조각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생일선물.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신(神)으로 간주하여 예물을 봉헌했다. 선물이야기를 하기 전에 동방박사들의 행동부터 살펴보자. 이들은 ‘엎드려 경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어로는 Falling down, Kneeling, Bowing이라고 표현했다. 엎드리고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경배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제스추어는 나중에 기독교의 전례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통적으로 유태인이나 로마인은 무릎을 꿇고 부복하는 일이 없었다.

 

그것은 노예나 죄수들만이 할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엎드려 부복하는 것은 자존심과 위엄의 상실을 의미했다. 유태교에서는 간혹 부복(俯伏)하는 일이 있지만 이는 여호와께 공현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므로 함부로 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페르시아에서는 최대의 존경을 의미했다. 특히 왕에게 경배할 때에는 부복하였다. 아무튼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무릎 꿇고 경배했다는 전통으로부터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미사 시간에 무릎을 꿇는 관습이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신부가 서품을 받을 때에 특히 그러하다. 온 몸을 바닥에 부복하여 경배하는 경우는 기독교에서는 사제들이 처음 서품을 받을 때에 그렇게 하며 동방교회에서는 비교적 자주 그런 행동을 한다. 개신교에서는 세례 받을 때에 무릎을 꿇는다.

 

가톨릭교회에서의 신부 서품(Ordination)

 

 

동방박사들은 황금과 유향(乳香: Frankincense)과 몰약(沒藥: Myrrh)을 드렸다. 하지만 어떤 동방박사가 어떤 물건을 증정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물건들은 예멘에서 쉽게 발견할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혹시 동방박사들이 예멘에서 오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예물 중에서 황금의 목적은 분명하다. 가난에서 해방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다른 선물의 용처는 분명치 않다. 어떤 사람들은 유향이 여호와에 대한 제사를 뜻하며 몰약은 예수의 죽음에 대비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세웠지만 근거는 없다. 어떤 학자는 그저 여러 가지 선물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위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라고 적었을 뿐이라는 의견을 내세웠다. 어떤 학자는 동방박사 세 사람이 각각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대륙을 대표한다는 주장을 하고 이들이 가져온 선물들은 각 대륙과 민족을 상징하는 물건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신빙성이 있는 주장은 아니다.

 

예물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1. 황금, 유향, 몰약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왕에게 바치는 일반적인 선물 품목이다. 황금은 귀중품으로, 유향은 향료로, 몰약은 상처에 바르거나 종교의식을 행할 때에 바르는 기름이다. 몰약은 죽은 자의 몸에 바르기도 한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왕으로 간주하여 왕에게 바치는 일반 예물인 황금, 유향, 몰약을 드렸다.

2. 세 가지 예물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황금은 지상에서의 왕권을 의미하며 유향은 신과 교통할수 있는 제사장을 상징하고 몰약은 죽음을 의미한다. 어떤 경우에는 보다 일반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황금은 덕성을, 유향은 기도를, 몰약은 고통 받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이 값비싼 귀중품이 아니라 의약품이라고 주장했다.

 

오만에서 만든 몰약(고체형). 주로 코미포라 미라(Comiphoira Myrrah)라는 나무의 수액으로 만든다.

 

 

실제로 몰약은 15세기까지 죽은 자의 몸에 바르는 기름으로, 장례식이나 화장할 때에 참회를 상징하는 기름으로 사용되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몰약을 ‘성유’(聖油)라고 하여 전통적으로 성만찬이나 세례와 같은 중요한 의식에서 사용하였다. 동방정교회에서는 몰약과 유향을 혼합하여 향을 냈다. 요즘은 몰약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보통 향을 피운다. 몰약을 바르는 성찬의식을 ‘몰약 전수’(Receiving the Myrrh)이라고 부른다. 예물 증정에 대한 에피소드는 이사야 60: 6과 시편 72: 10-11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황금과 유향과 몰약과 같은 물건은 변방의 왕들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바치는 조공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방박사들도 단순한 점성술사들이 아니라 왕과 같은 귀한 지위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가하면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347-407)과 같은 신학자는 동방박사들의 예물이 아기 예수에게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드린 것이라는 상징성을 주장하였다. 이는 유태인들이 여호와에게 양이나 송아지를 제물로 드리는 것과 비교할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한편, 마리아와 요셉이 동방박사들로부터 귀중한 예물을 받은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몇가지 전설은 생겨났다. 황금은 나중에 두 도적에게 빼앗겼는데 이들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도적이라는 얘기다. 또 다른 전설은 예물들을 잘 보관하다가 예수께서 공생을 시작하실 때에 제자 중에 재무담당인 가롯 유다에게 맡겼으나 유다가 제멋대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성크리소스톰  비잔틴 조각

