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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 / 장재봉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2. 2. 2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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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760)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 / 장재봉 신부

연중 제6주일(마르코 1, 40-45) 외딴 곳으로 내몰린 예수님
발행일 : 2012-02-12 [제2782호, 10면]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과 치유 받은 나병 환자의 대화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옵니다. 인간의 근본적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몸서리치는 상황을 살아가는 처지에서도 억울함을 하소연하지 않고, 스스로의 결백을 주장하지도 못하며 고작 “하고자 하시면”이라고 한 발 물러, 당신의 뜻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고백하는 인간의 품새가 수채화처럼 곱습니다. 아울러 그 가냘픈 청을 고스란히 받아 “하고자 하니”라고 화답해 주시는 주님의 연민에 가슴이 젖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주님의 당부를 어길 수밖에 없었던 나병 환자의 감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치유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린 일이 그분의 길에 걸림이 되었다는 점이 의아합니다. 과연 그분 사랑을 체험한 감동과 감격을 ‘어쩌란 것인지’ 여쭙게 됩니다. 이 기쁨을 왜 숨겨야하는지, 묻게 됩니다.

한국에는 많은 종교가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전 세계의 종교계가 주목하고 부러워합니다. 이처럼 많은 종교가 더불어 함께하는 것을 보면 상대를 존중하는 민족성을 알 것 같다고 칭찬합니다. 그런데 종교학자들의 분석은 판이합니다. 한국 땅에 많은 종교가 수용되는 까닭은 어떤 종교든 한국에 뿌리 내리면 여지없이 ‘기복신앙’으로 둔갑을 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믿음은 곧 복 받는’ 것으로 변질된 현상이라는 분석입니다. ‘가톨릭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은데, 자신이 없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습니다.

복음은 삶의 고통을 없애주는 비결이 아니며 고난을 면제받는 도구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이한 현상에 마음이 쏠려서 이적과 기적에 솔깃하여 몰려다니고 있습니다. 이야말로 그분께서 일하지 못하도록 그분의 손발을 꽁꽁 묶는 행태입니다. 그분의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못난 짓입니다. 기적이 그분 복음의 전부였다면 그분께서는 말씀 한마디로 온 세상을 개벽시키셨을 것이라는 걸 모르십니까? 세상의 고통과 고난이 믿음과 사랑의 걸림돌이라면 깡그리 없애실 수 있었다는 걸 진정 모르십니까? 구일기도를 하면 “무슨 소원이든 다 이루어진다”느니 어느 성지의 물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며 쫓아다니는 맹신이야말로 그분의 진리를 얼룩지게 합니다. 이렇게 오늘도 그분은 “외딴 곳”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교회가 극구 ‘잘못 되고’ ‘오도된’ 주님의 뜻임을 선명히 밝힌 곳에, 쉬쉬대며 쫓아가는 음험한 작태가 어찌 빛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일지요? ‘낫더라’고 ‘들어 주더라’며 웅성대니 어찌 잡신을 섬기는 미신행위가 아닐지요. 뭔 냄새가 난다고 코를 킁킁대며 성모님을 귀신 취급하니, 망발입니다. 성모상에서 피눈물을 보겠다고 교회의 명령에 순명치 않는 것마저 마치 선택받고 박해 받는 믿음인양 떠벌리는 일, 중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은 ‘나 같은 죄인’이 그분의 은총으로 구원된 사실입니다. 놀랍고 기이한 은총으로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 승격된 사건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은혜로 무수한 허물을 지닌 내가 그분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도구로 변화된 일이 기적입니다.

그날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소문내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만 사제에게” 가서 속죄 예식을 거행하라고 명하십니다. 하많은 이스라엘의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선포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교회와 사제에게 부여하신 권위에 복종할 것을 명하신 것이라 헤아립니다.

우리의 어리석은 행위가 그분의 뜻을 가로막고 태클을 걸 수 있습니다. 그분의 움직임을 불편하고 옹색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몸소 세우신 교회의 가르침을 묵살하고 무시하는 헛된 행위를 꼼꼼히 살펴야 할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그분의 자녀는 복음만 자랑합니다.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별 수 없는 존재’가 변화되어 살게 된 일만을 증거합니다. 땅의 것에 얽매여 ‘낫고’ ‘얻고’ ‘되고’ ‘이루는’ 차원을 넘어 ‘변화된 나’의 행복을 기쁘게 누립니다. 참 그리스도인이기에 그분께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겸손된 기도를 올립니다. 이렇게 ‘말씀과 은총으로 변화된 나의 삶’으로 기적의 증인이 된 일만으로 충분히 감격하며 살아갑니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활천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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