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선종…향년 95세

주교회의 소식

by 巡禮者 2023. 1. 3. 11:15

본문

생전 자진사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선종…향년 95세(종합)

 

제265대 교황으로 8년간 재임하다가 2013년 물러나…자진사임 598년만

'정통교리 강조' 보수주의 신학자…즉위 미사서 김수환 추기경이 대표로 순명 서약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31일(현지시간) 95세로 선종했다고 교황청이 발표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이날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오전 9시 34분에 바티칸에서 돌아가셨다고 슬픔 속에 알린다"고 밝혔다.

 

교황청은 신자들이 작별 인사를 전할 수 있도록 베네딕토 16세의 시신이 내년 1월 2일부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공개 안치될 것이라고 전했다.

독일 출신으로 본명이 요제프 라칭거인 베네딕토 16세는 보수적 신학자로서 가톨릭 신앙의 정통성을 수호해온 대표적 인물이다.

1977년 뮌헨 대교구 교구장 추기경이 된 뒤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발탁해 바티칸에 입성했다.

 

이후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서 제265대 교황직에 올랐다.

교황 취임 당시 나이가 78세로 클레멘스 12세 이후 275년 만의 최고령 교황이자, 역사상 여덟 번째 독일인 교황으로 주목받았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선종

(서울=연합뉴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31일(현지시간) 95세로 선종했다고 교황청이 발표했다.
교황청 대변인은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오전 9시 34분에 바티칸에서 돌아가셨다고 슬픔 속에 알린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2005년 4월 28일 바티칸에서 열렸던 교황 베네딕토 16세 즉위미사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이 베네딕토 16세를 예방하는 모습. 2022.12.31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즉위 미사에는 온 세상 모든 백성을 상징하는 12명이 교황에게 순명을 서약했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이 추기경단 대표로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게 순명 서약을 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정통 교리의 수호자'로서 세속주의에 맞서 가톨릭의 전통과 교리를 지키는 데 힘썼다.

타협을 거부하는 강고한 보수적 발언과 행보로 인해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와 비교해 대중적인 인기는 적었다.

 

베네딕토 16세는 즉위 이후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 문제로 더는 베드로의 직무를 수행할 힘이 없다며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의 일로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

(바티칸 로이터=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28일(현지시간)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일반 알현 말미에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매우 아프다고 말하며 그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베네딕토 16세는 2013년 건강상의 이유로 교황직에서 사임했다. 사진은 2016년 6월 28일 베네딕토 16세(오른쪽)가 바티칸에서 열린 그의 사제 서품 65주년 기념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사하는 모습. [자료사진] 2022.12.28 jason3669@yna.co.kr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을 내려놓고서 스스로 '명예 교황'이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후임 교황에게 무조건 순명(順命)하겠다고 언약한 바 있다.

 

그는 사임 이후 모국인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바티칸시국 내 한 수도원에서 지내며 연구 및 저술 활동에 몰두해왔다.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야기는 2019년 '두 교황'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베네딕토 16세는 재임 기간이었던 2006년 2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는 등 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

 

2006년 11월에는 평화로운 수단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촉구했고, 2007년 2월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 접견 후에는 친서를 통해 남북 이산가족 재결합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09년 7월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 "과거 분단국 출신인 베네딕토 16세가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을 방문해줄 것을 희망한다"며 방한을 초청하기도 했다.

                                                                [그래픽]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발자취

(서울=연합뉴스) 반종빈 기자 bjbin@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changyong@yna.co.kr

출처 :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2/12/31 20:00 송고

============================================================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누구…'생전 사임' 택한 보수파(종합)

 

[바티칸시티=AP/뉴시스]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15년 12월8일 바티칸시티의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성년(Holy Year)의 시작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2022.1.21

 

 

지난 2013년 2월 11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스스로 교황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폭탄선언이었다.
 
86세 생일을 두 달 앞둔 베네딕토 16세는 11일 추기경회의에 제출한 성명을 통해 "하느님 앞에서 나의 양심을 거듭 성찰한 결과 고령으로 더는 교황의 직무를 적절히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확신에 이르렀다"면서 "완전한 자의에 의해 추기경단이 나에게 부여한 성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직의 포기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또 "나를 도와준 분들의 사랑과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나의 부족함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앞으로의 삶을 기도에 전념해 신에게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7일 후인 28일 베네딕토 16세는 홀연히 교황직을 물러났다. 퇴임 후 그는 '명예 교황'(emeritus pope)에 추대되었다. 종신직인 교황이 생전에 사임을 한 사례는 1294년 첼레스티노 5세 이후 719년 만의 일이었다. 2000여 년 가톨릭 역사상 스스로 교황 직을 포기한 사례는 5명에 불과하다.
 