 

 

그리스 아토스(Athos)산의 성바오로수도원에는 15세기에 만들었다는 황금상자가 있다. 이 안에 동방박사들이 가져온 예물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 황금상자는 15세기에 세르비아왕의 공주인 마라 브란코비츠(Mara Brankovic)가 기증한 것으로 그는 오토만의 술탄인 무라트(Murat)2세의 부인이며 콘스탄티노플을 점복한 메메트(Mehmet: 마호멧)2세의 대모였다고 한다. 황금상자는 4세기부터 콘스탄티노플 궁전에 전시되어 있던 유물이라고 한다. 1999년 9월 9일 아테네 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리스 정부는 이 황금상자를 빌려와 신앙을 공고히 하는 방편으로 그리고 지진희생자를 위해 모금하는 방편으로 사용했었다. 

 

그리스의 아토스산에 있는 성바오로수도원. 아토스산에는 20여개의 수도원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수도원에 동방박사들이 가져온 황금, 유향, 몰약의 예물을 보관했었다고 한다.

 

사족: 옛날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몰약을 소합향(蘇合香)이라고 불렀다. 영어로는 Storax이다. 소합향은 소합향 나무의 수지를 채취한 것이다. 옛날에는 이란을 소합국이라고 불렀다. 이란에서 주로 소합향이 채취되었기 때문이었다. 소합향은 황갈색의 액체로 성경에서는 거룩한 향료라는 뜻에서 몰약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동방박사들이 몰약을 가지고 왔으므로 이란에서 오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한다. 이란은 유대 땅의 바로 동쪽이다.

 

 

동방박사들은 어떤 길로 돌아갔나?

 

 

마태복음 2장 12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동방박사들은 헤롯에게 돌아가지 않고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되어 있다. 만일 처음에 왔던 루트대로라면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을 거쳐 여리고를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길로 갔다고 하면, 동방박사들의 귀국 루트는 예루살렘과 여리고를 통과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이들은 남쪽의 브알세바(Beersheba)를 우회한후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모압 지방에 있는 메카 루트라고 하는 대로로 갔을 것이며 사해 동편으로 가다가 페르시아로 갔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훗날 동방박사들은 도마(Thomas)로부터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으며 동방에 기독교를 뿌리가 내리도록 하는데에 헌신했다고 한다. 그때 도마는 인도로 전도여행을 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도마가 세례를 주었다는 이야기는 6세기의 어떤 아리안(Arian) 작가가 쓴 Opus imperfectum in Matthaeum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성크리소스톰(St Chrysostom)은 경외서인 셋서(Book of Seth)를 저술코자 초안을 완성했는데 그 중에 동방박사의 전설도 포함했다고 한다.

 

 

독일 쾰른대성당. 이곳에 동방박사의 성골들이 보관되어 있다.

 

 

동방박사들의 유해

독일 라인강변의 쾰른에 있는 대성당(Koelndom)에는 동방박사들의 유해라는 것이 보관되어 있다. 이 유해는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한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성헬레나(St Helena)가 페르시아에서(또는 성지에서) 발굴한 것으로 콘스탄티노플에 가져와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사원에 보관하였으나 그후 5세기에 밀라노 대성당에 이관되었다가 1163-64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레데릭1세에 의해 쾰른대성당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밀라노에서는 지금도 동방박사들의 유골을 보관했었다는 기념으로 매년 1월 6일 축제행렬을 벌이고 있다. 이날은 동방박사 공현축일이기도 하다. 14세기의 성직자인 힐데샤임의 존(John of Hildesheim)은 Historia Trium Regum(세 왕의 역사)라는 저서에서 성헬레나가 동방박사들의 유해를 비롯한 다른 성물들을 발견했다는 얘기를 싣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헬레나 모후는 팔레스타인에서 성지로 가는 중에 가스파르, 멜히오르, 발타자르의 유해를 발견한 후 이들을 상자 하나에 넣고 상자를 아름답게 장식한후 콘스탄티노플로 가져왔다. 그리고 성소피아 사원에 안치하였다.” 사족: 쾰른대성당에는 세례 요한의 머리라는 것도 보관되어 있다.

