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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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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2. 12. 1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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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사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 할 즈음이네요.

외출하셨던 할아버지가 바지에 소변을 본 채

순경아저씨 손에 이끌려 오셨지요.

길을 잃고 헤매고 계신 걸 모셔왔다고 했습니다.


식구들은 모두 놀랐지만,

어쩌다 길이 낯설어서 그랬나보다 하고 넘겼지요.

그런데 그날 이후 할아버지의 행동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가끔은 아버지를 보고도

“댁은 누구세요?”하고 물으셨고,

가만히 앉아 계시다가도

몸의 중심을 잃고 쿵하고 쓰러지셨지요.


그게 치매 때문이란 걸 알았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진행이 된 터라

치료도 불가능했습니다.


그 와중에 가장 힘들어했던 사람은

맏며느리인 어머니셨지요.


대소변조차 누워서 해결해야하는 할아버지를

매일 씻겨드리는 일이 가장 고역이었습니다.


게다 가난했던 그 시절엔 세탁기조차 없어서

어머닌 할아버지의 기저귀며 변이 묻은

이불 빨래를 일일이 손으로 빨아야했는데,

한겨울이면 어머니의 손은

동상으로 성할 날이 없었습니다.

 


 

 

작은 어머니나 고모가

다녀가신 날이면 더 심했지요.


직접 모시지 못하는 미안함을

선물이나 먹을 것으로 대신하려는 듯,

작은 어머니들은 항상 케익이나 과일을

잔뜩 사오셨고, 치매에 걸린 후


유난히 식탐이 많아지신 할아버지는

며칠씩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레 드시고 또 드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날이면 할아버지는

유난히 변을 많이 보셨고 어머니의 빨래는

밤이 깊을 때까지 계속되곤 했죠.


참다못한 어머니가 작은 어머니들께

할아버지께 드리는 먹거리 선물을 금하자,


친척들 모두가 병든 노인을

굶긴다며 어머니를 비난했고,

할머니마저 어머니를 호되게 질책하셨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어머니의 짐을

나눠 져주지는 않았지요.


그리고 그렇게 모진 3년의 시간이 흘렀고,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상처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나셨지요.


그때 전 어머니가 무척

기뻐하실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지긋지긋한 수발을 더 이상은

들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후련하실까 하구요...


그런데 이런 저의 생각과는 달리 어머닌

할아버지 영정 앞에서 섧디 섧게 우셨습니다.


음식도 잠자리도 잊은 채 때론 멍하게,

때론 미친 듯이 우셨습니다.


처음엔 어머니가 슬픈 척

연극을 하나보다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의 슬픔은 더해만 갔고,

급기야는 그걸 바라보는 제게도

슬픈 마음이 생기더군요.


그렇게 우는 어머니가 측은해서였을까요?

아니면 어머니의 슬픔이

제게도 옮겨온 탓이었을까요?


어린 저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날 어머니가 흘린 그 눈물은 아직도

생생히 제 가슴을 적시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제 세월이 흘러 어머니도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곱던 어머니의 얼굴에는 어느덧 저승꽃이 피었고,

이제는 흰머리가 성성한 그야말로 할머니지요.


그런데 그런 어머니에게는 아직도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 남았나봅니다.


아흔을 훌쩍 넘긴  할머니를

아직 모시고 계시거든요.


할머니라도 건강하고 맑은 정신으로

사시다 가셔야할텐데,

근래에 와서는 할머니마저 할아버지처럼

치매기를 보인다고 하십니다.


지난 겨울부터는 부쩍 증세가 심해져서

북한에서 폭격기가 날아온다며

새벽이고 밤중이고 일어나셔서 어머니에게

피난을 가자고 조른답니다.


일단 한번 사단이 나면 달래도 소용이 없고

막무가내시니 어머니는 조용히 일어나셔서

할머니를 따라 한참동안

동네를 서성이다 들어오신다니,

자식 된 저의 마음은 정말이지

찢어질 듯 아픕니다.


그러나 이렇게 애틋한 마음은

언제나 생각에만 머물 뿐,


저 역시 사는 게 바빠 어머니의

고단한 일상을 넉넉히 도와드리지도 못하네요.


이젠 몸도 고 마음도 약해진 어머니...

하지만 당신은 세상 어떤 꽃보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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