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대승경전의 성립

종교학(宗敎學)

by 巡禮者 2010. 8. 18. 16:15

본문

대승경전의 성립  

 

교단사적으로 보면 대승불교는 현재까지도 그 실체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대승경전들로 보아 대승불교가 역사상 실재하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대승불교의 성립에 대해 말할 때도 그 대부분의 자료를 대승 경전 자체로부터 얻고 있으므로 단적으로 말하면 대승 경전이 바로 대승불교인 것이다. 따라서 대승경전의 발달사는 대승불교의 형성사와 중복되는 점이 많다. 


현재 많이 보고 있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은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하여 불전을 집대성한 것이다. 총 100권 가운데 앞의 32권이 인도찬술부이며 이것이 본래의 대장경이다. 그것은 아함, 본연, 반야, 법화, 화엄, 보적, 열반, 대집, 경장, 밀교, 율, 석경론, 비담, 중관, 유가, 논집의 16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밀교부까지가 경이며, 율과 석교론 이하의 논을 합하여 삼장(三藏)을 형성한다. 경장부분도 원래 소승경과 대승경만으로 되어 있었는데 대정신수대장경에서 이와 같이 구분한 것이다. 그 중 반야부 이하가 대승경에 해당한다.


대승경전 성립의 배경


당시에는 불타가 직접 설하신 경전인 <아함경>이 있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에 그와 달리 불타의 참뜻을 나타낼 새로운 표현이 필요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대승불교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설하려 했던 것인가하는 문제와 동일하다. 다시 말해서 대승불교는 어떻게 흥기하였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대승불교 성립배경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하게 언급하기로 한다.


대승불교는 원래 불탑을 중심으로 모여서 불탑 공양을 통해 불타를 찬미하고 숭배한 재가 신자들을 주로 하는 집단에 의해 일어난 신운동이다. 이 운동은 재래의 여러 부파들이 승원 중심의 불교로서 아비달마 교학의 확립을 지향하여 너무 전문적인 법 중심의 불교를 발달시키고 있었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불타의 절대성과 자비성이 무한하다는 것으로서 이는 불멸 후 나타난 석존 신격화의 결과이다.

 

즉 불전과 본생담 등을 통해 점차로 발달하였던 불타에 대한 고찰의 결과, 불타는 과거에 무한의 수행을 한 과보로서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고 하며, 인행(因行)으로서 이타행을 주로 하는 육바라밀의 행을 설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불타의 체험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결심하였던 곳에 새로운 운동의 출발점이 있었다. 출가수행자들은 불타와 자신들과의 거리감 때문에 스스로가 아라한임에 머무르고자 했음에 대해, 중생의 성불이야말로 불타의 본원(本願)이라고 주장하여 불타와 똑같은 깨달음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을 석존의 전신(前身)과 마찬가지인 보살이라 부르게 된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중생이 성불하는 길을 가르치기 때문에 이 새로운 운동은 대승이라는 이름을 불리기에 이르렀다.


이 운동의 지도자는 법사(法師)라고 불린다. 법사의 기원은 어쩌면 출가 수행자 중에서 재가 신자를 위해 불타의 전기나 비유를 설하는 전문가였는지도 모르지만, 부파의 기록을 통해서는 그 기원을 알 수 없다. 대승측에서 말하는 바에 의하면 재가 신자에서의 지도자이든가 혹은 출가자이더라도 정식으로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대승경전이 성립되기 시작하면서 대승불교 자체에 여러 가지 새로운 현상이 발생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대승 경전에 대해 공양하고 숭배하고자 하는 요구와 법사를 존중하고자 하는 요망이다. 결국 경전이 불탑을 대신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되었다는 것이며 대승경전이라고 하는 법의 절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두번째 현상은 성불도(成佛道)로서의 보살도가 정비되고 체계화된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처음에 비판하였던 부파의 아비달마 교학을 다시 도입하게 된다. 이것은 재가보살 대신 출가의 보살이 이상상으로 등장한 것과 때를 같이 한다.