 

 

 

동방박사들의 유해를 발견했다는 성헬레나와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그린 정교회 이콘(성화). 동방정교회의 십자가를 함께 들고 있다.

 

 

동방박사들의 무덤 

 

동방견문록으로 유명한 마르코 폴로는 1270년에 테헤란 남쪽 사베(Saveh)라는 곳에서 동방박사 세 사람의 무덤을 보았다고 기록했다. 마르코 폴로는 그곳에 세 개의 각각 웅장하고 아름다운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무덤 위쪽에는 넓은 장방형 건물이 있는데 이곳에 동방박사 세 사람의 시신들이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다고 적었다. 그는 시신들의 머리칼과 수염이 아직도 생전처럼 남아 있었다고 기술했다. 그러면 성헬레나가 성지에서 발견했다는 동방박사들의 유해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테헤란은 오래동안 페르시아-이란의 수도였다. 사진은 테레한의 골레스탄 궁전. 테레한의 인근 사베라는 곳에 동방박사 세사람의 무덤이라는 것이 있다.

 

 

동방박사의 종교적 의미

 

 

동방박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으로 경배한 종교적인 인물들이었다. 물론 그 전에 들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이 천사들의 전하는 말을 듣고 마굿간에 와서 아기 예수를 보고 경배했다고 되어 있지만 목자들이 동방박사들보다 먼저 와서 경배했는지 또는 나중에 와서 경배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더루나 마태복음에는 목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며 누가복음에만 잠시 등장한다. 어쨌든 동방박사들이야말로 예수의 탄생을 공식적으로 경배하고 축하한 첫 인물들이므로 교회에서는 이 사실을 중히 여기고 있다. 예수께서 만방의 사람들로부터 유태인의 왕, 즉 메시아로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고 경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서방교회(가톨릭)에서는 1월 6일을 공현축일로 지키고 있다. 동방정교회는 12월 25일을 공현축일로 지키고 있다. 기독교 예술에서는 동방박사들의 방문이 The Adoration of the Magi라는 타이틀로 주요 소재가 되고 있다.

 

 동방박사들의 유해를 처음 보관했었다는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사원


 

 

동방박사의 공현 축하도 가지가지

  

동방박사들이 과연 예수님의 태어나신 날에 맞추어서 도착했는지에 대하여는 논란이 많다. 그러나 성경의 마태복음만 읽어보면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가 탄생한 바로 그 밤에 도착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먼저 헤롯을 만난 동방박사들은 마치 아기 예수가 1-2년전 쯤에 태어났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즉,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나타난 것이 1-2년전이며 자기들은 그 별의 인도를 받아 이제야 도착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방박사들이 헤롯을 만난 시점에는 예수가 이미 두살이 넘었다는 계산이 된다. 그리고 반드시 베들레헴에 있었다는 근거도 없다. 오히려 두 살 이라고 하면 애굽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애굽의 어디에서 지냈나? 성경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없다. 그저 애굽으로 피난을 가라고 하길래 그 밤으로 떠났다고만 적혀 있다. 베들레헴에서 애굽까지는 머나먼 길이다. 시나이 사막을 지나야 하고 홍해를 건너야 한다. 그 옛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왔던 그 길을 다시 가야 하는 것이다. 아기 예수와 산후조리도 하지 못한 마리아가 어떻게 그런 험난한 곳을 지나서 애굽으로 갈수 있었을까? 돈도 없었을 텐데!

