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 보수적인 제도·문화를 시대에 맞게 고치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이하 주교회의)에서 여성의 투표권을 허용하기로 했다. 2000년 가톨릭 역사상 최초다.
주교회의는 전 세계 주교들이 바티칸에 모여 가톨릭의 주요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기구다. 주교들의 투표 결과를 참고해 교황이 최종 결정한다는 점에서 교황의 자문 기구로 불린다.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기구에 여성의 목소리를 반영할 길이 열린 것이다.
주교회의 사무국은 26일(현지시간) "평신도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던 과거 관습을 깨고, 투표권을 부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가톨릭뉴스통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간 주교회의에는 사제, 평신도 등 비(非)주교들이 '감사' 자격으로 참여했으나 투표권은 주교만 행사했다. 주교는 남성만 될 수 있다. 여성이 주교회의를 참관하기는 했지만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선 배제된 것이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감사의 역할을 폐지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투표권을 가질 수 있도록 방침을 바꿨다.
올해 10월 열리는 주교회의부터 새 방침이 적용된다. 구성원 370명 중 70명 정도가 비주교 몫인데, 이 중 절반이 여성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주교회의 사무총장인 마리오 그레치 추기경은 "다양한 이들의 참여는 교회 전체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개혁엔 "여성과 청년의 몫을 챙겨달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특별 당부'가 영향을 미쳤다. 교황이 비주교 참석자 70명을 뽑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만, 참석자 후보를 추리는 건 각 교구 등에서 한다. 후보를 정하는 과정에서 여성을 제외하면 제도 개혁 취지가 무색해지므로 그 전에 각별히 주문한 것이다.
23일 바티칸 앞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 있는 군중. 바티칸=EPA 연합뉴스가톨릭 내부엔 '여성을 2등 시민으로 여긴다'는 불만이 많다. 국제단체 '가톨릭위민스피크'가 최근 전 세계 104개국 여성 신자 1만7,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4%가 "교회 개혁을 지지한다"고 답했을 정도로 개혁 열망이 크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로운 방침은 여성 신자들로부터 뜨겁게 환영받았다. 여성안수회의의 케이트 맥엘위 전무는 "스테인드글라스(유리천장)의 중대한 균열"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재임 이후 가톨릭 구습 타파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가톨릭 제도에 성평등을 구현하려는 뜻이 강하다. 바티칸 박물관에 첫 여성 관장(바바라 자타)을 임명하고 바티칸 행정부 2인자로 첫 여성 관료(라파엘라 페트리니 수녀)를 인선하는 등 인사 개혁을 단행했다. 교회 밖에서도 소수자 인권 향상을 위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출처처 : 한국일보 ww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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