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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의 슈바이처’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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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0. 4. 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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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의 슈바이처’를 보내며 - 조광호|인천가톨릭대 교수·신부


얼마 전 흐드러진 라일락이 봄볕에 눈부신 아침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예순 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한 의사의 장례미사가 거행되었다. 아직도 한창 살 나이건만 세상을 떠난 이는 ‘영등포 쪽방촌의 슈바이처‘로 불려온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이었다.


1980년대 초 그는 촉망받는 젊은 교수 의사로 어느 주말, 의대생들과 함께 서울의 철거민촌에 의료봉사활동을 갔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난 21년 동안 노숙자, 알코올 중독자, 외국인 노동자 등 이 땅에서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을 돌보며 살았다. 그런 그가 2005년 위암으로 쓰러졌고, 이듬해 위암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환자들을 돌보다가 지난달 15일 뇌출혈로 쓰러져 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이러한 그의 생애가 매스컴에 보도되자 수많은 쪽방 사람들은 물론, 온 국민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가난한 이들과 부자들의 간격이 넘을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린 세상이다. 재물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도둑질이 무엇인지 모르기라도 하듯, 교묘하게 사람들을 속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면서 거들먹거리는 이 땅에서 그의 삶은 우리들의 이기적 아성을 무너뜨리고, 피폐한 시대, 주검같이 싸늘한 인간성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는 에너지로 끊임없이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0여년 전 어느 모임에서였다. 처음 만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 같았다. 유난히 투명한 눈빛과 밝은 미소, 단아한 목소리는 그 후 내가 그를 만날 때마다 더욱 깊은 인상으로 나에게 각인되었다. 지난해 봄 어떤 일로 나는 그와 함께 잠시 여행을 했다. “요셉 원장님, 요즘 좀 어떠세요?”하고 묻자 그는 “신부님, 명색이 의사라고 하는 사람이 제 몸에 암이 번져 다 죽게 된 것도 모르고 돌아다녔으니 창피해서 죽겠어요”라고 했다. ‘이웃을 위해 내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그는 태연하게 농담으로 응수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봉사, 희생’이 아니라 ‘축복’이라 했고,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환자들은 하느님이 보내주시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했다. 사막의 성자 ‘샤를르 드 푸고’의 영성을 따라 철저한 청빈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버림받은 이들을 하느님처럼 섬기며 살기를 원했던 그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였고 이 화두를 자신이 하는 일의 원칙으로 삼았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들을 치료하면서부터 좋아하던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처절하리 만큼 자신에게 엄격했던 그는 마침내 ‘이웃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고, 요란하고 거친 세상 한 가운데서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면서도 조용하고 명상적인 수도승처럼 수행하며 살았다. 그러기에 그의 곁에 서면 언제나 향기로운 꽃처럼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윽하였다. 그는 오늘 우리에게 ‘더불어 사는 문화’를 어떻게 꽃피워야 하는지를 전해준 위대한 선각자였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맡겨진 ‘가장 아름다운 소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이 시대 위대한 예수의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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