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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 영혼의 눈을 떠야합니다/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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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 영혼의 눈을 떠야합니다/배광하 신부

사순 제4주일 (요한 9, 1~41)
발행일 : 2008-03-02 [제2588호, 6면]

- 우리가 눈을 뜨면 -

은총에 눈을 뜨니

작고하신 구상 세례자 요한 시인께서는 노년에 참된 신앙의 깊이를 깨달으시고 ‘은총에 눈을 뜨니’라는 시를 쓰셨습니다.

“이제사 비로서 두 이레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이 뜬다. 이제까지 시들하던 만물 만상이 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 이제야 하늘이 새와 꽃만을 먹이고 입히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리심을 눈물로써 감사하노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화를 보면, 성인께서 젊은 시절의 방탕함을 접고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는 장면이 감동적으로 그려집니다.

한번 은총에 눈을 뜬 성인의 눈에는 이제껏 보아온 세상 만물이 시인의 표현처럼 예전 같지 않습니다. 나비와 꽃, 하늘을 나는 새들, 태양과 시냇물 모두가 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게 됩니다.

세상 만물이 그러할 진데 하느님 창조물 중 가장 걸작인 인간에게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뒤 성인은 나환자의 흉측한 모습에서도 신령한 하느님의 빛을, 생명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는 세상 모든 만물이 찬미의 대상이 되며 감사를 드려야 하는 내 형제요, 자매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진정한 가난의 삶을 추구하며 살게 됩니다. 그 뒤부터는 세상 근심과 걱정, 욕심들이 사라지게 되어 자유를 살아갑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같은 눈뜸의 생활인 것입니다. 은총의 빛이 내 눈에 들어와 하느님 사랑의 손길을 느끼는 것, 그 같은 손길에 늘 감사드리며 사는 것, 그것이 신앙의 기적이며, 기적의 신앙을 사는 것입니다. 때때로 믿는 우리들은 세속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고, 세속의 눈으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눈은 열렸으나 영혼의 눈은 감겨 있었습니다. 그러니 삶이 기쁘지 않았고 하느님 창조의 모든 만물에 신령한 빛이 뿜어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사무엘 예언자 역시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여 선택하려 합니다. 우리 역시 사물과 사람을 눈에 보이는 모습, 내 자신의 가치관과 주관에 의해 자주 판단하려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 7).



눈을 뜬 자와 감은 자

예수님께서는 자주 눈을 뜬 이들에게 눈감은 소경이라 하시고, 눈을 뜨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볼 수 있는 자들이라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태생 소경은 눈을 뜨게 되고, 예수님 곁에서 온갖 기적을 보면서도 마음의 눈을 감은 바리사이들은 볼 수 없게 됩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질책하셨습니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마태 13, 14~15).

바리사이들이 볼 수 없었던 것은 세상 명예와 기득권에, 그리고 자신들의 교만에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종교 지도자라는 교만에 자신들은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 소경들이었습니다.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남을 깨끗하게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깨끗이 해야 하며, 가르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하고, 비추기 위해서는 빛이 되어야 하며, 남을 하느님께 가까이 이끌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느님께 가까이 가야하고, 거룩하게 하고, 인도하고, 지혜롭게 충고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거룩해져야 합니다.”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지 못하는 현대인들 역시 눈을 뜨지 못한 소경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거지가 죽었는데, 그가 가지고 다니던 깡통이 너무 묵직하여 사람들이 자세히 살펴보니 황금이었습니다. 그 거지는 불탄 집에 갔다가 우연히 단단한 그릇을 발견하고는 깡통으로 쓰면 좋겠다 생각하여 가지고 다녔는데, 그것이 황금인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귀한 것을 귀히 알지 못하니 거지로 사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소중함을 소중히 여기지 못할 때 그 신앙은 눈먼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일전에 어느 일간 신문에는 “신앙이 깊은 나라는 가난하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신문은 미국의 시사 월간지의 내용을 인용하여 “종교의 힘이 강한 나라일수록 가난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종교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통계를 실었습니다. 참된 신앙의 눈이 멀어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또다시 눈을 뜨고 있어야 함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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