가톨릭계에선 보수파로 분류되던 베네딕토 16세는 7년 10개월에 걸친 교황 재임 기간 동안 기독교 신앙의 쇠퇴와 세속화를 막기 위해 유럽이 먼저 기본적인 기독교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제265대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의 본명은 요제프 알로이지우스 라칭거(Joseph Aloisius Ratzinger)이다. 요제프 알로이지우스 라칭거는 1927년 4월 16일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바이에른 주 마르크틀 암 인에서 경찰관인 요제프 라칭거와 식당 종업원이던 마리아 라칭거의 2남 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소년 라칭거의 가정은 독실한 성 가정이었다. 부모님은 모두 신심이 깊은 가톨릭 신자였다. 형 게오르크는 레겐스부르크 주교좌 성당 소년 성가대의 지휘자로 활동했다. 누나 마리아는 평생 결혼하지 않은 채 신앙생활을 했다. 요제프는 다섯 살 무렵 자신의 추기경의 장엄한 행렬과 의복을 본 뒤 성직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라칭거가 열네 살 되던 해인 1941년 그는 히틀러 청소년단에 가입한다. 훗날 교황 선출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행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강력한 반 나치주의자였다. 부모나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가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에 징집된 라칭거는 BMW 공장의 방공포 부대에서 복무했다. 종전 후 그는 형과 함께 트라운스타인의 성 미카엘 신학교에 입학했다. 형제는 1951년 6월 29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바티칸=AP/뉴시스】프란치스코 교황(왼쪽)이 지난 2015년12월8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성스런 문’을 열고 ‘자비의 희년’ 개막을 선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문을 열기 직 전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와 포옹을 나누고 있다. 교황은 이날 성 베드로 성당에서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와 추기경, 주교, 사제는 물론 이탈리아 마테오 렌치 총리 등 각국 외교사절이 참석한 가운데 미사를 집전한 뒤 평소 벽돌로 막아놓았던 성 베드로 성당의 '성스런 문'을 활짝 열과 '자비의 희년'을 선포했다.  2015.12.8. 2015-12-8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라칭거는 1958년 프라이징 대학 교수를 거쳐 1959년 본 대학, 1963년엔 뮌스터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 라칭거는 쾰른의 요제프 프링즈 추기경의 신학 자문(peritus) 겸 독일어 권의 대표자 자격으로 참가했다. 라칭거는 공의회 동안 한스 큉과 에드워드 쉴레벡스크 같은 진보적인 근대주의 신학자들과 함께 교회 쇄신의 실무적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라칭거는 1966년 튀빙겐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계적인 신학자인 한스 큉이 있는 대학이었다. 라칭거는 1968년 저서 '그리스도교회 입문서'를 통해 교황은 의사 결정을 하기 전에 교회 안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진보적인 목소리를 이어갔다. 또한 교황청의 관료들이 교회를 경직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진보적 성향이었던 라칭거를 보수주의로 돌아서게 만든 것은 1967~1968년 독일 대학가를 휩쓴 네오마르크시즘 열풍이었다. 당시 라칭거처럼 진보적 성향의 교수들마저 학생들에게 강의 마이크를 빼앗기는 사건이 벌어졌다. "성경은 대중을 기만하는 비인간적 문헌", "예수에게 저주를!" 등 극렬한 주장을 담은 전단과 구호가 교정에 난무했다.
 
결국 라칭거는 강경한 보수적 성향으로 돌아섰다. 훗날 그는 회고록에서 "당시 나는 무신론적 열정에 사로잡힌 흉한 얼굴, 심리적 불안, 모든 도덕적 성찰을 부르주아의 썩은 냄새라고 내던져 버리는 열등의식, 이런 것들이 베일을 벗는 장면을 목도했다"라고 회고했다.

1969년 그는 바이에른의 레겐스부르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라칭거는 가톨릭 신학 사상잡지인 '통교(Communio)'를 발간하는 데 많은 애정을 기울였다. ‘통교’는 오늘날에도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를 포함한 17개국 언어로 출판되고 있는 권위 있는 학술지이다.
 
1977년 3월 24일 라칭거는 뮌헨과 프라이징의 대주교로 임명됐다. 그해 6월 27일 당시 교황 바오로 6세는 라칭거를 추기경으로 선임했다. 1981년 11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라칭거를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장관으로 임명하였다. 라칭거는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장과 국제신학위원회 위원장도 역임했다.
 
신앙교리성 장관 재직 기간에는 해방신학의 마르크스주의에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남미의 급진적 해방신학 운동에 제재를 가하는 법안을 제정하기도 했다. 많은 해방신학자의 활동이 중지되거나 파문 조치가 내려졌다.
 
