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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워지면 비워라/비우면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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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1. 9. 19.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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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워지면 비워라/비우면 채워진다

 


 

 

 “우리들의 살림살이는 흐르는 물과 같다.

도도하게 흐를 뿐이니 담아 둘 것이 없다.
그대로 여여할 뿐이다. 걸음걸이를 보라.
한 발짝 내딛으면 뒷 발짝 없어지고 또 한 발 내딛으면
또 한 발 없어진다.
떼어놓은 발자국을 아쉬워하면서 걷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본래 그렇게 놓고 간다. 먹으면 배설해야 하고
일이 닥치면 닥치는대로 겪으면서 흘러간다.
보는 것 듣는 것도 다 그러하다. 마치 물이 흐르듯이 그렇게 흘러간다.

그런데 흐르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붙잡으려 한다면,
집착한다면 그대로 마음의 짐이 되어 업으로 남는다.
흘러가질 못하고 내 마음의 때로 남아 떨어지질 않는다.
그래서 오직 놓고 가라고 하는 것이다.”

흐르는 물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리를 다투지 않는다.
그냥 흐를 뿐이다. 흐르다가 막히면 돌아서 가고 흐르다가
갇히면 채워서 넘쳐 흐른다.
때로는 급하게 흐르다가 또는 쉬엄쉬엄 흐른다.
빨리 간다고 뽐내지 않고 늦게 간다고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오직 흐름 그 자체일 뿐이다.

옛 사람들은 그래서 물 같은 삶을 으뜸으로 여겼다.
‘청산은 날 보고 산 같이 살라하고
녹수는 날 보고 물 같이 살라하네’하고 읊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떻게 사는가.
물 같은 삶은 바보같고 덧없는 삶으로 여긴다.
가능하면 내 곁에 잡아두고 나를 위한다는 생각에 흐름을 거슬리려 한다.
재물을 쌓고 자리를 다투고 모든 흐름이 나의 바람을 따라
좌지우지 되어야 한다고 고집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다툰다. 싸우고 경쟁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미워하고 탓을 한다.
때로는 자만하고 때로는 괴로워 한다.

 

 




우리들의 삶은 대체로
‘내 논에 물을 대는 노력’과 다르지 않다.
우리들이 공인하는 능력이란 대개 아전인수(我田引水)하는 능력을 말한다.
자연스런 흐름을 따라 사는 게 아니라 가능한 한 물꼬를 넓혀서
내 논에 많은 물을 대고 그것을 가두어 두는 것을 유능하다고 한다.
나아가서는 그런 일들을 자못 인간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처구니 없게도
폭력·술수· 증오·전쟁에 대해서조차 명분을 붙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적이라는 이름으로 탐욕을 당연시하고,
탐욕을 가르치고 이를 심화해 나간다면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되겠는가.
결론은 뻔하다.
집단을 기준으로 본다면 경쟁은 투쟁으로,
투쟁은 전쟁으로, 전쟁은 동족상잔, 인종청소로 확대되어 갈 것이다.
개인을 기준으로 본다면 경쟁은 증오로,
증오는 술수로, 술수는 폭력과 범죄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만인이 만인(萬人)과 싸우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사랑과 자비는 퇴조하여 마침내 불치의 단계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계속해서 먹기만 할 수는 없다. 무한정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먹었으면 배설해야 하고 먹을 만큼 먹었으면 멈춰야 한다.
계속해서 숨을 들이 쉴 수 만은 없다.
들이 쉬었으면 내 쉬어야 한다.
흘러드는 물도 무한정 잡아 가둘 수는 없다.
흘러들었으면 그만큼 흘려 보내야 한다.
잡아 가두면 썩거나 터지게 된다. 그것은 순리이다.
조금도 특별할게 없는 평범한 진리이다.
고로 우리의 노력이란 그런 흐름를 타는 것,
그런 흐름에 순응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흐름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 우리가 노력해야 할 내용이다.

그렇게 가는 것이 이른바 능력있는 삶이 된다.
먹기만 하는 것,
들이 쉬기만 하는 것,
잡아가둘 줄만 아는 것,
그것은 잘하는 일도,
능력있는 삶도 아니다.
그것은 착각이요 탐욕일뿐이다. 인생의 오류일 뿐이다.

물은 빈 자리를 메우며 흐른다.
가두지 않고 흐르게 내버려두면 흘러나간 만큼 흘러들어온다.
재물도 물과 같고 권력도, 명예도, 나아가 건강까지도 물과 같다.
물처럼 흐르는 삶이 여여한 마음이다.
비우면 채워지고 채워지면 비우는 게 바른 삶이다.
묶이면 썩는다.
썩으면 고통밖에 남는게 없다.



멋진사람들의 서고에서
노블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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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끔 듣는 말에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는
사회적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는 구호일 뿐,
사회 환경은 철저하게 기득권자들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왠지 오늘 복음은 예수님마저도 가진 자를 두둔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깨닫도록 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요?
이 세상에서 가진 자와 하느님 나라에서 가진 자는 서로 반대의 뜻을 지닙니다.
세상에서는 채우면 채울수록 창고에 곡식이 쌓여 부자가 되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세상 것을 버려야 부유한 사람이 됩니다.
하늘 나라에서 참으로 가진 자는 자신을 온전히 비운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께서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셨지요.
세상 것을 비운 자리만큼 하느님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 것을 움켜잡고 그것을 자기가 가진 줄로 알고 사는 사람은,
사실은 가진 것이 전혀 없을 수 있습니다.
온통 세상 것에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진 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세상 것에 마음을 두고 있는 만큼 영적으로는 빈곤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 것에 초연하고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은
 비록 가진 것이 없어 보여도 아무것도 부럽지 않는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2011.9.19(목) 매일미사/오늘의 묵상

 

 

 


 

 

네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해서,

네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엄마가 아니라면, 신 혹은 우주 혹은 절대자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

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지.

 

저는 아직 젊고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단다.

그것을 믿어라.

거기에 스며 있는 천사들의 속삼임과 세상 모든 엄마 아빠의 응원

소리와

절대자의 따뜻한 시선을 잊지 말아라.

네가 달리고 있을때에도 설사, 네가 멈추어 울고 서 있을때에도 나

는 너를 응원할거야.

 

(공지영 산문.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것이다 ..중에서)

 

 
Notti senza Amore(한없는사랑외5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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