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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8) 사랑과 용서의 십자가 승리/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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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8) 사랑과 용서의 십자가 승리/배광하 신부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마태 26, 14~27, 66)
발행일 : 2008-03-16 [제2590호, 6면]

- 인간의 이중성 안에서 -

잔인함

나치 독일에 반대하며 저항하다 순교하신 ‘디트리히 본 회퍼 (1906~ 1945)’ 목사는 한 때 스페인에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스페인에서 몇 번 투우장을 찾아가 투우경기를 본 뒤 누이 ‘자비네’에게 이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호산나!’라고 외치던 군중이 돌변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친 이유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 그런데 투우사가 정확하게 황소를 찌를 때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던 군중이 그 투우사에게 불행스러운 일이 닥치자 즉시 동일하게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고 휘파람을 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단다. 황소가 한 마리 한 마리 죽을 때마다 우리는 점점 더 빠르게 선정주의와 잔혹함이라는 요소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분명히 볼 수 있단다.”

군중은 투우사가 정확히 황소의 급소를 칼로 찔러 넘어뜨릴 때에는 환호하며 축하의 박수를 보내지만, 실수로 투우사가 황소의 뿔에 받혀 넘어지면 그 가엾은 투우사에게 야유와 조소의 함성을 보낸다는 내용의 편지입니다.

인간은 대체로 두 가지 행동의 모습을 보입니다. 첫째는 자신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극도의 분노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군중 심리로 작용되면 더 큰 분노와 집단행동이 나오게 되고 끔찍한 폭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둘째는 한번 잔인해진 인간의 심성은 더 큰 잔인함을 부르게 되며 끝내는 피를 불러 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카인은 자신의 뜻에 맞지 않자 이성을 잃어버리고 친 혈육인 동생 아벨을 죽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미워하여 미치광이로 돌변합니다. 예루살렘 시민들은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나, 예수님의 나라가 이 지상에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오늘 이렇게 호의를 보이다가도 자신들의 뜻에 맞지 않으면 내일은 야수로 돌변하여 피를 보고야 맙니다. 어쩌면 이 같은 잔인한 모습이 인류가 끝없이 만들어낸 인간의 이중적 추악함이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끔찍한 잔인의 역사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같은 잔인함을 바꿀 수 있는 길을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용서의 삶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훗날 예수님께서 수난하실 모습 속에서 폭력을 이겨내시는 사랑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이사 50, 6).



승리의 길

수많은 순교자들의 삶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순교하는 그 마지막에도 자신들을 죽이는 박해자들을 미워하지 않고 하느님께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사랑의 기도를 바친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처럼 놀라운 기적의 용서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잠시 실패로 끝나 버린 것처럼 보이던 순교자의 삶이나 정신이 다시 부활하여 사랑의 승리로 승화된다는 것입니다.

베트남의 가톨릭 순교자 집안에서 출생하시어 주교가 되시고 베트남 공산당에게 체포당하시어 무려 13년 이라는 죽음의 수용소 생활을 겪으신 ‘구엔 반 투안 (1928~2002)’ 추기경은 당신의 어머니께서 어머니의 4형제를 무참히 죽인 원수들까지 용서하시는 사랑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자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역시도 사랑의 승리를 믿고 베트남 공산당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분의 책에는 무한한 용서의 하느님을 ‘키아라 루빅’의 글을 인용하며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을 조용히 묵상하다보면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우리가 빛을 갖도록 / 당신은 자신의 눈을 멀게 하셨습니다. / 우리가 일치하도록 / 당신은 아버지와 이별을 겪었습니다. / 우리가 지혜를 갖도록 당신은 ‘무지’가 되었습니다. / 우리가 다시 무죄한 사람이 되도록 / 당신은 ‘죄’가 되었습니다. / 우리가 희망을 갖도록 / 당신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도록 / 당신은 당신한테서 멀리 계신 하느님을 경험했습니다. / 천국이 우리 것이 되도록/ 당신은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 우리가 수많은 형제 사이에서 / 이 땅의 기쁜 체류를 경험하도록 / 당신은 하늘과 땅과 인간과 자연에서 추방당했습니다. / 당신은 하느님이십니다. / 당신은 저의 하느님 / 무한한 사랑을 지니신 우리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인간 사랑에 대한 애끓는 어버이 마음으로 죽음의 길, 예루살렘 입성을 강행하신 예수님 사랑의 길이 끝내는 승리의 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승리의 길을 따르라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초대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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