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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약 성경의 주인공 ‘예수’ (1)

성경자료

by 巡禮者 2010. 8. 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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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약 성경의 주인공 ‘예수’ (1)

 
3년 공생활 동안 ‘온갖 신’ 배척

오직 ‘하느님, 인간 위한 삶’ 살아

신약성경은 ‘예수’의 이야기다. 예수가 누구이고, 왜, 어떻게 이 땅에 왔고, 무엇을 가르쳤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혼 할 때 우리는 ‘아무나’하고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 ‘무조건’이 아니라 일단 예수를 알아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예수는 2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바로 ‘어제의 예수’와 ‘오늘의 예수’다. ‘어제의 예수’는 역사적, 신학적 관점에서 예수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예수’는 신앙적, 신적 관점에서 예수를 묵상하는 것이다.

‘어제의 예수’

이번 주에는 우선 ‘어제의 예수’에 대해 알아보자. 성서 학자들은 예수 탄생연도가 기원 원년이 아니라, 기원전 4년 이전으로 보고 있다.

성서에 헤로데 대왕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는 내용이 나온다.(마태 2, 16 참조) 그런데 이 헤로데가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4년에 죽었다. 따라서 학자들은 예수 탄생연도를 기원전 4년전,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원전 6년 전 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디에서 태어났나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에는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예수가 실제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에 대한 물음은 아직까지 많은 논란이 있다.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만삭의 임신부가 베들레헴까지 호적조사를 위해 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지금은 ‘어제의 예수’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다음 주에 ‘오늘의 예수’를 말할 때 이 문제를 다시 말할 것이다.

가족상황은 어땠을까

아버지 요셉은 예수 30세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 공생활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는 또 예수에게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라는 동생들이 있었고 누이들도 있었다(마르 6, 3)고 기록하고 있다.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성모님께서 동정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그 당시 형제와 누이라는 말은 사촌와 육촌을 다 포함해서 썼던 용어다.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그 당시 갈릴래아 나자렛 주민들은 농업과 목축업을 주업으로 했다. 예수도 공생활 전에는 당연히 농업 아니면 목축업 혹은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목수일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수의 교육 수준도 검토해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요셉의 직업을 미루어 보았을 때 고등교육은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다교 회당에서 구약성서를 읽을 수 있을 정도, 읽고 쓸 수 있을 정도의 초보적인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의 활동 무대는 주로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위치한 가파르나움 포구를 중심으로하는 호수 주변으로 추정된다.

공생활 동안 어떤 일을 했을까?

공생활 기간은 3년이었다. 유다인들은 1년에 한 번 과월절에 예루살렘에 가는데, 요한복음을 보면 세 번 예루살렘에가서 과월절 축제를 참석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예수는 공생활동안 무슨 일을 하셨을까. 우선 신(神)을 배척했다. 삼위일체의 하느님이 아니라, 재물을 우상시 하는 물신(物神), 주의 주장 사상 이념 따위의 이념신(理念神), 율법학자들의 법이나 체제 따위의 제도신(制度神)을 배척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에 갇힌 삶을 살면 하느님을 향해 열려있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는 또 오직 하느님과 인간을 사랑하는 삶만을 살았다.

한마디로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삶이다.

예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일단 예수의 친척과 일가족들은 예수의 가출과 위험스런 활동상을 심히 못마땅하게 여겨 그를 고향으로 강제로라도 데려오려고 하였다.(마르 3, 20~22 참조) 갈릴래아 주민들도 처음에는 열광적으로 환영했으나 차츰 예수를 멀리한다.(마르 6, 1~4 참조) 율법학자 등 당시 지도급 인사들도 당연히 예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예수가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를 죽이려 했다.

예수는 제자들조차 모두 도망간 가운데 하늘과 땅 가운데 매달려 외롭게 죽었다. 실제로 예수는 하느님에게서 조차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참함 속에서 십자가에 매달렸다.(마르 15, 34 참조)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의 생애는 실패한 것이다. ‘어제의 예수’는 분명, 실패한 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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