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누구인가]
성당에 갈 때마다 가장 먼저 가깝게 만나는 사람이 본당수녀들이다. 주임신부와 같은 사제보다는 더 친근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우선 본당사목의 실질적인 총괄 관리자인 사제는 신자 개개인과 개별적 친목을 나누기 힘든 까닭도 있다. 본당 규모가 갈수록 대형화되면서 사제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도와주는 사목보조자로서의 수녀 역할은 결코 그 중요성이 줄어들지 않는 분위기다. 실제로 수녀가 있는 본당과 없는 본당 사이에 신자들의 활동, 복음화율 등이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는 수원교구의 통계자료도 있었다.
특히 입교신자인 경우 본당에서 맺는 첫 인간관계가 예비자교리를 담당하는 본당 전교수녀이다. 일반가정에서도 아버지보다 어머니에게 그러하듯 어려운 부탁거리가 있으면 자연스레 수녀에게 먼저 들고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한 가정의 어머니처럼 이런저런 궂은 일을 마다 않고 묵묵히 해내는 본당수녀들의 노고에는 늘 감사한다.
본당수녀에 앞서 수도자다
그러면서도 본당수녀에 앞서 한 사람의 수도자이자 수도회 구성원이라 할 때,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회의는 오래전부터 들었다. 물론 요즘 일반적으로 거론되듯 평신도들이 전문성과 역량에서 앞서 나가고 있어서 이제까지 수녀가 해 오던 역할을 양도하라는 그런 차원만은 아니다. 오히려 수도자의 신원과 수도회의 정체성 확립의 차원에서 볼 때 염려스러운 점이 있다는 것이다.
수도회는 교회의 혼(魂)이다. 지난 2천년 교회사에서 수도회는 각 수도회마다의 고유한 카리스마 그 영성의 빛으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역할을 다해 왔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고유한 영성을 자신 안에 온전히 녹여 간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본당에 파견되어 교계제도 조직 안에서 소진하고 있는 그 역량을 수도회 고유의 복음적 영성을 온전히 되살리고 실천하는데 쏟는다면, 본당사목에 도움을 주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소중한 것을 교회와 세상에 풍성하게 가져다 줄 것이다.
모두 비슷비슷한 본당사목..영성의 하향적 동반하락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각 수도회에서 파견된 수도자들이 본당에서 거의 비슷한 일들에 매여 활동하다 보니, 각 수도회 고유 영성의 씨앗을 교회와 세상에 심기는커녕 오히려 본당 활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에 배인 것들이 그대로 수도회로 흘러들어가 역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고유한 빛깔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혼이 빠진 것과 흡사하니 수도자나 수도회로 하여금 매너리즘에 빠져들게 하는 주요인이 된다. 수도복으로만 구별될 뿐, 모든 수도회가 각자의 얼굴을 잃고 비슷한 모습을 띠게 되면서 결국 영성의 하향적 동반하락까지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 현상의 한 주요 원인이 본당이라는 획일적 조직에 매몰되면서 빚어진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교회 전체로 봐서도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교회와 수도회가 눈앞의 기능적 이익만 쫓다가 더 근본적인 것을 잃고 있지 않은가 싶다.
수도회의 신원과 정체성 회복은 이 시대의 교회, 특히 한국 교회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다. 그것은 한국 교회의 혼을 되살리는 작업이니, 교회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병폐들이 그 혼 곧 근본정신을 잃어 버려 파생된 까닭이다. 위기의 교회, 어려운 시대일수록 교회는 근본에 바로 서야 한다.
그 근본의 중심에 수도회가 놓여 있다고 본다. 예수께서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다. 수도회가 깊음과 높음과 넓음의 그 혼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카리스마를 온전히 지니고 꽃피울 수 있다면, 교회 안에서 풍성하고도 놀라운 열매들이 맺힐 것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다시 그분은 말씀하신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과연 수도회는 교회의 눈이다. 2천년 교회사에서 수도회가 자기 자리를 지키면 교회도 밝았으나, 수도회가 그렇지 못하면 교회도 어두웠다. 그 시대 수도회를 보면 그 시대 교회 현실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스도교 자체가 창립기에 유대 사회의 수도공동체였던 쿰란공동체(Qumran community)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받은 뒤 교회가 외적 성장에 반비례하여 영성적으로 퇴락해가자 사막수도회 등 수도회운동에 의해 다시 영적 활력을 되찾았다. 로마제국이 결국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하면서 유럽 전체가 정신적 공황기에 접어들자 베네딕트수도회를 비롯한 정주수도회가 문화전통의 핵심을 안정적으로 담지해내고 배태시키면서 중세유럽 문화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다.