대승불교의 이론화와 체계화는 결국 출가주의화와 아비달마화를 초래하여 이전의 불교가 걸었던 길을 답습하게 된다. 이로써 제3의 신운동으로 밀교가 일어나고, 이윽고 그 주장을 담은 그릇으로서 밀교 경전이 제작된다. 밀교 경전도 역시 불설임을 표방하지만 그것을 설하는 이가 대승 경전의 경우처럼 불타가 아니라 절대적 존재로서의 법신(法身)이라고 했다. 밀교도 대승불교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승을 초월하여 출현한 것이라는 점은 대승이 불교이면서도 이전의 불교를 초월하여 출현하였던 것과 대비된다. 그리하여 인도불교의 최후까지 소승과 대승과 밀교가 병존하고 있었다.


대승경전의 발달구분


대승경전의 역사는 보통 3기로 나누어 논하게 된다. 제1기인 초기에는 대승의 형성에서부터 용수(龍樹)의 시대까지이고, 제2기인 중기에는 용수 이후에서 무착(無着)과 세친(世親)의 시대까지이고, 제3기인 후기는 세친 이후의 후대이다. 제1기에는 경전 제작이 극대로 성행하였으며, 제2기에서는 조금 덜하였고, 제3기에서는 밀교를 제외하고 극히 드물었다. 제1기는 대체로 기원 전후로부터 3세기 전반까지로서, 북인도에서 쿠샤나 왕조가 번창하던 시대이고 남인도에서는 인드라 왕조가 지배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제2기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굽타 왕조가 흥성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7세기 후반 이전에는 순수한 밀교 경전이 형성되지 않았다.


초기의 경전은 대승불교의 교리를 최초로 저술한 인물로 지목되는 용수의 학설에 영향을 주거나 또는 인용되고 있는 경전류이다. 물론 용수가 모든 대승 경전을 열거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용수가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지라도 용수와 유사한 교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은 초기의 경전에 포함되는 것이다. 초기 대승경전 발전 이전에 <반야경>이 성립되었고, 이로 인해 교리적 영향은 매우 커서 모든 대승 경전이 공(空)사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동시에 여러 부처를 인정하는 신앙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그 중에서 아미타불의 신앙이 보편화되어 정토교(淨土敎)를 대표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화엄경>의 그룹이 발전하고 또한 <법화경>을 신앙하는 운동이 급속하게 퍼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교리의 조직 및 체계화에 동반하여 다시 부파불교와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나게 된다. 즉 부파불교의 교리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워진 것이다.


중기 이후의 대승경전은 대체로 여래장 사상과 유식 사상에 관련된 것이다. 여래장계 경전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중생에게 여래장(如來藏) 즉 불성(佛性)이 있음을 주장하는 것인데,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대방등여래장경>을 선두로 하여 담무참이 번역한 <대반열반경>, <대운경>, <금광명경>, 구나발타라가 번역한 <승만경>, <앙굴마라경>, <대법고경>, <보살행방편경계신통변화경>, 보리유지가 번역한 <부증불감경>, 진제가 번역한 <무상의경> 등이다.


유식계의 근본성전은 <해심밀경>인데 이의 전모는 보리유지에 의해 처음으로 전해졌으나, 부분적으로는 구나발타라에 의해 번역되어 있으므로 4세기 말까지는 성립되었을 것이다. 이외에 <유가사지론>, <대승장엄경론>, <섭대승론> 등이 있다. 이 시기에는 경전과 논전과의 구별이 어렵다. 더욱이 이 시기의 경전에는 논전을 기초로 하여 개작된 것도 있다.


대승 경전의 제작은 후대에까지 계속되었지만 그 수는 갑자기 줄어들게 된다. 대신 밀교 경전이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그것은 650년을 전후로 <대일경>의 성립을 통해 현교(顯敎)인 대승으로부터 독립을 달성하고, 또한 <금강정경>에 의해 그 교리가 확립되었던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관련글 더보기