 

기독교(로마 가톨릭)에서는 전통적으로 동방박사의 공현축일을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이 지난 1월 6일에 지킨다. 특히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그러하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가톨릭 국가는 방대하여서 유럽의 스페인은 물론이지만 중남미의 거의 모든 국가가 이에 속한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는 공현일을 Los Reyes Magos de Oriente(동방의 현자 왕의 날), 또는 Los Tres Reyes Magos(세명의 현자 왕의 날)이라고 한다. 이날 하루 전날 밤에는 아이들이 자기가 받고 싶은 선물을 편지에 써놓는 관습이 있다. 스페인에서는 동방박사가 세 사람이며 각자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의 대륙들을 대표한다고 믿고 있다. 즉, 카스파르는 유럽, 멜히오르(또는 멜키오르)는 아시아, 발타자르는 아프리카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동방박사들은 낙타를 타고 각 어린이들의 집을 방문한다고 한다. 마치 산타클로스가 성탄전야에 순록을 타고 각 집을 방문하여 선물을 놓고 간다는 것과 같다. 어떤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동방박사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음료수를 준비해 놓는다. 또한 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 왔을 낙타를 위해서도 먹고 마실 것을 준비해 놓는다. 낙타로서는 이날 밤 만이 마음 놓고 음식물을 먹고 마실수 있는 고마운 기회이다. 공현축일 전야에는 실제로 낙타가 각 어린이를 방문하지 않으므로 준비해 놓은 음식물은 동방박사로 분장한 사람들이 수거해서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전달한다.

 

스페인에서의 공현축일 전야의 행사. 세명의 동방박사(왕)들이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약속하고 있다.

 

 

스페인의 어떤 도시에서는 공현축일 전야에 카발가타스(Cabalgatas)라는 행사가 마련된다. 왕들과 종자(하인)들이 퍼레이드를 하며 길가에 서 있는 어이들에게 사탕같은 것을 던져주는 행사이다. 남미의 여러 도시에서도 그런 행사가 벌어진다. 스페인의 알코이(Alcoi)라는 도시에서 거행되는 공현축일 퍼레이드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공현축일 행사라고 한다. 왕(동방박사)과 하인들로 분장한 어른들이 길가에 줄지어 서있는 아이들에게 직접 선물을 나누어 준다. 중부 유럽 즉,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등지에서는 집집마다 문지방에 새해의 축복을 비는 문구를 적어 놓는 관습이 있다. 우리식으로 보면 입춘대길 또는 가화만사성과 같은 글을 대문에 붙여 놓는 것과 같다. 중부 유럽에서는 CMB라는 글자를 적어서 붙여놓는다.

 

그런데 만일 2009년이면 20-CMB-09라고 적는다. CMB는 동방박사 세 사람의 이니셜인 Caspar의 C, Melchior의 M, Balthasar의 B를 말한다. CMB에는 또 다른 의미도 있다. Christus Mansionem Benedicat라는 말의 첫 글자이다. 그리스도가 이 집을 축복하소서(Christ bless this house)라는 뜻이다. 독일의 가톨릭 신봉 지역과 오스트리아에서는 공현축일 전야에 집집마다 어린이를 찾아다니는 동방박사 일행을 슈테른징거(Sternsinger: Star singer)라고 부른다. 마치 미국이나 영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성탄전야에 새벽송을 도는 것과 같다. 슈테른징거들은 동방박사처럼 분장하고 커다란 별을 들고 다니며 모금을 한다. 자선에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오스트리아의 슈테른징거(Sternsinger) 공현축일 전야에 집집마다 돌며 모금을 한다. 한 아이는 큰 별을 들고 있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전통 가톨릭 가정에서는 공현축일을 위한 특별 빵을 마련하여 나누어 먹는 관습이 있다. 이 빵을 Roscon de Reyes라고 부른다(실은 오븐에 굽는 빵이 아니라 케이크이다). 케이크 안에는 조그만 아기 예수 인형과 강낭콩과 같은 콩을 한 개 몰래 박아 넣는다. 케이크를 잘라 나누어 먹을 때 아기 예수의 인형을 받은 사람은 종이로 만든 화려한 왕관을 선물로 받는다. 그 사람은 축일 내내 그 왕관을 쓰고 자랑삼아 다닌다. 그리고 콩을 받은 사람은 케이크를 사온 사람에게 케이크 값을 치룬다.

 

미국 뉴올리언스 지방에서 예수공현축일에 먹는 킹 케이크 . 와, 정말 맛있겠다.

