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부상 통증 심했지만 ‘8골 3도움’ 우승 밑돌 기술에 근성도 탁월…“국외무대서 뛰고 싶어요”
“오늘 많이 아팠어요. 그래도 꾹 참고 뛰었습니다.” 결승전 뒤 ‘믹스트 존’ 인터뷰에서 여민지(17·함안대산고)는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부상 속에서 그동안 악전고투해야만 했던 자신의 고충을 털어놨다. 조별리그부터 4강전까지 5경기에서 8골 3도움을 기록하며 한국팀 결승 진출의 견인차가 된 그였지만, 정작 일본과의 결승에서는 정상 컨디션이 아닌 듯했다. “앞으로 부족한 점, 월드컵에서 느꼈던 거 잘 보완해서 더 큰 선수가 되고 싶어요. 성인 무대에서도 한국 여자축구가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강팀이 됐으면 합니다.” 26일(한국시각) 트리니다드토바고 포트오브스페인에서 끝난 2010 국제축구연맹(FIFA) 17살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여민지는 골든부트(득점왕)와 골든볼(최우수선수), 우승트로피까지 들어 올리며 이번 대회 최고 스타로 우뚝 섰다. 그러나 여민지는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동료들이 잘해줘서 대신 상을 받았다”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국제축구연맹 주관 각급 월드컵에서 한 선수가 트리플 크라운(3관왕)을 달성한 예는 그리 많지 않다. 남자의 경우 1982년 스페인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우승을 이끈 파올로 로시가 유일하다. 8월1일 끝난 20살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지소연(19·한양여대)이 8골을 기록하며 ‘실버부트’(득점 2위)를 받은 지 두달도 안 돼 17살의 여민지가 한국 축구선수로는 가장 먼저 최고의 영예을 안은 것이다. 부상 투혼으로 일궈낸 상이기에 더욱 값지다. 여민지는 수상 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세계에 더 알리고,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해 세계로 나아가고 싶다. 저돌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번 대회 여민지의 활약은 실로 눈부시다. 남아공과의 B조 1차전에 교체 출전해 2골을 넣으며 3-1 승리의 견인차가 됐다. 멕시코와의 2차전에는 선발 출장해 1골을 기록하며 4-1 승리에 기여했다. 독일과의 3차전에서 침묵하며 0-3 패배를 지켜봐야 했지만,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에서는 4골을 몰아넣으며 6-5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스페인과의 4강전에서도 0-1로 뒤지고 있던 전반 25분 동점골을 터뜨려 2-1 승리에 밑돌을 놨다.
창원 명서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의 길에 접어든 여민지는 초·중학생 때 전국 대회 득점왕을 휩쓸었고,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AFC) 16살 이하 여자챔피언십에서도 득점왕(10골)에 등극했다. 여민지는 이번 대회 출국에 앞서 “(지)소연 언니처럼 최소 8골은 넣고 세계에 ‘여민지’가 누구인지 보여주겠다”고 했던 다짐도 현실화시켰다.
한편 이날 여민지가 재학중인 경남 함안대산고와 모교인 창원 명서초등학교에서는 그의 부모가 각각 참석한 가운데 열띤 응원전이 벌어졌다. 대산고 체육관에는 김두관 경남지사와 하성식 함안군수를 비롯한 기관·단체장들이 300여명의 재학생과 교사·학부모들과 함께 경기를 관람하며 한국팀을 응원했다.
여민지의 아버지 여창국씨는 “민지의 부상이 걱정됐는데 어제 전화통화에서 걱정하지 말라더니 오늘 열심히 뛰어 좋은 결과 내줘서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어머니 임수영씨는 “민지와 우리 딸들이 고생 많았고, 너무 사랑스럽다”며 “부상 때문에 고생이 많았던 민지가 일본 선수들의 압박이 심해 넘어질 때마다 마음이 아파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여민지의 담임인 오경자 교사는 “정말 피를 말리는 박빙의 치열한 접전에서 끝까지 집중력과 침착성을 잃지 않은 우리 어린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아이들이 돌아오면 꼭 안아주며 너희들의 담임이라는 게 정말 행복하고 자랑스럽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오 교사는 여민지에 대해 “목표의식과 승부근성이 대단하고 학업성적도 상위권”이라며 “시험기간 중 경기가 있으면 밤을 새워 못다 한 시험공부를 해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