물론 중세유럽 교회의 타락도 수도회의 부패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동시에 그 중세적 타락에서 교회가 건져진 것도 수도회가 중심이 된 쇄신운동 덕분이었다. 근대로 넘어와서도 유럽 교회가 위기에 처하자 다양한 영성을 깨달아 받은 수도회들이 곳곳에 창설되어 교회의 현대화 작업을 뒷받침했으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조차 20세기 초부터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교회의 움직임에 앞서 수도회들이 다양하고도 활발하게 펼친 교회 쇄신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수도회, 교회 안에서 예언적 역할 해야
그만큼 수도회는 지난 2천년 동안 자기 ‘할 바’를 다해왔다. 그 ‘할 바’가 다름 아닌 교회 안의 예언적 역할이다. 교회의 뜰 안이 아니라 빈들의 외침이다. 교회의 부패를 막는 소금, 교회의 나아갈 길을 실천적으로 제시하는 불기둥, 온전히 죽어 교회를 살리는 한 알의 밀알, 교회와 세상을 향한 돌들의 외침, 이 예언적 영성을 수도회가 온전히 지니면 교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었지만, 그것을 상실하면 오히려 교회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부정적 기능을 하였던 것이다.
수도자의 본당 파견 문제도 그런 차원에서 고려해봐야 할 문제라고 여겨진다. 창립목적이 본당선교를 지향하는 수도회를 제외한, 각 수도회의 실천 현장이 고유 영성에 걸맞게 스스로 개척한 곳이고, 거기에서 각자가 받은 카리스마를 온전히 꽃피워낼 수 있다면, 흔히 수도회 측에서 수도자 본당 파견의 실질적 이유로 드는 성소자 개발과 재정확보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되리라고 본다. 오히려 그를 통해 수도회 영성에 걸맞은 성소자를 모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고유 사업으로 획득된 재정의 자율성은 각 수도회에 맡겨진 선교사명을 하느님의 뜻에 보다 합당하게 펼쳐나갈 가능성을 그만큼 높여줄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토착화가 요구되는 한국과 같은 지역에서는 수도회가 고유 영성을 바탕으로 한 문화사목의 활성화를 통해 지역사회와 교류하면서 생활 속 복음화를 꾀하는 풀뿌리 토착화의 첨병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사회에다 그리스도의 옷만 입히는 그런 차원의 선교가 아닌 사회를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는 진정한 사회복음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의 도구로서 수도회의 대사회적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도회, '활동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물론 근본적으로 수도회는 이른바 ‘활동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수도회가 성장주의와 사업에 매몰되면 영성의 쇠락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된다. 본말전도의 왜곡된 가치관을 매순간 점검하고 재정립하는 것은 깨침의 마음과 혼을 잃지 않는 첩경이다. 무엇보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겉을 바꾼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속을 흔든다는 것이다.
가르멜의 봉쇄수녀원 골방에서 기도하는 수도자의 가슴에서 울려나오는 침묵의 종소리가, 활발한 전교활동을 펼치는 선교사들보다 온 세상 구원에 있어 더 큰 울림을 줄 수도 있다. 포교의 수호성인은 그 누구도 아닌 가르멜봉쇄수녀회의 아기 예수의 성녀 소화 데레사가 아닌가! 근본에 바로 세우는 것이 근본을 잃지 않는 길이다.
교회 쇄신의 핵심 요소로 수도회가 자기 자리에 올바르게 서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수도자의 본당 파견 문제’는 수도자의 신원과 수도회의 정체성 확립 문제에 있어 아주 중요하게 다가온다. 특히 남녀수도자 비율에 있어 여성수도자가 압도적인 지금의 한국 교회 현실에선 어쩌면 이 문제에 그 해답이 담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를 위한 교회 차원의 진지한 논의가 요청되는 시점이다.
정중규 / 다음카페 ‘어둠 속에 갇힌 불꽃’(http://cafe.daum.net/bulkot) 지기,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연구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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