 

멕시코에서는 도넛처럼 생긴 동그란 케이크를 먹는다. 이를 Rosca de Reyes라고 부른다. 케이크 안에는 역시 아주 작은 아기 예수의 인형을 숨겨 놓는다. 누구든지 아기 예수의 인형을 받은 사람은 2월 2일의 칸델라리아(Candelaria)축제 때에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타말리(Tamales)를 사서 나누어주어야 한다. 타말리는 옥수수 가루, 다진 고기, 고추로 만드는 멕시코 전통 음식이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스에서는 멕시코의 도넛처럼 생긴 케이크를 나누어 먹는 관습이 있다. 이를 킹 케이크(King Cake)라고 부른다. 킹 케이크는 공현축일 전날부터 부활절 직전의 사육제인 마르디 그라스(Mardi Gras)까지 아무 때나 먹을수 있다. 킹 케이크 속에는 프랑스에서처럼 아주 작은 아기예수 인형을 넣어 둔다. 요즘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아기예수 인형을 케이크 안에 숨겨두지 않고 케이크 초처럼 별도로 포장해서 판다. 케이크 속에 숨겨 넣었더니 모르고 삼키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먹는 케이크가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보통 크리스마스에 제과점에서 생일 케이크를 사서 나누어 먹는다.

 

 로스콘 드 로이예 케이크(로스카 데 레이예스)

 

 

 

예술세계에서의 동방박사

 

 수많은 화가들이 Adoration of the Magi(동방박사들의 경배), The Journey of the Magi(별을 따라가는 동방박사들) 또는 Magi before Herod(헤롯 앞에 선 동방박사들)라는 주제로 작품을 남겼다. 예를 들면 프라 안젤리코(안젤리코 신부)의 ‘동방박사의 경배’이다. 그런 작품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소개할수 없음을  생각하며 다만, 아주 특별한 작품이 있어서 시간을 내어 소개코자 한다. 오스트리아 화가인 고트프리트 헬른봐인(Gottfried Helnwein)이 1996년에 제작한 Epiphany I: Adoration of the Magi(공현 1: 동방박사의 경배)라는 작품이다. 히틀러의 제3제국과 오스트리아 및 독일 교회와의 연관성을 표현코자 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마돈나(성모)를 순수 아리안 여인으로 묘사했으며 동방박사들을 나치 친위대 장교들로 표현했고 아기 예수는 히틀러와 비슷하게 그렸다. 많은 논란을 빚은 작품이다.

  

오스트리아 화가 고트프리트 헬른봐인의 '동방박사의 경배'(1966). 아기 예수를 어린 히틀러로 표현했고 마리아는 유태여인이 아닌 아리안인으로, 동박박사들은 나치의 친위대 장교들로 표현했다.

 

지안 카를로 메노티(Gian Carlo Menotti)의 오페라 중에 Amal and the Night Visitors(아말과 밤에 찾아온 손님)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에서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공연되는 오페라이다. 아기 예수를 찾아가던 동방박사들이 아말이라는 불구 소년의 집에서 하루밤 머물고 가는 사이에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내용이다. 도노반(Donovan)의 Reef(산호초)라는 영화에서는 태평양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크리스마스 연극이 공연된다. 연극에 출연하는 동방박사들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폴리네시 왕, 아메리카 왕, 중국 왕이 등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챨톤 헤스턴이 주연한 왕년의 명화 Ben-Hur(벤 허)에서는 동방박사 중의 한 사람인 발타자르가 등장한다. 발타자르는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를 만나 경배를 드린후 고국으로 돌아가다가 팔레스타인에서 무려 30년을 머물러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발타자르는 팔레스타인에서 장성한 예수가 왕으로서 억압받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T.S. 엘리오트의 시 The Journey of the Magi(동방박사들의 여행: 1927)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예고하는 내용이다. 티모시 더들리-스미스(Timothy Dudley-Smith)의 시 Visit of the Wise Men(현자들의 방문)도 엘리옷의 시의 내용과 비슷하다. 크리스마스 캐롤에서는 동방박사를 왕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We The Three Kings(동방박사 세 사람) 등이다.

 

메노티의 오페라 '아말과 밤에 찾아온 손님'에서 동방박사 세 사람이 아말의 집에서 하루 밤을 머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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