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님의 기도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무덥고 습한 날씨에 어떻게 지내시나요?
저는 사진에서 보시듯이
아주 시원한 캐나다에서 잠시 지내다 오니까
대구의 더위가 더 견디기 힘들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며칠 지나면 또 이 날씨에 적응이 되겠죠?
해마다 겪었던 더위인데도
시원한 곳에서 지내다 오니까 더 힘든 것을 보면
객관적으로 주어진 날씨 보다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길인 것 같습니다. ^^*
형제 자매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부딪히면
자신도 모르게 절대자를 향해 기도드리게 됩니다.
신자든 아니든 방법은 다를지 몰라도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공통된 현상입니다.
자신보다도 더 위대하고 능력 있는 존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구하라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내용을 모두 다 들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를 바치던 어떤 사람들은 “기도해도 소용없다”라고 말합니다.
형제 자매님,
그러면 예수님께서 거짓말을 하셨을까요?
그러나 그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느님은 돈을 넣고 누르면 내가 원하는 물건이 나오는
자동판매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올바로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의 제자들만이 바치는 독특한 기도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이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그런데 의미를 생각하면서 드리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간청기도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욕심을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기도 앞부분은 이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형제 자매님,
이 앞부분은 우리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원의가 담긴 내용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원의를
우리의 원의가 되도록 만들 것을 요구하십니다.
만일 내가 그렇게 기도한다면 나를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내 개인적인 원의를 뒤로 물릴 자세가 되어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는 우리 기도의 방향이
내 개인적인 관심사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뜻에
곧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는 데 첫 관심사를 두게 합니다.
형제 자매님,
그러면 주님의 기도의 중심이 되는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며”라는 기도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흔히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천국과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의 종말에 올 나라가 아닙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그 순간부터 하느님나라는 이 땅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는 영토가 있는 지상적인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나라, 곧 사랑이 법을 대신하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란다면 우리 각자가 하느님의 뜻을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우리들이
미래의 왕국을 기다리기 위해 세상을 도피하게 하기보다는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게 합니다.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우리는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 곧
아버지의 나라가 이 세상에 현존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웃들에게 보여주고 있는지?
아니,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현존을 느끼고 있는지?
먼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이기에 나의 희생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오늘날 하느님 나라의 실현은 불가능 하겠다”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영국 침례교 목사인 에드윈 로버트슨이 부인과 함께
이태리의 ‘로삐아노’라는 작은 도시를 짧은 기간 방문했는데
그 도시를 떠나면서 그의 아내가
“나는 마치 하늘나라에 머물렀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고
자신의 책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형제 자매님,
로삐아노는 세계 70여 개국에서 모여온
약 700여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작은 도시입니다.
피부색, 언어, 종교, 생활습관 등등 그들에게 공통점이라고는 거의 없습니다.
있다면 포콜라레 영성 곧 일치의 영성을 산다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 도시는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된 기쁨과 평화를 주면서
하느님의 나라가 지상에 현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모두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하신
예수님의 계명을 법으로 삼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매일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자신도 무한한 기쁨과 평화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도시는 만일 세상 사람들이 사랑의 계명을 법으로 삼고 살아간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게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실제로 그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그 기쁨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런 도시를 이루고 함께 살고자 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브라질
그리고 개인주의가 만연된 미국에서도
루미노사라는 사랑의 소도시가 세워졌습니다.
형제 자매님,
하느님 나라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묻혀있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 가정에서 직장에서 단체에서 본당에서 하느님 나라는 실현될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해서 잘 알고 있듯이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사랑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합시다.
이 기도는 우리가 당신의 자녀답게 살고자 청하는 것이기에
하느님께서도 분명히 들어주실 것입니다.
대구 남산동 신학교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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