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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밥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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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2. 11. 13.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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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밥의 기도 

 

               

 

   기온이 내려가 뜨뜻한 온돌방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왔다. 여름을 뒤로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늦가을이라니, 시간이 너무도 "빨리 흘러감을 실감하게 된다. 지난여름, 화덕 같은 방 안에 앉아 독서삼매로 피서를 즐겼다. 독서의 계절은 가을이라고 하지만 서가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는 기쁨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 듯하다.


   지나간 여름을 돌아보며 슬며시 웃음 짓게 하는 것은 치열했던 모기와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패전의 쓴 잔을 마셔야 했던 건 모기가 아니라 나였다. 얼마나 많이 물렸으며 '뭘 잘못 먹어 식중독으로 생긴 두드러기 증상이 아닐까' 하고 여기질 정도였으니. 상황이 이쯤 되니 누군가 '무슨 ,무슨 매트'라 불리는 전자 모기향을 소개해주었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기 때문에. 그게 무슨 전기요나 야구 방망이(?) 같은 것인 줄로 알았었다. 하여튼 그걸 찾아내어 사용법까지 상세하게 물어 코드를 꽂아놓고는 편안한 잠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그날 밤, 모기들은 더 극성스러운 것 같았다. 그렇게 편리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럴 수가! 나는 아침이 되어서야 변압기의 스위치를 켜지 않고 코드만 꽂아놓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미 온 집안 모기에게 헌혈 해준 상태였으니 피가 부족하여 빈혈을 일으키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같은 수녀원에 사는 요한 수녀 역시 모기의 극성에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 그는 "웨에~ 웽" 하는 소리만 났다 하면 즉시 불을 켠 다음, 이런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주님, 모기를 잘 잡게 해주십시오." 그런데 나의 기도는 달랐다." 주님, 모기한테 물리지만 않게 해 주십시오." 이것을 보고 적극적인 기도와 소극적인 기도의 차이라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


   기도도 소용이 없는 듯 번번이 무단 헌혈을 당하기가 일쑤, 그럴 때면 무장간첩과 같은 모기의 야간침투 행각에 감정이 상하고 예민해지고 만다. 하느님이 지어내신 모든 만물 중에 하나도 쓸모없는 게 없다는데 하느님은 왜 모기를 만드신 걸까?


   한참을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은 모기가 개구리나 거미들의 밥이 되어 준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부터 나의 기도는 이렇게 달라졌다. "주님, 너무 가렵지만 않다면 얼마든지 물려도 좋습니다. 이왕이면 제가 모기에게 영양가 높은 밥이 되도록 말입니다."

 


                ▒  이호자 마지아 수녀(서울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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