라칭거는 교회에 대한 공개적 비판도 용납하지 않았다. 교황청의 교권주의를 비판해온 한스 큉 등 진보적인 신학자들에게 수업 및 저서 출판 금지 등 처분을 내렸다.
 
2005년 4월2일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했다. 그해 4월 19일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서 라칭거 추기경은 78세의 나이에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로 선출됐다. 베네딕토 16세는 당시 상황을 "마치 나에게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라고 회고했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하드리아노 6세(1522–1523) 이후 482년 만의 독일인 교황이다. 가톨릭 역사상 여덟 번째 독일인 교황이다.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4월 25일 일반신자들을 알현하던 중 자신이 베네딕토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베네딕토 15세와 영적인 유대를 맺기 위하여 베네딕토 16세라 불리기를 원했다. 그분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혼란의 시기에 교회를 이끄셨던 분이다. 그분은 용기 있고 진정한 평화의 예언자이다. 그분은 무엇보다도 대담한 용기로 전쟁의 비극을 막고 전쟁에 따른 불행한 결말들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그분의 뜻을 이어받아 사람들 사이의 화해와 조화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저의 사목으로 삼고 싶다. 평화라는 위대한 선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하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베네딕토 16세는 뇌졸중과 심장병 등 지병을 지니고 있었다. 베네딕토 16세의 전기를 쓴 작가인 존 앨런에 따르면 그는 1991년 뇌졸중 후유증으로 시력에 문제가 생겼으며 심한 현기증과 수면장애에 시달렸다. 교황으로 선출되기 오래전부터 심장박동기를 착용해왔다는 사실도 사임 직후 밝혀졌다.
 
베네딕토 16세는 2013년 2월 11일 바티칸에서 열린 추기경회의에서 28일 오후 8시를 기해서 교황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사임 발표문에서 "하느님 앞에서 양심을 성찰하면서 ‘급변하는 세상’, ‘신앙생활의 중대한 문제들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베드로 직무를 수행하는데 요구되는 ‘몸과 마음의 힘’이 없다고 확신하고, ‘온전한 자유’로 교황직을 사임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베네딕토 16세가 항상 열렬한 지지자들과 강한 반대자들을 끌어들인 교황이었다"고 평가했다.

교회의 보수주의자들은 그를 지적이고 영적인 북극성이자 세속주의와 변화하라는 압력에 직면해 교회 교리를 옹호한 지도자로 평가했다. 반면 그를 비판하는 이들은 교회 내 성추문 사건에 대해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했으며 전임 요한 바오로 2세의 카리스마가 부족했던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베네딕토 16세가 임명한 많은 사람들을 해고하거나 강등시켰고 교회의 우선순위를 바꾸기도 했지만, 베네딕토 16세는 아동 성추행 추문 피해자들을 만난 최초의 교황이었다고 NYT는 밝혔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22년 마지막 날 95세로 선종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오전 9시34분 바티칸의 마테르 에클레시아 수도원에서 선종했음을 슬픔 속에 알린다"고 밝혔다.

출처 : ◎공감언론 뉴시스 jabiu@newsis.com

=====================================================================

 

Benedictus PP. XVI
1951 - 29 giugno - 2011
60° anniversario di ordinazione sacerdotale

Benedictus PP. XVI
Ad multos annos, beatissime pater,
ad multos et felicissimos annos!
 

 

 

 

 

 

출처 :Papa Benedetto XVI - www.maranatha.it

============================================================

원어이름 Joseph Aloisius Ratzinger
요제프 알로이지우스 라칭거
추기경 직책 로마 가톨릭교회
대교구 로마 교구
관구 로마 관구
교구 로마 교구
전임자 요한 바오로 2
후임자 프란치스코
성직
사제서품 1951629
수여 마이클 폰 파울하버 추기경
주교서품 1977324
수여 조세프 스탠 바이 주교
추기경 1977627
서임 교황 바오로 6
개인정보
출생이름 Joseph Aloisius Ratzinger
출생 1927416
바이마르 공화국
 바이에른주 마르크틀암인
선종 20221231(95)
바티칸
 교회의 어머니 수도원
국적 바티칸
교파 로마 가톨릭교회
부모 요제프 라칭거 / 마리아 라칭거
가족  게오르크 라칭거 몬시뇰
전직 신앙교리성 장관
학력 트라운스타인의 성 미카엘 신학교
모교 트라운스타인의 성 미카엘 신학교
사목표어 Cooperatores veritatis
(진리의 협력자)

교황 베네딕토 16세(라틴어: Benedictus PP. XVI, 이탈리아어: Papa Benedetto XVI, 1927년 4월 16일 ~ 2022년 12월 31일)는 제265대 교황(재위: 2005424~ 2013227)이다. 본명은 요제프 알로이지우스 라칭거(독일어: Joseph Aloisius Ratzinger)이다. 교황으로 선출됐을 당시 그의 나이는 78세로 1730년 교황 클레멘스 12세 이후 275년 동안 선출된 교황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교황이며, 지금의 네덜란드 지방 출신인 교황 하드리아노 6(1522?1523) 이후 482년 만의 독일인 교황임과 동시에 교회 역사상 여덟 번째 독일인 교황이다. 또한, 베네딕토라는 이름을 선택한 교황으로서는 교황 베네딕토 15세 이래 80년 만이었다.

