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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일-참된 행복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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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일-참된 행복

발행일 : 2005-01-30 [제2434호]

마태오 5,1~12

“주님을 섬기다 죽는 이들 행복하다”

구원의 약속 실현

여덟 가지 행복론은 마태오 복음 5, 1~12에 나오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시작하는 설교의 첫 부분이며, 그리스도 신자들의 행복에 대한 강령이다.

루가의 기록에서 그 행복론은 그와는 대조적인 불행과 함께 제시되어 있으며, 어떤 생활 형태들의 뛰어난 가치들을 찬양하고 있다(루가 6, 20~26).

그러나 덕행이나 생활 형태들을 찬양하는데 있어서 이 두가지 설명은 어느 쪽도 삭감될 수 없다. 그것은 상호 보완적이며, 예수께서 전해 주신 의미를 살림으로써만 그 행복론에 진리가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구약의 약속을 장엄하게 실현하시기 위하여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시다.

하늘 나라는 이미 지상에 도래했으며,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궁핍과 비탄을 제거하시고, 인간에게 자비와 생명을 주신다.

어떤 행복론이 미래를 위하여 전해졌다면, 그 첫째(『복되다 가난한 이들』)는 다른 행복들을 포함하면서, 지금부터 실현되어가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 행복론은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말씀하신 응답이기도 하다.

구약성서가 행복을 하느님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 것과는 달리, 예수님은 그분 안에 하늘 나라가 현존하고 있으므로 그 분 자신이 행복에 대한 인간의 열망을 충족시켜 주시는 분으로 나타나신다.

행복의 중심인 그리스도

더 나아가서 그분은 스스로 이 행복을 사심으로써, 그리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마태 11, 29)가 되심으로써 그 행복을 구현하셨다.

기타의 복음적인 행복들도 역시 예수님이 행복의 중심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마리아는 믿었기 때문에(루가 1, 45) 구세주를 낳을 수 있었고, 『행복한 사람』(루가 1, 48: 11, 27)이라고 불리었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루가 11, 28), 보지 않고 믿는(요한 20, 29)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알려 준다.

바리사이파 사람들(마태 11, 21)은 화를 입을 것이다!

봉사?헌신하는 자의 행복

그러나 성부께서 예수님 안에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을 계시하신 시몬(마태 16, 17)은 복되다.

예수님을 본 눈은 복되며(마태 13, 16), 특히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충실하게 깨어 있고(마태 24, 46), 서로 봉사하는 데에 헌신한(요한 13, 17) 제자들은 행복하다.

구약성서는 부유와 성공과 지상적인 가치에, 가난과 실패 속에서 바라보는 정의의 가치를 연결시키려고 조심스럽게 애쓰고 있다.

굶주리고 박해받는 자

그러나 예수께서는 행복에 대한 지상적인 표현의 모호함을 거부하신다. 이제부터는 이 세상에서 행복한 자란 부유한 자, 포식하는 자, 아첨을 받는 자들이 아니라, 굶주린 자, 우는 자, 가난한 자, 박해를 당하는 자이다(1베드 3, 14; 4, 14).

이와 같은 가치의 전도는 모든 가치 자체인 예수님에 의해서 가능하였던 것이다. 두가지 중요한 행복이 다른 모든 행복을 포함한다.

하나는 가난으로서, 거기에는 정의, 겸손, 온유, 자비, 평화를 구하는 마음 등이 따른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당하는 박해이다.

신앙 증거위해 목숨 바쳐

그러나 이러한 가치들도 모든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시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스도를 자기 신앙의 중심으로 놓은 자만이 묵시록에 나오는 행복론을 들을 수 있다.

묵시록의 말을 듣고 이를 잘 지키는 사람(묵시 1, 3; 22, 7) 깨어 경계하고 있는 사람(묵시 16, 15)은 복되다.

그들은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묵시 20, 6),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묵시 19, 9)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앙의 증거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자는 생명을 잃지 않을 것이다.

『주님을 섬기다가 죽는 사람들은 행복하다!』(묵시 14, 13).

-허성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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