 

베네딕토 16세는 극적인 카리스마는 없지만 명석하고 신념이 강한 학자이며 유능한 행정가이자, 일곱 개의 명예박사학위와 모국어인 독일어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히브리어 등 10개국 언어로 소통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1992년 이래 프랑스의 윤리학 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21세기 최고의 신학자이며 유럽의 최고 지성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부드러운 음성의 내성적인 사색가이며 모차르트와 바흐의 곡을 즐겨 연주하는 수준급의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베네딕토 16세는 많은 선진국에서 퍼져가는 기독교 신앙의 쇠퇴와 세속화의 풍조를 막으려면 유럽이 먼저 기본적인 기독교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객관적 실재의 상대주의 그리고 도덕적 진리의 부정을 거부하고 이를 21세기의 주요 문제로 선언하였다. 그는 가톨릭교회와 인류를 위해 구제를 베푸는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할 것을 가르치며 사랑의 활동에 참여하는 많은 그리스도인 사이에 증대하는 세속주의와 행동주의에 직면하여, 기도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하여야 할 때이다.”라고 다시 확인하였다.

 

또한, 베네딕토 16세는 전 세계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기부하는 자선단체 라칭거 재단의 창설자이자 후원자이다.

 

2013211,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연령이 너무 많아 업무 처리가 힘들어 교황직을 사임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또한 사임에 관련한 많은 의혹에 대하여 자신의 확고한 의지임을 분명히 밝혔다. 2013227일로 사임하였다.[교황의 중도사퇴는 교황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598년만의 일이다.

 

생애 초기 (1927-1951)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

요제프 라칭거는 1927416일 성 토요일 아침 830, 바이마르 공화국 바이에른주 마르크틀 암 인에서 요제프 라칭거와 마리아 라칭거의 2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같은 날 그는 유아세례를 받았다. 아버지는 경찰관이었으며,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형 게오르크 라칭거는 사제이자 레겐스부르크 주교좌 성당 소년 성가대의 전() 지휘자다. 그의 누나 마리아 라칭거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으며 1991년에 죽을 때까지 집안을 돌보았다. 그들의 종조부는 독일의 정치가 게오르크 라칭거이다.

 

교황의 일가는 어린 시절부터 그가 성직자의 소질을 타고났다고 증언하였다. 꽃을 뿌리며 뮌헨 대교구장이었던 추기경의 방문을 환영한 아이들 무리에는 다섯 살 무렵의 라칭거도 있었는데, 당시 추기경 특유의 의복을 본 후로 추기경이 되고 싶어 했다고 나중에 회고하였다.

 

히틀러 유겐트 시절의 모습

1941년 열네 번째 생일을 보낸 직후 그는 나치당의 청소년 조직인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했다. 그의 나치 소년단 가입 전력은 뒷날 교황 선출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다만 193912월 이후로 나치 독일의 모든 열네 살짜리 사내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단체에 강제적으로 가입해야만 했다. 매우 엄격하고 정직했던 그의 아버지는 신심 깊은 가톨릭 신자였으며, 나치즘의 강력한 반대자였다. 1941년 라칭거의 사촌 가운데 한 명이 다운 증후군에 걸렸는데, 어린 나이였음에도 히틀러 정권의 우생학 운동에 의해 살해당했다. 1943년 열여섯 살의 그는 항공기 엔진을 만들던 BMW 공장의 방공포 부대에 복무하였다. 그는 그러나 손가락에 생긴 염증으로 연합군 항공기에 방공포를 발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 라칭거는 19444월 독일군을 탈영해 집으로 돌아가다가 미군에 포로로 잡혀 몇 주 동안 전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가 19456월 전쟁이 끝나고 나서 몇 달 뒤에 석방되었다. 그해 11월에 그는 형 게오르크와 함께 신학교에 들어갔다.

 

1945년 두 형제는 트라운스타인의 성 미카엘 신학교에 입학해 공부하였다. 두 사람은 1951629일 사제로 서품받았다. 라칭거는 1953년과 1957년에 각각 성 아우구스티노의 교회론에서의 유다 민족과 하느님의 집이라고 명명된 논문과 성 보나벤투라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덕분에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1958년 프라이징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출처 : 교황 베네딕토 16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